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상 첫 '9월 폭염경보'가 내려진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어린이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박종민 기자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8일까지 낮 최고기온 28~35도의 '폭염'이 예보된 가운데 정부가 폭염과 한파 등 기후위기가 국민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관련 정책에 반영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복지부 산하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최근
'기후위기에 따른 정신건강 영향분석 및 평가도구 개발'이란 과제명의 연구용역 입찰을 공고했다. 소요 예산은 1억 원 정도다.
국립정신건강센터는 "기후변화로 인한 정신건강 및 심리사회적 문제가 심화되고 있으며, 건강·소득수준·연령 등의 상태에 따라 영향의 정도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이번 조사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정신질환자 또는 정신건강 고위험군은 일반인구에 비해 기후위기에 더 민감하고 다양한 단·장기 건강영향이 발생 가능하다"며 "기후위기가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경로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관련 지표와 정책 개발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센터는 해당 연구용역을 통해 전체 인구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변화에 따른 정신건강 및 심리사회학적 영향 관련 국내·외 문헌을 고찰하는 한편, 가용자료원을 활용해
우리나라 기후변화가 인구구조별(영유아·청소년·청년·노인 등) 정신건강 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예정이다.
또 기후위기에 정신건강이 좌우되는 취약군을 도출하고, 심리사회적 문제를 가중시키는 위험요인도 살펴본다. 궁극적으로 국내에서 적용 가능한 관련 평가도구를 개발해 적절한 정신건강 지원을 위한 정책 제언을 담아내겠다는 목표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제공올해 서울 등에서 '기상관측 이래 가장 늦은' 열대야 기록을 갈아치운 역대급 폭염이 이어지면서, '이상 기후'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직·간접적 영향을 주목하는 연구들은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도 '보건복지포럼' 8월호에 실린 '기후변화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정책과제'에서 "국내에서도 기후위기 적응 대책 등에 기후변화의 정신건강 영향에 대한 내용을 반영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보건 영역의 기후변화 관련 법률과 정책에서는 미흡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보사연 백주하 부연구위원과 김혜윤 전문연구원은 "폭염, 홍수, 태풍, 산불, 가뭄 등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은 스트레스, 걱정과 우울, 수면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자살생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정신건강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이들은 선행연구들을 인용해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의 극단적 상승'(폭염 발생)이 사람들의 기분장애(mood disorder), 불안(anxiety)과 관련이 있으며, 높은 기온으로 인한 불편함의 증가는 '적대 감정 및 신체적인 폭력'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과 멕시코 등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는 이 같은 폭염이 사람들의 자해 및 자살률 증가와 연관이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고 부연했다.
또한 기후변화와 관련된 사건을 직접적으로 겪지 않아도, 매스컴을 통해 관련 정보에 노출되거나 환경적·사회경제적 변화 등으로 인한 기후변화를 간접 경험한다면, 이 역시 정신건강에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이러한 영향에 가장 취약한 집단으로는 △아동 △노인 △정신질환자 △여성 △저소득 계층 등을 꼽았다.
특히 아동의 경우, 정신건강 영향을 다루는 데 있어서 성인보다 취약할 뿐 아니라,
어린 시절 극단적 기상사건에 따른 여파가 잘 관리되지 못하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정신건강 이슈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우려다.
백 부연구위원 등은 "우리나라는 특히 매년 폭염, 홍수, 태풍 등 자연재해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는데 그 영향과 피해는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난에 취약한 계층을 위한 정신건강 문제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국내에선 기후변화의 정신건강에 대한 영향과 대책 관련, 적합한 근거 마련과 정책으로의 연결성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기후변화의 정신건강 관련 직·간접적 영향에 대해 국가 정책, 지역단위 사업, 개인 등 다양한 차원에서 소통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전문가, 정책 의사 결정권자 등 소통의 대상을 폭넓게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