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의원연맹 소속 의원들을 만난 왕이 중국 외교부장. 베이징특파원 공동취재단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장관)이 내년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에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중국을 방문 중인 국회 한중의원연맹 소속 여야 의원들에 따르면 왕 부장은 전날 한국 의원단과의 회동에서 시 주석의 한국 방문과 관련해 'APEC 정상회의가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단의 한 의원은 "왕 부장이 '시 주석이 한국을 방문할 수 있게끔 한국이 APEC을 잘 활용해달라'는 뜻으로 이해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그동안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APEC 정상회의에 매번 참석해왔다.
왕 부장은 이날 회동에서 자신이 곧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입장 역시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시기를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왕 부장이 한국을 찾을 경우 시 주석의 방한 문제도 자연스럽게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 주석은 지난 2014년 7월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 사이 박근혜·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중국을 찾았지만 시 주석은 10년간 한국을 찾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도 중국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내년 경주 APEC을 계기로 시 주석의 방한에 대해 한국과 중국 양측 모두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어 11년 만의 시 주석 방한이 성사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 1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내년 APEC 정상회의가 (시 주석 방한의)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면서 "고위급 교류에서 항상 그것은 중요한 관심사 중에 하나이고, 그래서 계속 논의해왔고 또 앞으로도 하반기 다양한 계기에 관련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며 말했다.
조 장관 이어 "그동안 우리 대통령이 여섯 번 중국을 가셨고 시 주석은 딱 한 번 오셨는데 여러 가지 사항들을 종합적으로 볼 때 시 주석이 먼저 오셔야 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윤 대통령의 방중이 아닌 시 주석의 방한 추진 이유를 설명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같은날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이후 상호 고위·실무급 교류와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면서 "중국도 예년과 달리 정상적 한중관계 복원에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상호 교류를 회복하면 언젠가 시 주석이 방한할 수 있다고 본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국내 정치적으로 반중정서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현 정부 입장에서 미국 등 우방도 함께 참여하는 다자회의를 계기로 한 시 주석의 방한은 중국과의 관계회복이라는 이점은 챙기면서도 정치적 부담은 덜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도 시 주석이 중요 다자회의인 APEC 정상회의에 출석 도장을 찍으면서 11년 만에 방한이라는 의미도 부여할 수 있어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왕이 부장의 '좋은 계기' 발언도 양측의 이런 공감대 속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도 지난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당시 윤 대통령의 방한 요청에 "코로나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방한 초청에 기쁘게 응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지난해 9월 중국을 찾은 한덕수 국무총리와 만나서도 "방한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다만, 내년 11월 개최되는 APEC까지 1년 이상 남았다는 점에서 시 주석의 방한이 실제 성사되기까지 갈길이 멀다. 이와 관련해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일 "충분한 준비를 하고 적합한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또 풍성한 성과를 얻을 필요가 있다"며 시 주석 방한의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