강원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주진형. 본인 제공 적정 규모의 의대 정원 증원은 필요하지만 2025년 의대 정원 증원은 유예되어야 합니다.
유급 또는 휴학한 학생과 증원된 신입생이 한꺼번에 몰려 평소의 2.5배 학생이 강의를 듣게 되고 나중에는 실습도 하게 되는 상황이 의과대학 6년 내내 지속된다면 수업의 질은 곤두박질칠 것이고 학생들은 제대로 준비된 수업을 받지 못해 의사로서의 기본적인 지식 습득과 술기 능력 확보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정부에 대한 미움과 원망 속에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윤리의식도 점점 흐려져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에 대한 지망생은 더욱 감소할 수 있고 과거에 상당수 유능한 의과대학 선배들이 미국으로 건너갔던 것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의과대학 학생들이 조속히 복귀하지 않는다면 증원은 말할 것도 없고 내년도 의과대학생 선발 규모를 줄이는 것이 상식일 수 있습니다.
1968년 동경대학교가 그런 선택을 했습니다. 1968년 의과대학에서 시작된 수업 거부가 전체 대학으로 번진 상황에서 동경대학교 대학 본부는 고민 끝에 1968년 12월 말에 이르러서야 1969년도 동경대 신입생을 뽑지 않겠다는 결정을 합니다.
의과대학 졸업 후에 받아야 하는 수련의 의무 기간이 연장되는 결정으로 촉발되었던 상황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장기화하면서 12월 말에 전체 신입생 모집 유예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결정이 내려지게 된 것입니다.
50년도 더 된 일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요? 한 과목만 낙제해도 1년을 유급시키는 의과대학에서 1년간이나 교육을 받지 않은 대다수의 의과대학 학생을 진급시킬 수 있는 해결책이 있을까요?
과거 사법고시의 경우에는 수년간 사찰에서 혼자서 공부하는 방식으로도 합격을 할 수 있었으나 의과대학 교육은 독학으로 깨우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론만 가지고 고려청자를 만들 수는 없으며 강의만 가지고 고난도 수술과 응급 시술을 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유예는 수시 접수가 시작되어 버렸기 때문에 규정과 행정 사항을 검토해 볼 때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필자는 직원들이나 주변 분들과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할 때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최대한 사용하지 말자고 얘기합니다. 불가능은 불로장생을 이루는 것, 별을 따다 그대에게 바치는 것과 같은 일이지, 법과 규정은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규제와 행정을 극복하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합니다.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상대를 거부하고 무시하겠다는 의미일 수 있어 대화와 협상을 어렵게 합니다. 그리고 국민은 어려운 일을 해결하라고 정치권에 신성한 권한을 위임해 준 것인데 여야정이 이런 위임과 책무에 대해 성심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우려가 끊이지 않은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필자가 수년 전부터 의과대학 정원 증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는 것을 아는 의사가 아닌 주변의 지인들은 많은 의사들과 의사협회의 주장과 태도에 탐탁지 않은 반응과 비판을 합니다.
고집불통에 타협과 배려를 모르는 공부만 잘하고 시험만 잘 봤던 이기적인 집단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의사도 있겠지만 제 주변의 동료, 선후배, 제자들이 정말 그런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의사와 정부가 타협해서 의과대학 정원의 증원과 감원을 결정해 가는 일본에 비해서 우리는 갈등 해결 방식이 너무 첨예하고 과격한 것 같고 중재해 줄 인물이나 집단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후배 교수가 삭발하고 단식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제라도 신속하게 서로 타협하고 양보하면서 좋은 결과가 만들어 내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2025년 의과대학 정원에 대한 유예를 포함한 재검토가 이루어지는 것도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대학에 입학한 첫해에 수업 거부와 시험 거부가 있었습니다. 거부와 투쟁을 통해 제적된 친구와 선후배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후 대부분 구제를 받았고 지금은 훌륭한 의사로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합니다. 수업 거부와 시험 거부를 했으나 그래도 진급을 시켜주었던 그 당시에는 다소 밉기도 했던 은사님들에게 이제는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의과대학을 졸업시켜 주고 의사면허증을 받게 해주었던 것에는 국민들의 보이지 않는 응원과 배려가 가장 큰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과 함께 하는 의사, 특히 지방의 어려운 지역에 거주하는 국민들의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주는 의사들이 향후 많이 배출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외부 필진 기고는 CBS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