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탑승객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여객기가 착륙 중 활주로를 이탈해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발생 직후 소방대원들이 수습작업을 벌이고 있다. 무안(전남)=황진환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이마스'·'MA-1A' 왜 없었나?…실효성 두고 의견 분분 ②피해 키운 '콘크리트 둔덕'…다른 방법 없었나 (계속) |
콘크리트 둔덕 위 방위각시설(로컬라이저·착륙 유도 안전시설)이 '제주항공 참사' 피해를 둘러싼 여러 논란의 중심에 섰다.
참사 키운 '콘크리트 둔덕'…안전지역 길었더라면
지난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여객기 착륙을 돕는 로컬라이저와 이를 지지하는 콘크리트 둔덕이 항공기와 그대로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체 탑승인원 181명 중 179명이 숨지는 등 역대 국내 발생 항공기 사고 중 인명피해가 가장 큰 사고다.
무안국제공항의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끝단과 수평을 맞추기 위해 높이 2m 가량의 콘크리트 둔덕 위에 설치됐다.
사고 여객기는 동체착륙을 시도하다 시속 200㎞가 넘는 속도로 이 둔덕에 부딪치며 폭발했다.
활주로를 미끄러지듯 이탈했을 때까지 기체 손상이 비교적 적었던 점을 감안할 때, 콘크리트가 아닌 부러지기 쉬운 재질의 구조물과 충돌했다면 희생자가 줄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로컬라이저 위치상 안전지역를 확보하기 어려웠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외에서는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탈할 상황을 대비해 활주로 끝단(착륙대 끝단 이전)부터 이후 시작되는 안전지역(활주로 종단안전구역과 상이)을 되도록 넓게 만들어야 한다는 권고 규정을 운영 중이다.
유엔 산하 전문기구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안전지역 길이를 300m 이상으로 권고하고 있으며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이보다 긴 305m 이상으로 권고한다.
무안국제공항의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끝에서 불과 250m 가량 떨어졌다.
이는 국내 다른 공항에 비해서도 짧은 것으로, 청주공항과 광주공항의 경우 활주로 끝에서부터 300m 떨어진 지점에 로컬라이저가 설치됐다.
인천국제공항은 로컬라이저가 활주로 끝 지점에서 295m(1~3활주로), 298m(4활주로) 떨어진 지점에 설치됐다.
국토교통부 제공국토부 "규정상 문제없다"…곳곳에서 위반 정황 드러나
정부는 일찌감치 로컬라이저 설치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규정 위반으로 보이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무안국제공항의 로컬라이저를 비롯한 콘크리트 둔덕은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에 속하지 않아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국토부가 제시한 '공항·비행장시설 및 이착륙장 설치기준'에 따르면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은 항공기가 착륙 후 제때 멈추지 못하고 활주로 끝부분을 지나쳤을 경우, 항공기의 손상을 줄이기 위해 착륙대 종단 이후에 설정된 구역을 뜻한다.
국토부는 둔덕을 포함한 로컬라이저가 이 구역에서부터 5m 뒤에 설치돼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와 상반되는 근거가 제시되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국토부 '공항·비행장시설 설계 세부 지침' 제18조에는 정밀 접근 활주로의 경우, 계기착륙장치(ILS)의 로컬라이저가 통상 첫 번째 장애물이 되며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은 이 시설까지 연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무안국제공항은 정밀 접근 활주로에 해당된다.
국토부가 근거로 제시한 '공항·비행장시설 및 이착륙장 설치기준'에서도 이같은 내용이 확인됐다.
설치기준 21조 4항에 따르면 정밀 접근 활주로는 로컬라이저가 설치된 지점까지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을 연장해야 한다.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한 무안국제공항 사고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수습작업을 하고 있다. 무안(전남)=황진환 기자종단안전구역 권고 '미준수' 지적 사실도
종단안전구역 권고기준을 준수하지 못해 지적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 5월 9일 한국공항공사 홈페이지에 게시된 '무안국제공항 공항운영규정'에 따르면 무안국제공항은 '공항안전운영기준 제76조 및 비행장 시설 설치기준 제21조 활주로 종단 안전구역' 규정을 지키지 못해 한국공항공사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공항운영규정에는 공항의 부지 정보부터 시설 정보, 안전관리 시스템과 제한사항까지 공항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이 담겼다.
로컬라이저 설치 지점이 권고기준을 준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공항운영규정 '제한사항'에 기재됐다.
착륙대 끝으로부터 240m 길이의 종단안전구역을 확보해야 하지만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무안국제공항은 01활주로(정방향, 남→북)에는 종단으로부터 202m 떨어진 곳에, 사고가 난 19활주로(역방향, 북→남)에는 199m 떨어진 곳에 로컬라이저를 설치했다.
한국공항공사는 이 자료에서 01활주로와 19활주로에 각각 38m, 41m의 종단안전구역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무안국제공항 측은 "무안국제공항 2단계 확장 시 추가 확보를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경찰, 국토부와 별도로 로컬라이저 설치 규정 집중 수사
로컬라이저 설치의 적법성을 두고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경찰도 별도의 수사에 나섰다.
전남경찰청 수사본부는 사고 수습 및 사망자 신원 확인 등에 집중하고 있지만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절차에도 착수했다.
여러 사안 중에서도 로컬라이저에 대한 쟁점을 면밀히 살필 계획이다.
경찰 수사는 국토부 조사와 별개로 이뤄진다.
수사본부는 특히 로컬라이저가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는 것으로 봐야하는지, 규정에 맞게 설치됐는지 등 여부를 가리는데 집중할 방침이다.
경찰은 무안국제공항 관리주체와 제주항공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뒤 로컬라이저 설계업체 등에 대해서도 수사에 나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