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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고양이는 혼자가 아니게 된다 '플로우'[최영주의 영화관]

그렇게 고양이는 혼자가 아니게 된다 '플로우'[최영주의 영화관]

핵심요약

애니메이션 '플로우'(감독 긴츠 질발로디스)

애니메이션 '플로우'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애니메이션 '플로우'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애니메이션 '플로우'의 주묘공(主猫公)인 고양이가 안시와 칸을 홀리고 오스카마저 사로잡으며 제대로 흐름을 탔다. 귀엽고 사랑스러워서도 있지만, 단순히 그 이유만은 아니다. 대홍수 속 동물 친구들과 여정을 떠난 고양이, 그 삶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삶'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았던 흔적만이 남아있는 세상, 홀로 집을 지키던 고양이는 갑작스러운 대홍수로 평화롭던 일상과 아늑했던 터전을 잃고 만다. 때마침 다가온 낡은 배에 올라탄 고양이는 그 안에서 골든리트리버, 카피바라,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를 만나고 서로의 차이점을 극복하고 팀을 이뤄 험난한 파도를 헤쳐 나간다.
 
미국 아카데미상 장편 애니메이션상, 골든 글로브 장편 애니메이션상, 칸국제영화제 사운드상,
세자르상 애니메이션상, 안시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심사위원상 등 전 세계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63관왕을 휩쓴 '플로우'(감독 긴츠 질발로디스)는 라트비아에 사상 최초로 오스카 트로피를 선물하며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애니메이션이 됐다.
 
'플로우'는 대사가 없는 영화, 정확히는 사람의 언어가 없을 뿐 "냐옹" "왈왈" 등 동물들의 언어만이 존재하는 영화다. 인간의 언어가 개입하지 않기에 오히려 동물들의 세계에 조금 더 깊숙하게 발을 들여놓게 되고, 우리들의 감정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효과를 가져온다.
 
애니메이션 '플로우'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애니메이션 '플로우'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플로우'가 고양이의 여정을 위해 주요하게 사용한 소재는 '물'이다. 이야기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자신의 트라우마나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이겨낼 때 성장한다. 그렇기에 '플로우'에서는 고양이가 두려워하는 물을 주묘공이 넘어야 할 과제로 잡았고, 물에 대한 두려움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대홍수'를 가져왔다.
 
고양이는 물을 싫어 피하려고 하지만, 대홍수의 여정은 고양이에게 물과 관련된 크고 작은 사건을 만나게 만든다. 물에 빠지기 일쑤고, 홀로 어둡고 깊은 물에 표류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고양이는 어떻게든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하고, 그런 고양이를 도와주는 대왕고래도 나타난다.
 
'플로우는' 주묘공 고양이가 두려움에 맞서가는 여정인 동시에 혼자였던 고양이가 다른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여정은 마치 로드무비처럼 펼쳐진다.
 
초반 고양이는 모든 동물을 경계한다. 같은 배에 동행하게 된 동물들에게 곁을 내주는 것도, 그들의 곁으로 가는 것도 모두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을 알게 되고,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고, 자신 역시 그들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고양이는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애니메이션 '플로우'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애니메이션 '플로우'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플로우'는 이 모든 과정이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 전개된다. 마치 삶이 예상치 못한 홍수와 풍랑과 비바람을 마주하더라도 흘러가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하나씩 발견하고 하나씩 얻고 하나씩 이겨내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플로우'의 미덕이다.
 
자연스러운 흐름은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유의미하게 잇는다. '플로우'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역시 바로 이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담겨있다.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은 비슷한 구도와 전개를 보인다. 영화의 시작에서 고양이는 물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물속에 비친 세상 속에 존재하는 건 오로지 고양이 자신뿐이다. 이후 고양이에게 펼쳐진 세계는 험난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대홍수와 풍랑을 지나온 고양이가 물웅덩이를 바라볼 때, 그곳에 비친 건 고양이 혼자가 아니다.
 
애니메이션 '플로우'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애니메이션 '플로우'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물론 여정을 함께했던 모든 존재가 고양이의 곁에 남은 건 아니다. 뱀잡이수리는 여정 중간에 떠났고, 위기 때마다 자신을 도와줬던 대왕고래가 죽음을 앞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다시 한번 고양이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대홍수의 전조 현상과도 같은 일이 발생한다. 고양이는 어쩌면 영화의 시작처럼, 다시 자신에게 대홍수와 같은 역경이 닥쳐올지도 모른다는 기시감과 공포를 느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골든리트리버와 여우원숭이, 카피바라가 고양이 곁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미 한 번 두려움의 순간들을 극복한 경험이 있다. 똑같은 순간이 다시 찾아와도, 여전히 두렵고 어렵겠지만 고양이는 전보다는 덜 무섭고 덜 외로울지 모른다. 적어도 한 걸음은 더 나아갔고, 두 걸음을 떼어볼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로 '플로우'가 관객들이 발견했으면 하는 메시지가 있다. 영화의 엔딩이 완벽한 해피엔딩 같진 않을지라도, 그렇기에 그것이 '삶'임을 느낄 수 있다. 이 역시 '플로우'의 또 다른 미덕이다.
 
애니메이션 '플로우'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애니메이션 '플로우'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고양이에 초점을 맞추고, 고양이의 모험과 여정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영화지만, 인간의 눈은 인간의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 대홍수와 파괴된 문명이란 배경 안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위협을 감지한다면, 이조차도 '플로우'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과연 우리는 주묘공인 고양이처럼 인간에게 언제 어떤 식으로 닥칠지 모르는 재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 해답 역시 고양이와 동물 친구들이 몸소 보여줬다.

이 영화 속 캐릭터들의 핵심은 '눈'이다. 고양이를 비롯한 캐릭터들의 눈빛 속에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담겨 있다.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힘이다.
 
라트비아에 최초로 오스카 트로피를 안긴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오로지 동물들만 등장하며, 인간의 언어는 단 한 마디도 등장하지 않는 애니메이션도 충분히 사람들을 울리고 공감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플로우'를 통해 감독이 증명한 건 '도전'과 '가능성'이다. '플로우'를 통해 새 흐름의 물꼬를 튼 감독이 앞으로 애니메이션계에 어떤 흐름을 이어갈지 기대된다.
 
85분 상영, 3월 19일 개봉, 전체 관람가.

애니메이션 '플로우' 메인 포스터. 판씨네마㈜ 제공애니메이션 '플로우' 메인 포스터. 판씨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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