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인. 연합뉴스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취임 직후 미국과 인접한 멕시코·캐나다는 물론 중국에도 고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주된 이유중 하나로 신종 마약인 '펜타닐'(Fentanyl)을 꺼내 들었다.
펜타닐 문제는 미국에서 국가 안보 위협 요인으로 거론될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실제로 18~49세 미국인 사망 원인 1위는 펜타닐 과다복용이었고, 2022년에만 약 11만명이 펜타닐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사망한 미군의 수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펜타닐로 인해 죽은 것이다.
이른바 '좀비 거리'로 불리는 미국 필라델피아 켄싱턴 애비뉴가 전 세계 방송을 타면서 미국의 이미지에 커다란 먹칠을 했다.
대낮에도 거리에는 흡사 좀비처럼 비틀거리며 걷거나 혼잣말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선뜻 이곳을 걸어다니기가 쉽지 않다.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때와 마찬가지로 이런 비극적인 상황의 원인 제공자로 중국을 지목하고 멕시코·캐나다를 배후로 보고 있는 것이다.
펜타닐에 취한 듯한 미 샌프란시스코의 한 노숙인. 연합뉴스펜타닐은 심한 통증을 관리하는 데 사용되는 인공 아편의 일종으로 1960년 벨기에 의사가 개발했으며 1972년 의료용으로 사용되도록 승인됐다.
펜타닐은 헤로인보다 50배나 강력하지만 재료비가 싸고 크기가 작아 순식간에 길거리 마약으로 자리를 잡았다. 예를 들어 몇천 달러에 구입한 분말 형태의 펜타닐 1kg으로 수백만 달러 가치의 알약 수십만 개를 만들 수 있을 정도다.
펜타닐은 약 10년 전부터 중국에서 국제우편 등으로 본격적으로 미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우편 시스템이나 익일 배송 회사를 통해 작은 소포 형태로 미국으로 보내져 당국의 감시망을 피했다.
펜타닐 폐해의 첫 징후는 2013년 봄 로드아일랜드의 영안실에서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자가 갑자기 증가하면서 감지됐다.
현재는 우편 등에 대한 추적이 강화돼 중국 업체들이 미국에 직접 수출하기보다는 주로 펜타닐을 만드는 데 필요한 화학 원료를 멕시코의 마약밀매 조직에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정부는 멕시코에서 중국산 원료로 만든 펜타닐이 국경을 넘어 미국에 유통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2016년 이후 남부 국경에서 펜타닐 압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따라 트럼프 당선인은 첫 임기 때인 지난 2017년 10월 오피오이드(아편류)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급기야 트럼프 당선인은 2018년 12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펜타닐 규제 강화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에도 미국의 관세 압박을 받던 시 주석은 트럼프의 여러 요구를 수용하면서 그중 하나로 펜타닐을 규제 약물로 지정해 미국에 판매하다가 적발될 경우 법정 최고형에 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중국은 미국과 펜타닐 협력에 나섰지만 양국 사이가 썩 좋지 않을 때는 협력을 등한시하는 등 펜타닐 문제를 양국 관계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25일 대(對)중국 관세 10% 추가 계획을 발표하면서 "중국 지도부는 마약상에게 사형에 처하겠다고 말했지만 안타깝게도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미국 세관에서 압수한 펜타닐. 연합뉴스다만 트럼프 당선인이 뜻대로 펜타닐 문제를 관세와 연동해 완전히 해결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일단 미국 정부는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얼마나 많은 펜타닐이 들어오는 지에 대한 구체적인 연방 자료가 없다. 중국에서 보낸다는 원료물질의 양도 가늠하기 어렵다.
여기다 펜타닐은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마약으로 많은 사회 문제를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최신 공중 데이터는 펜타닐 과용이 조금이나마 감소하고 있고 국경에서 압수된 펜타닐의 양도 줄어들고 있다.
물론 이런 수치가 효과적인 단속 집행의 결과인지 아니면 밀수 시도 자체가 감소한 건지도 불문명하다.
캐나다에서 북부 국경을 따라 밀수된 펜타닐의 양은 지난해 기준 남부 국경에서 압수된 것의 0.2%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특히 펜타닐을 구성하는 원료들이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반드시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만들어진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이들 국가가 아닌 동남아시아나 인도 등에서 생산된 완제품이 미국에서 소비되고 있는 현실을 애써 눈감기가 어렵다. 원료 물질 전부의 유통을 막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펜타닐·관세 연동 구상은 벌써부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지난달 29일 예고 없이 마러라고를 방문해 트럼프 당선인을 비롯한 내각 지명자들과 만찬을 가졌다.
면담 직후 트럼프 당선인은 "트뤼도 총리와 불법 이민 문제 등을 논의했고, 함께 협력하기로 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고관세 엄포'는 또 다른 국가들에게도 전달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30일 "브릭스(BRICS) 국가들이 달러 외 기축 통화를 모색한다면 100% 관세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비서방 신흥경제국 연합체인 브릭스는 역내 통화 활용을 늘리는 방식으로 달러화 사용 비중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