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12·3 내란사태에 피의자로 얽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및 국무총리의 국정 운영을 고리로 한 '방패막이'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수사에 일절 불응하고 헌법재판소 심판 준비에 몰두하는 가운데, 한 총리 역시 수사 방해를 모르쇠하거나 헌법 재판관 임명엔 확답을 미루는 등 사실상 '지원 사격'을 하는 모양새다.
이도 모자라 윤 대통령의 무기였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는 그대로 승계하는 조짐을 보이면서 정국 안정보다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부권 쥔 韓대행, 내란 및 김건희 특검법도 '줄타기'
정부는 한 권한대행 주재로 19일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선 양곡관리법 등 6개 쟁점 법안에 대한 거부권 심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6개 쟁점 법안은 국회법·국회증언감정법·양곡관리법·농수산물유통및가격안정법·농어업재해대책법·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이다. 야당 주도로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정부에 이송됐다. 이 법안들의 거부권 시한은 오는 21일까지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거부권 여부와 관련해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국가의 미래 또 국민의 시각에서 봤을 때 어느 게 타당한지에 대해 최종 순간까지 점검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지만, 행사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양곡관리법은 지난해 3월 윤 대통령의 취임 후 '1호 거부권' 법안이기도 하다. 한 권한대행은 당시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바 있다.
양곡관리법은 쌀값이 기준 가격에서 폭락 또는 폭등하면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매입하는 등의 대책이 담겨 있다. 야당은 농가경영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쌀값을 안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부·여당은 쌀 공급 과잉을 유발하고 국민 혈세 부담이 증가한다며 반대해왔다.
국회증언감정법 및 국회법 개정안도 야당과 정부·여당의 입장이 충돌해왔다. 야당은 국회의 증언 청취와 예산 심의·의결권이 강화된다는 취지이지만 정부·여당은 기업 영업 기밀 침해와 국가 예산 발목잡기 등의 논리를 들어 맞섰다.
정부는 그동안 여야 합의 없는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해왔고, 정부 입장의 '연속성'을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거부권을 정당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정책에 대한 정부 시각과 판단이 단번에 바뀌긴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동안 25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온 윤 대통령과 같은 행보로 정국 긴장감은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국 안정을 강조해온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 정국'을 되풀이 하는 셈이다.
한 권한대행은 특히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서도 '줄타기'를 하는 모습이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두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를 두고 "마지막 순간까지 검토를 해서 어느 것이 헌법에 맞고 어느 것의 법률에 맞는지 점검을 해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사진취재단한 권한대행은 내란 사태 발생 일주일 전인 지난달 26일 세 번째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면서 "거부권은 우리 헌법에서 대통령이 입법부의 권한 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밝혔다.
이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 이번에도 거부권 행사가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내란 특검법 역시 거부권 행사 시한인 내년 1월 1일까지 내란 수사 및 여론 추이를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
특검 출범이 현재 내란 수사를 하는 검찰 기소보다 늦어지면 특검은 추가 기소가 어려워 '들러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 시간이 흐를수록 한 권한대행이 특검 수용에 부담을 덜어낼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 경우 거부권을 통해 국정 운영을 좌우하고 내란죄 피의자 신분으로 국정을 수사에 '방패막이'로 삼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권한대행은 소극적인, 현상 유지적 권한 행사만 가능하다는 게 다수의 견해"며 "권한대행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책이나 현상 변경을 위한 권한을 행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밝혔다.
헌법재판관 임명 '유보' 입장, 대통령실 수사 거부 '모르쇠'…방어 행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의 모습.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을 접수한 헌법재판소는 16일 첫 재판관 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심리 절차에 착수한다. 류영주 기자그럼에도 한 권한대행은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할지 여부에 대해서도 확답을 미루고 있다.
뿐만 아니다. 대통령실이 수사 기관의 수사를 막아서는 것도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윤 대통령의 헌재 심판 및 수사 지연 작전에 사실상 '지원 사격'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는 9명 정원 중 3명이 공석으로 현재 '6인 체제'다. 헌법에 따르면 탄핵 결정엔 재판관 6인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6명 전원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통과되는 것이다.
이에 야당은 추가 헌재 재판관 선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여당은 윤 대통령이 직무 정지 상태이기에 권한대행은 임명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과 논란도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권한대행이 국회에서 선출한 헌법 재판관을 절차적으로 임명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헌재의 입장까지 나온 상황에서 정부의 애매모호한 스탠스는 논란이 될 전망이다.
김정원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은 전날 국회에 출석해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저희는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총리실은 대통령실과 경호처가 내란 사태를 수사하는 공조수사본부의 압수수색 시도를 거부한 것에 대해선 "법과 기본적인 수사 절차에 따를 것"이라며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한 권한대행이 이와 관련해 지시를 한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는 조항을 들어 압수수색을 거부한 경호처의 입장과 결을 같이한 셈이다.
지난 2017년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역시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에 협조하지 않은 전례도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한 권한대행의 국정운영을 고리로 한 '내란 방어' 행보가 점차 현실화되는 가운데 야당은 '탄핵'을 시사하며 경고하고 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권한대행 자리를 대통령이 된 것으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며 "권한을 남용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묵과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 측은 이에 대응 카드로 권한대행 탄핵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면 헌재에 위헌 소송 등을 내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요건 규정이 별도로 없다는 점을 들어 대통령에 준하는 재적 의원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탄핵이 된다는 논리로 다퉈보겠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