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원 감독은 늘 연출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도 사비를 들여 단편영화 제작을 검토 중이었는데 마침 '조명가게' 연출 제의가 왔다고 전했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욕만 안 먹었으면 했는데…"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김희원 배우 겸 감독이 내뱉은 한마디였다. 작품에 대한 중압감을 에둘러 표현한 말이었다.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조명가게'는 김희원 감독의 첫 연출작이다. 더욱이 2023년 '무빙'으로 소위 대박을 터트린 강풀 작가의 두번째 각본작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프리프로덕션까지 포함한 9개월 동안 작품에 매달리며 공을 들였다.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 강풀 작가 앞에서 직접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희원 감독은 "현장에서 의견이 달라지면 안 되니까 1화부터 8화까지 모든 신을 콘티 작업해 작가님 앞에서 연기를 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작가님 사무실에서 진짜 1인극을 했다"며 "인물이 이렇게 대사하면 이렇게 넘어지겠지라면서 (보여줬다). 작가님과 얘기를 많이 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제가 자주 찾아갔다. 새벽 2시에도 만나고 아침 6시에도 만나고 낮에도 하고 그때 (작가님을) 되게 귀찮게 했다"며 "진짜 모든 신을 혼자서 연결하려니까 힘들더라"고 웃었다. '다른 작가를 만나더라도 1인극을 할 것이냐'는 물음에는 "그럴 것 같다"고 답했다.
김 감독이 첫 연출한 '조명가게'는 어두운 골목 끝에 있는 조명가게에 수상한 비밀을 가진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펼쳐지는 내용을 다룬다.
가게를 지키는 사장 정원영(주지훈)과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보는 간호사 권영지(박보영), 버스 정류장에서 매일 김현민(엄태구)을 기다리는 이지영(김설현), 딸 주현주(신은수)를 매일 조명가게에 보내며 전구 심부름을 시킨 정유희(이정은)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 윤선해(김민하)와 그 주위를 맴도는 박혜원(김선화) 등이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강풀 작가가 날 선택…韓 장례문화 보여주고 싶었다"
배우 생활하면서 대본을 숱하게 본 김희원 감독은 "강풀 작가 대본에는 정서의 흐름이 있다"고 짚었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김 감독이 첫 연출작으로 '조명가게'로 선택하게 된 건 온전히 강풀 작가의 결정이었다고 한다.
그는 "저도 궁금해서 작가님께 물어봤다. '한 번도 연출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왜 내게 맡겼냐'고 했더니 연기를 너무 잘해서라고 하더라"고 웃었다.
이어 "제 생각에는 무빙 촬영 때 최일환 선생님을 연기하면서 아이들을 위해 목숨까지 버려가며 싸울 만한 정당성이 부족하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 작가님이 설득이 확 됐다고 하셨다. 아마 그 때문인 거 같다"고 추측했다.
김희원 감독과 강풀 작가. 박종민 기자김 감독은 이번 작품을 촬영하면서 원작과 달리 추가되거나 수정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작가님과 많은 얘기를 하면서 세계관과 단어들의 뉘앙스를 일부 수정했다"며 "배우들은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했다. 무섭다, 슬프다는 표현을 어떻게 전달하는지에 대해 많은 회의를 거쳤다"고 밝혔다.
그렇게 탄생한 장면이 삼일장을 하는 장면이다. 그는 "한국의 장례 문화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해 전통 장례 의식을 하는 분을 모셨다"며 "온몸을 닦고 종이로 감싸 끈으로 묶는 것까지 장례 과정을 다 찍었다"고 말했다.
이어 "악기도 한국 악기를 썼다"며 "다만 그 장면이 너무 길다고 해서 좀 줄였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정원영과 정유희의 서사가 추가된 것에 대해선 "큰 줄기는 작가님이 제안했다"며 "뭐 때문에 이렇게 만나고 왜 못 알아보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제가 구체화했다"고 덧붙였다.
"촬영 위해 중환자실 세트 부숴가며 촬영했죠"
작품 속 윤선해와 박혜원의 빨강 구두는 흑백 화면 속 농구공과 함께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김 감독은 "큰 의미를 부여한 건 아니지만 붉은색이 이들의 사랑을 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조명가게 이야기는 5화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바꿔 말하면 4화까지는 서사를 쌓아 올리는 구조다. 김 감독도 "1화부터 4화까지가 굉장히 힘들었다"고 떠올린 이유다.
"고민하다가 장르별로 찍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1화는 서스펜스로, 2화는 약간 호러식으로 촬영했죠. 3화는 처음으로 활극이 나오고 4화는 반전을 줬어요."4화 마지막 장면에서 중환자실 모습을 담은 롱테이크 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김 감독은 "세트를 부숴가면서 촬영해야 했기에 중환자실에서 나오는 장면을 모두 찍고 마지막에 촬영했다"며 "몇 달 전부터 컴퓨터 그래픽으로 시뮬레이션을 만들고 현장에서도 카메라를 가지고 계속 연습했다"고 떠올렸다.
배우들에게는 필요한 부분만 지시했다. 그는 "주지훈은 그동안 화면에서 많이 움직인 거 같아서 이번 작품에선 가급적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며 "김설현은 모든 대사의 음이 높아 음을 낮춘 상태에서 감정을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마지막 장면인 신은수와 이정은 누나에게는 한쪽은 전구를 무조건 받지 말라고 했고 한쪽은 전구를 무조건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극 중에 나오는 음악 작업에도 참여했다. 특히 버스 사고 당시 나오는 노래는 이번 작품을 연출하면서 새로 작업한 곡이다.
그는 "기존에 있던 가요도 많이 붙여봤는데 어울리지 않았다"며 "어디서 히트한 것 같지만 처음 듣는 노래였으면 좋을 거 같았다. 가사도 사고에 맞게 새로 썼다"고 강조했다.
"연출이 100배 힘들어…참 다행이에요" 안도
조명가게 영상 말미에 이지영이 '슬퍼요, 그리워요'라고 하는 대사에서 '화나요'라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김 감독은 "넣을지 뺄지 고민하다가 더 따듯한 쪽으로 가자고 해서 뺐다"고 전했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김 감독은 첫 연출에 대해 절대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고 거듭 말했다.
그는 "(배우에 비해) 물리적으로 연출이 한 100배 힘든 것 같다"며 "시간이 많이 들고 스트레스도 많고 쉬는 날이 없었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머릿속으로 그려지지만 현실적으로 안 될 때가 많았어요. 만화영화처럼 나타내고 싶은데 안 되니 속상했죠. 모든 아이디어를 종합해 잘 만들어야 하다 보니 사람들하고 소통하는데도 눈치 보게 되더라고요."
다행히 김 감독의 첫 연출을 두고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룬다. 흥행은 물론 동료 배우들의 칭찬까지 이어졌다. 특히 주지훈은 김 감독이 차기작을 연출하면 대본도 보지 않고 함께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말해줘 고맙다"며 "참 다행이다. 선입견이라는 게 있을 수 있었는데 다행히 제 기준에선 욕이 별로 없었다"고 웃었다.
'조명가게'는 공개 후 12일간 올해 공개된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중 최다 시청 기록을 거뒀다. 이는 디즈니+ 런칭 이후 공개된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중 두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