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 이용자와 게임사 간 분쟁의 촉매제가 되곤 했습니다. 지난 2021년 2월 메이플스토리 이용자들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며 '트럭 시위'까지 나선 것이 시작이었죠.
드디어 확률형 아이템 조작 논란과 관련한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대법원은 지난 28일 넥슨이 이용자에게 결제 대금의 5%를 돌려줘야 한다는 2심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게임산업법 개정과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에 이어 사법부 판결까지 잇따르면서 약 3년 간 이어져 온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한 논의는 한층 뜨거워졌습니다.
"확률 정보 미공개는 기망행위"…법원 판결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28일 이용자 A씨가 넥슨코리아를 상대로 제기한 매매대금반환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대법원은 "넥슨의 상고 이유는 소액사건심판법에서 정한 적법한 이유가 될 수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넥슨은 구매 금액의 5%에 해당하는 57만 원을 반환하라'는 원심 판결이 확정된 겁니다.
이번 소송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용자 A씨는 넥슨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구체적인 확률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넥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합니다. 1심 재판부는 넥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넥슨이 A씨에게 전체 대금의 5%를 돌려줘야 한다며 이용자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여러 근거를 들어 넥슨의 '적극적인 기망행위'를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게임 이용자들이 피고(넥슨)가 제공하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지위에 있고, 확률형 아이템 확률을 공개하지 않는 이상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확률 정보의 주권이 게임사에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특정 옵션 조합을 차단한 것은 넥슨의 의도적·계획적 설정에 따른 결과라고도 판단합니다. 나아가 이렇게 특정 옵션 조합을 차단한 것을 공지하는 데 불가피한 제약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언급했습니다. 즉, 2심 재판부는 넥슨이 확률 정보를 충분히 공지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고, 특정 아이템의 확률 역시 의도적으로 '조작'했다고 본 겁니다.
결국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형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넥슨은 게임 이용자들로 하여금 해당 아이템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는 '그릇된 관념'을 갖게 했고, 이는 이용자들이 비용을 지불해 아이템을 사도록 유도·방치한 적극적인 기망행위라고 판단했습니다.
입법·행정·사법…확률형 아이템 관련 '기준 마련'
지난 2021년 2월 25일 오후 메이플스토리 이용자들이 설치한 트럭이 경기도 성남시 판교 넥슨 본사 앞에 서 있다. 이준석 기자이번 판결은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논의의 중요한 조각이 맞춰졌다고 평가됩니다. 2021년 이후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분쟁이 일자, 중앙행정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에 나선 데 이어, 입법부인 국회도 게임산업법을 손 보고자 했는데요. 이번 판결로 확률형 아이템의 사법적 기준까지 마련됐습니다.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해 이용자들의 거센 항의가 있었던 2021년 2월 이후 공정위가 먼저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같은해 4월 넥슨 대상 현장조사를 시작해 확률 조작과 관련된 전자상거래법 위법 여부가 있는 지를 살폈고요. 약 3년의 조사 끝에 과징금 약 116억 원을 넥슨에 부과했습니다. 역대 공정위가 전자상거래법상 위반 행위에 매겼던 최대 금액으로 이목을 끌었죠.
문화체육관광부가 '2022년도 국정감사 업무현황' 자료에서 확률형 아이템 법적 정의와 정보 표시의무 규정을 담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입법 차원에서도 변화 예고가 일었습니다. 여러 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발의해 지난 3월부터 '게임산업법 개정안'이 시행됐습니다. 확률형 아이템 종류와 종류별 공급 확률정보 표시가 개정안의 골자입니다.
넥슨도 나름의 노력을 해왔습니다. 소송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넥슨은 2021년 3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확률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또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해 소비자원 집단 분쟁 조정에서 이례적으로 집단 분쟁 조정에 참여하지 않은 이용자에 대해서도 보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요. 무려 보상액만 219억 원으로 역대 최대 금액이었습니다.
이번 소송에 원고의 법률대리인으로 참여한 이철우 변호사는 "공정위와 같은 행정부가 부응했고, 국회가 반응해 게임산업법 개정을 했고 대법원이 이러한 판결을 확정해 게임 이용자의 권익 보호가 중요한 주제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가 있다"며 "넥슨도 선제적으로 잘못을 인정한 것은 좋은 태도라고 평가한다"고 밝혔습니다.
기준은 마련됐지만 이제 시작입니다. 이번 판결로 사법적 기준이 마련된 만큼 확률형 아이템을 두고 이용자들의 소송이 줄이을 수 있다는 건데요. 업계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만과 더불어 규제까지 강화되면서 압박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라는 반응입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게임 환경 위에서 게임사들이 어떻게 경쟁력 확보에 나설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