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를 해제한 4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이 비상계엄 사태 관련 보도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가 해제됐지만 국정 파행 가능성이 커지면서 산업계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통상 환경이 급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어느 때 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졌지만, 불안한 정국이 이어지면서 이런 '난제'를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재계 "계엄 사태 여파, 아직은 약하지만 앞으론…"
미국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외적인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워왔던 기업들은 4일 비상계엄령 여파 이후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하루종일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SK그룹, LG그룹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전날 밤부터 이날 오전까지 주요 경영진회의와 위기대응조직, 대관업무 담당 조직에서 국내외 상황을 주시하며 개별 기업과 그룹을 둘러싼 리스크 점검을 이어갔다.
국내 주요 기업 다수는 수출에 적지 않은 비중을 두고 있어 이번 사태로 인한 환율 급변 상황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황은 아니다. 다만 지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거치면서 국내 주요 기업 대부분은 환헤지 등 환율 변동성 대응 방안 시스템 등을 갖추고 있어 이번 사태로 인한 단기적인 영향은 제한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간밤에 우리 수출입 기업에게 해외 파트너사로부터 많은 문의가 들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존 계약의 연기나 해지 등을 요청하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 계약이 예정대로 진행되는지와 상호 거래 관계 지속에 문제는 없는 지에 대한 문의 차원이었다"고 전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비상계엄사태로 당장 국내 주요 기업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상황은 아니고, 사업 방향성이나 전략 수정을 검토하는 단계도 아니"라면서도 "다만 사태 장기화될 경우 추후 사업 수주와 합작 투자 등에 애로사항이 생길수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귀환 코앞…"내수도 안 좋은데 너무 암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연합뉴스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후 통상환경 급변이 예고된 상황이어서, 정부가 이를 적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과정에서 △보편관세 20% 부과 △멕시코산 제품에 관세 25% 관세 부과 △반도체 보조금 백지화 등을 선언했고, 최근 미국 상무부는 국내 반도체 업계가 대부분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HBM(고대역폭메모리)에 대한 대중(對中) 수출 통제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모두 우리 기업들의 실적에 상당한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의제들이다.
신용평가사 S&P글로벌은 최근 보편관세 부과시 국내 자동차 업계 EBITDA(세금·이자·감가상각비를 차감하기 전 순이익)이 20%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멕시코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해 미 정부가 줬던 관세 면제 혜택이 사라질 경우 이를 노리고 멕시코에 생산 시설을 구축한 국내 2천개 가까운 기업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 정부의 보조금 지급을 전제로 현지 투자에 나섰던 국내 반도체 업계도 보조금 백지화시 글로벌 공급망 전략을 다시 짜야 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4대 그룹이 투자를 많이 해 놓았고, 민관이 똘똘 뭉쳐서 합동해 대응 전략을 짜도 될까 말까인데, 내각 총 사퇴 등 국정 공백이 발생하면 문제가 정말 심각해진다"며 "내수도 안 좋은 상황인데 국내 분위기가 혼란스러울 것이 뻔해서 너무 암울하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도 한 목소리로 이를 우려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다양한 통상 정책 변화가 예상되는데 1월까지 지금의 상황이 정리되지 않고 미국의 새 정부를 맞이 한다면 국내 기업들은 미국 정부가 관세를 때리는 대로 받아야 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강대 경제학과 허준영 교수도 "통상 환경이 변화하게 되면 대기업들은 어느 정도 대응할 여력이 있겠지만 작은 기업들은 정부가 대응을 해줘야 한다"며 "지금도 이런 부분이 원활하게 되지 않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번 사태의 피해는 큰 기업보다 작은 기업이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