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닉된 마약류를 경찰이 회수하는 장면. 서울 강남경찰서 제공가족여행을 가장해 동시에 30만여 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의 마약류를 필리핀에서 국내로 몰래 들여와 전국에 퍼트린 마약 조직원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밀반입책 A(33)씨와 유통책 B(45)씨 등 2명, 판매·운반책 C(21)씨 등 모두 4명을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고 29일 밝혔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필로폰을 매수해 투약한 유흥업소 접객원 D(23)씨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A씨 등은 올해 6월 17일부터 지난달 18일까지 필리핀에서 국내로 총 4차례에 걸쳐 필로폰 6.643kg, 케타민 803g 등 35억 원 상당의 마약류를 밀반입해 유통, 판매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이 들여온 필로폰, 케타민은 30여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특히 밀반입책 A씨는 아내, 자녀 2명과 함께 가족 여행을 하는 것처럼 필리핀으로 출국한 후 현지에서 마약류가 담긴 배낭을 전달 받아 국내로 들여온 것으로 조사됐다. 배낭 안쪽 절개된 공간에 마약이 채워져 봉제됐으며, 나머지 공간엔 바나나칩 등을 넣어 의심을 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방식으로 A씨는 필리핀 공항 검색대 엑스레이에 걸리지 않았으며, 가족과 손을 잡고 국내로 들어오면서 인천공항에서 선택적으로 진행하는 검사도 피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수사는 유흥업소 접객원 D씨가 지난달 10일 경찰에 자진 출석해 필로폰 투약을 자수하면서 시작됐다. 경찰은 D씨가 필로폰을 입수한 장소의 폐쇄회로(CC)TV를 바탕으로 추적해 경기도 수원에서 판매·운반책 C씨를 검거했다.
일명 드랍퍼라고 불리는 C씨는 서울, 경기, 충청 지역 주택가의 소화전, 보일러 등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포장된 마약을 은닉하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C씨의 필로폰 은닉 장소 정보를 확보해 집중 수색을 펼친 결과 58곳에서 58g의 필로폰을 회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C씨가 받은 필로폰의 출처도 추적해 유통책 B씨 등 2명의 인적 사항을 특정, 이들 역시 검거했다. B씨 등 유통책들의 주거지에서는 1g씩 소분된 2천개의 필로폰 뭉치들과 소분되지 않은채 통에 담겨져 있는 1kg의 필로폰이 발견됐다.
경찰은 B씨 등이 경북 경주시 야산 인근에서 마약류가 담긴 배낭을 회수하는 것을 확인해, 결국 배낭을 놓고 간 밀반입책 A씨를 특정했다. 이후 A씨의 차량번호를 확보해 천안에 있는 A씨의 주거지에서 그를 검거했다.
일당은 해외 총책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밀반입 △유통 △운반 등으로 역할을 분담했으며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전국 각지로 마약을 유통한 것으로 조사됐다. 밀반입, 유통책은 '고액 아르바이트' 광고를 통해 모집됐는데, 이들은 서로 단절된 채로 텔레그램 대화방 운영자인 총책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아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일당이 시중에 유통하지 못한 필로폰 3.18kg과 케타민 803g(약 18억 원 상당)을 압수했다. 경찰이 압수한 마약류는 동시에 14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다.
한편 경찰은 A씨의 아내도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A씨를 주거지에서 검거했을 당시 집 내부에 주식 리딩방 범죄에 활용되는 것으로 보이는 중계기가 작동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가족들이 범행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경찰은 해외 총책이 A씨 가족의 필리핀 체류 비용을 전부 부담한 점 등을 봤을 때 A씨의 아내 역시 범행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조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경찰은 검거되지 않은 총책과 운반책, 매수-투약자들을 계속 추적하고, 범죄수익금의 향방 파악에도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가족여행을 가장해 해외로 나가 마약류를 들여오고 국내에 유통한 것을 직접 확인한 사례"라며 "국민의 평온한 삶을 파괴하는 마약류 범죄에 대해 철저한 수사로 끝까지 추적해 엄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