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 이지혜 대표. 최영주 기자 "올해 최고의 '미친' 영화" "역대급 '개미친' 영화" "완전 미쳤다"
영화 홍보 문구에 써도 되나 싶은 카피피를 선택한 '서브스턴스'를 본 관객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진짜 미쳤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데다 마니악한 장르에 속하는 '바디 호러'(인체 훼손이나 변형 등에 중점을 둔 호러의 하위 장르)라는 점에서 '서브스턴스'는 개봉 전 흥행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개봉 후 "역겹다" "미쳤다"라는 반응이 속출한 만큼, '26만 관객 돌파'라는 수치는 '미친 흥행'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개봉한 지 한 달을 넘긴 '서브스턴스'는 역주행을 거듭하며 '2024년 독립예술영화 외화 1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경사는 국내에만 그치지 않았다. 주인공 데미 무어가 45년 연기 인생 '최초'로 연기상을 품에 안은 것이다.
도발적인 카피만큼이나 도발적인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서브스턴스'의 활약을 지켜보는 수입사 찬란 이지혜 대표는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찬란 사무실에서 진행된 CBS노컷뉴스와의 일대일 인터뷰에서 "감사함과 희열이 공존한다"라고 전했다.
외화 '서브스턴스' 스틸컷. NEW 제공 7배 높게 주고 산 '서브스턴스', '미친' 흥행 중
'서브스턴스'는 이른바 '미친 흥행'이 무엇인지 성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12월 11일 372개 스크린으로 첫걸음을 내디딘 장르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서브스턴스'는 장기 흥행을 이어가며 26만 관객 돌파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3주 차를 맞이하는 12월 24일부터는 평균 스크린 수가 157개로 줄어들었으나 16일부터 300대를 회복하더니, 19일에는 344개 스크린으로 다시 늘어났다. 개봉 3일째 스크린 수가 349개라는 점을 생각하면, 1주차 수준으로 올라간 것이다.
이지혜 대표는 지금의 흥행을 보며 "관객이 영화를 선택해 주시면 감사하면서도 희열도 있다"라며 감격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했을 때 30만은 갈 거 같다"라고 전망했다.
'서브스턴스' 수입과 개봉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었던 만큼 감회는 더욱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의 전작을 재밌게 본 이 대표는 '서브스턴스'의 흥미로운 시놉시스에 마음을 사로잡혔다. 이후 칸영화제 공식 상영 전 마켓 스크리닝을 통해 처음 본 '서브스턴스'는 예상대로 눈을 가리고 봐야 할 정도로 '센 영화'였다. 그렇지만 관람 후 첫 느낌은 "너무 재밌다"였다.
외화 '서브스턴스' 스틸컷. NEW 제공이 대표는 "명확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 감독의 연출 능력이 굉장히 잘 발휘돼서 선명하게 나온 작품이었다"라며 "가장 중요한 건 이렇게 재밌는 영화를 만나기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게 영화를 적극적으로 구매하는데 큰 밑바탕이 됐다"라고 설명했다.
다행히 다른 회사들보다 먼저 제안을 넣은 상황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처음 제시한 가격보다 7배 높게 구매하게 됐다. 그동안 찬란이 구매한 영화 중 가장 높은 가격이었다. 이 대표는 "영화를 구매하는 건 항상 힘들지만, 이번엔 많이 힘들었다"라고 토로했다.
그렇지만 영화에 대한 확신에 더해 수상 가능성이 높은 상황인 만큼 자신감도 있었다. 그는 "찬란이 호러 쪽 경험치가 있어서 개봉할 때 (마케팅을) 잘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배팅했다. 다행히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악마와의 토크쇼'가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둬서 '서브스턴스'도 무사히 개봉하게 됐다"라며 웃었다.
외화 '서브스턴스' 포스터. NEW 제공 '개미친 영화' 카피의 탄생
'서브스턴스' 흥행에는 배급사 NEW와 홍보사 로스크의 도움이 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을 배급하는 등 예술 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NEW의 실무진이 '서브스턴스'를 재밌게 본 것이 배급에 이르렀다.
이 대표는 "극장 시장이 예전과 같은 상황은 아니다 보니까 큰 한국 영화 위주로 배급했던 회사들도 외화로 시선을 돌리고 있던 상황"이었다며 "우리도 다른 영화보다 사이즈가 크다 보니 안정적으로 큰 배급사와 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NEW와 뜻이 맞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들 '서브스턴스'를 재밌고 흥미롭게 봤어도 위험 부담이 크다고 생각했다. '재밌긴 한데 너무 영화가 센데'라고 고개를 갸웃한 회사들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막판에 (투자 및 배급을) 주저했다"라며 "NEW가 과감하게 선택해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보에서도 '유전' '미드소마' '악마와의 토크쇼' 등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홍보사 로스크와 함께하며 역대급 도발적인 카피가 탄생했다. 특히 아리 에스터 감독의 'Hereditary' 국문 제목을 '유전'으로 지으며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던 김태주 실장은 이번에도 '서브스턴스'의 카피로 "올해 최고의 '미친' 영화" "역대급 '개미친' 영화" 등을 밀었다.
외화 '서브스턴스' 스틸컷. NEW 제공이 대표 역시 믿음으로 김 실장의 선택을 지지할 수 있었지만, 주변에서 걱정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개미친 영화'라고 했을 때 우리도, NEW도 우려를 많이 했다. 이런 단어를 공식 포스터에 쓸 수 있겠냐, 도대체 영화가 어떻기에 이러냐면서 화내는 사람들도 있었다"라며 "다행히 이 영화는 진짜 미친 영화였기에 잘 맞아떨어진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는 "결과적으로는 '개미친 영화'로 초반에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라며 김 실장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개봉 전 관객들의 눈길을 제대로 훔친 '서브스턴스'는 장기 흥행, 역주행을 통해 이지혜 대표조차 예상하지 못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는 "영화는 그 영화만의 운명이 있나 보다"라며 웃었다. 그는 최근 데미 무어가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을 언급하며 "너무나 완벽한 수상소감을 남겼고, 그것까지가 영화의 완성인 거 같다"라고 말했다.
"영화가 한 편이 (제작이) 마무리되고 개봉하지만, 그 이후까지도 모든 과정의 하나인 거 같아요. 저희도 되게 울컥한 수상소감이었어요. 관객분들이 길게 영화를 찾아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덕분에 '서브스턴스'와 정말 좋은 만남을 가졌습니다."
외화 '서브스턴스' 비하인드 스틸컷. NEW 제공 이지혜 대표가 뽑은 '서브스턴스' 명장면 3
#1. 엘리자베스가 거울을 보며 화장을 지우는 신 "그 장면에 엘리자베스의 모든 것과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데미 무어라는 배우를 봐왔다.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그걸 관객들에게 증명해 내며 정말 훌륭한 배우였다는 걸 다시 한번 증명한 것 같아서 기쁘다. 또 같이 나이 들어가고 있는 여자로서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 역시 좋은 경험이었다."
#2. 수의 첫 등장
"수(마가렛 퀄리)가 처음 등장할 때, 엘리자베스와 대비되어 젊음과 아름다움을 확실하게 보여준 장면이었다. 두드러지게 아름다움을 드러냈기에 영화가 직관적으로 딱 보인다는 점에서 그 장면을 꼽고 싶다." #3. 피 터지는 새해전야쇼 엔딩 "사실 많은 분이 호불호가 갈리지만, 무대에서 피 뿌리는 장면을 명장면으로 뽑고 싶다. 영화가 앞서 짚어온 폭력적인 시선들과 그런 시선을 가진 가해자들을 향해 피를 뿌리는 데서 오는 통쾌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장면을 두고 너무 나갔다, 갑자기 B급으로 갔다는 후기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 장면이 있어서 '서브스턴스'가 완성됐다고 생각한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