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인베스트 이모 대표를 법정에서 흉기로 찌른 50대 A씨. 연합뉴스▶ 글 싣는 순서 |
①법정에서 일어난 흉기피습…코인사기 때문이었다 ②'코인'부터 문자 스미싱까지…횡행하는 사기범죄 ③'사기 피해자'가 흉기 습격 '피의자'로…"내 하루는 지옥이 됐다" |
"하루인베스트 대표는 법정에 늘 양복을 빼 입고 머리를 정리한 채 말끔한 모습으로 나와요. 피해자들은 하루아침에 인생을 잃었는데 '책임이 없다'며 잡아 떼는 모습을 보면 저도 정말 피가 거꾸로 솟았거든요. 물론 살인 미수 범죄를 옹호할 순 없지만…저는 너무 안타까워요."(하루인베스트 사태 피해자 A씨)
지난달 1조 원대 가상자산(코인)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가상자산 운용 업체 하루인베스트 이모 대표가 재판을 받던 도중 흉기 피습을 당했다. 이씨를 찌른 사람은 하루인베스트 사태로 약 8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는 50대 남성 강모씨였다. 법정 흉기 습격은 정당화 될 수 없는 중범죄임에도 하루인베스트 피해자들은 강씨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모으고 있다. 온라인 탄원서에 연서명에 참여한 이들은 지난 13일 오후 기준 90여 명이다.
CBS노컷뉴스가 인터뷰한 피해자들은 강씨의 피습 사건에 대해 "사기 피해자의 절박한 심정이 잘못 표출된 경우"라며 "재판부가 사기 피해자들의 고통을 참작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무위험 고수익' 홍보에 투자…결과는 결혼 포기에 '투잡'까지
피해자들은 대부분 하루인베스트 측의 '원금을 보장하고 업계 최고의 수익을 약속한다'는 말에 모은 돈을 투자했다고 한다. 실제로 CBS노컷뉴스와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실이 확보한 '하루인베스트 코인 사기' 공소장을 보면 하루인베스트는 고객을 유치할 때 '무위험 고수익'을 강조했다.
'트레이딩(코인거래소 간 가격 차이를 이용한 차익 거래) 기법'이라는 그럴듯한 수익 창출 방법, '고객의 자산을 10개 이상의 외부운용사에 배분 예치해 리스크(위험)를 최소화한다'는 홍보 문구도 앞세웠다. 하지만 지난해 6월 13일부터 하루인베스트는 출금이 정지됐다.
검찰에 따르면 하루인베스트 사업을 운영하는 블록크래프터스는 자본잠식(납입자본금과 잉여금으로 구성된 자본총계가 납입자본금보다 적은 상태) 상태였다. 검찰은 하루인베스트가 홈페이지 등을 통해 홍보한 것과 달리 분산 투자는 애초부터 이뤄지지 않았고, 트레이딩을 통한 차익 거래도 손실을 발생 시키고 있었다고 봤다.
하루인베스트에 원화 시세로 약 40억 원에 달하는 코인 50여 개를 예치했던 박민서(가명‧30대)씨는 가족·친척들의 자금까지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그 뒤로 결혼을 포기한 채 1년 넘는 시간을 하루인베스트 관련 공개 재판에 매달렸다.
"당시에 코인을 하는 사람이면 하루(인베스트)를 모를 수가 없었어요. 가상자산 운용사로는 델리오와 함께 1, 2위를 다퉜으니까요. 저는 그래서 은행에 저축한다 생각하고 넣어둔 거죠. 하지만 결국 일이 그렇게 됐고 그 뒤부터 지옥이 펼쳐졌죠. 지금 결혼은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김형준(가명‧20대)씨도 2년간 선원으로 일하며 모은 수천만 원을 하루인베스트에 투자했다가 출금 정지 사태로 하루아침에 날렸다고 했다.
"배 위에서 바다를 누비면서 번 피 같은 돈이 한순간에 사라진 겁니다. 원래대로라면 그 돈을 잘 모아서 집도 사고 결혼 자금에도 보태려 했는데…. 출금 정지 이후에 몇 달은 술만 먹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어떻게든 손실을 메워 보려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과외를 하는 등 '투잡'을 뛰고 있어요."
'피해 회복' 아직인데…하루인베스트 측 '초대형 로펌' 선임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은 지난 2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 혐의로 하루인베스트 대표 이씨 등을 기소했다. 하루인베스트 측은 법률대리인으로 초대형 로펌 변호사들을 선임했다.
하루인베스트 측은 출금 중단 사유를 "위탁운영업체인 B&S홀딩스에서 허위정보로 사기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회생의 당사자인 채무자가 해외에 있는 다른 법인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루인베스트에 약 1억 4천만 원어치의 코인을 예치했던 피해자 임수혁(가명‧40대)씨는 "책임을 회피하는 경영진 측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하루인베스트 측은 초호화 변호인단으로 대응하지만 가진 돈을 잃은 피해자들은 변호인을 선임할 돈도 부족한 상황이에요. 형사처벌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피해 구제에 좀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어요."
피해자들을 법률대리하고 있는 홍푸른 변호사(디센트 법률사무소)는 가상자산 특성상 추징과 몰수가 어려워 전문적 수사가 필수라고 짚었다.
홍 변호사는 "은행이나 부동산처럼 법적 강제력으로 추징 보전이 가능한 전통적인 자산과 달리, 가상자산은 탈중앙화 돼 있어 운영 주체가 없기 때문에 추징 명령을 이행할 주체가 없다"며 "가상자산에 대한 전문적인 수사 기법이 필수인데 압수수색 과정에서 비트코인 지갑에 대한 개인 키(KEY)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부연했다.
분명 그릇된 선택이지만…"피 끓는 심정 조금만 이해해달라"
하루인베스트 대표 이씨를 법정에서 흉기로 찌른 강씨는 살인미수, 법정소동 등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구속 송치됐다. 피해자들은 강씨의 행동이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다"면서도 "피해 구제가 요원한 현 상황을 봐서 선처해 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강씨의 법률 대리인에 따르면 그는 출금정지가 일어난 2023년 6월부터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범행 당시에는 하루인베스트 측을 고소했으나 재판이 진행된 후에도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절망감이 극에 달해 있었다는 게 변호인의 설명이다.
하루인베스트 사태 피해자 김형준(가명‧20대)씨가 작성한 탄원서. 김씨 제공민서 씨는 온라인을 통해 다른 피해자들에게 탄원서 연대 서명을 받고 있다. 강씨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에는 외국인 피해자도 일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탄원서에는 재판부에 "강씨가 피해자들의 고통을 대변하고 있다"며 "사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감안해 달라"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강씨와 함께 하루인베스트 관련 공개 재판을 함께 방청하기도 했다는 민서 씨는 강씨를 이렇게 기억했다.
"제가 재판 방청에 가는 날이면 전날 밤 서울에 올라와서 돈이 없으니까 고속터미널역에서 노숙을 하곤 했어요. 그때 그 분(강씨)이 도와준다고 선뜻 나서기도 할 정도로 착하셨는데…. 다만 유독 피해 회복에 대해 비관적이었어요. 다른 피해자들에게 '돈 돌려받을 희망 같은 건 버려라'는 말을 자주 했죠. 다른 피해자들도 이혼 등 삶이 다 파괴돼서 고통스러워하고 계세요. 재판부가 그 절박함을 조금만 알아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