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혜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오는 30일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14주기를 앞두고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에녹PD"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면서 "그렇게 느낀 순간이 있다"고 했다. <소년이 온다>는 5·18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인간의 폭력과 잔혹함, 또 숭고함을 다뤘다.
지난해 많은 시민들이 이 물음에 주목했다. 내란사태로 혼란에 빠진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물음이었기 때문이다. 모순적이게도 과거 군부독재 시절 겪은 폭력과 억압의 경험은 내란사태를 막는 힘이 됐다.
유은혜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역시 이 말을 되새겼다. 그러면서 한 사람을 떠올렸다. 김근태.
'민주주의 대부'로 불리는 김 전 민주당 상임고문은 과거 군사독재에 맞서 저항했다. 수없이 이어진 고문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꺾지 않았다. 이후 투병생활을 하던 그는 14년 전인 2011년 12월 30일 별세했다.
김 전 고문은 유 전 장관에게 정치 멘토이자 스승, 인생 선배다. 유 전 장관은 14주기를 나흘 앞둔 지난 26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군부독재에 맞선 경험이 있었기에 내란사태 당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고, 국회에서의 저항 역시 가능했다"고 말했다.
의견 묻는 게 버릇…"시대 앞서간 리더십"
유 전 장관은 김 전 고문의
요청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김 전 고문은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초대 의장을 맡아 대학가에선 이미 유명인이었다. 김 전 고문이 발행하던 '민주화의 길'은 민주화를 열망하던 대학생들의 길라잡이였다.
유 전 장관은 1990년쯤 성균관대학교 민주동문회 활동을 하면서 김 전 고문을 처음 만났다. 당시 마땅한 사무실을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김 전 고문이 활동하던 사무실 한편을 빌려쓰게 되면서다.
이후 인연은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김 전 고문을 도우며 자연스럽게 정계에 발을 들였다.
으레 유명 정치인들은 말버릇과 관련된 일화가 있지만 김 전 고문은 없었다. 일방적인 지시를 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는 게 버릇이라면 버릇이었다.
유 전 장관은 "김 전 고문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항상 먼저 물어봐줬다"며 "만약 결과가 좋지 않아도 오히려 주변에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하던 선배였다"고 떠올렸다.
그래서인지 일각에선 카리스마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오해도 있었다. 하지만 유 전 장관은 오히려 그것이 시대를 앞서간 리더십이라고 평가했다. 유 전 장관은 "당시만 해도 수직적 리더십이 당연한 시기였지만 김 전 고문은 경청하고 소통하던 사람이었다"며 "그를 옆에서 보고 배운 경험들이 나의 가장 큰 무기"라고 말했다.
연두색 넥타이, '내란의 밤'에 소환된 김근태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유 전 장관은 지난해 12.3 내란 역시 '김 전 고문과 함께 막았다'고 생각한다. 과거 민주화에 투신한 선배들의 노력과 희생이 내란을 막은 밑거름이 됐다는 것.
유 전 장관은 "도봉구에 김근태 기념 도서관이 있는데 내란 이후 유독 찾아온 시민들이 많았다고 들었다"며 "게시판에 '민주주의를 가르쳐줘서 감사합니다'와 같은 메모를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시킨 우원식 국회의장 역시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했다. 계엄해제 당일 우 의장이 착용했던 연두색 넥타이가 뒤늦게 주목 받았다. 이는 김 전 고문이 생전에 착용하던 넥타이다.
우 의장은 김 전 고문의 배우자인 인재근 전 의원으로부터 넥타이를 건네받았다. 중요한 일이 있는 날에는 꼭 연두색 넥타이를 착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우 의장은 "계엄해제 의결 소식을 듣고 '김근태 형님 감사합니다'를 속으로 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 전 장관은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절차를 지키며 계엄해제를 의결할 수 있었던 건 김 전 고문을 따라 민주화를 외친 우 의장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냐는 한강 작가의 고민이 이해된다"고 말했다.
사라진 민주시민교육, 유은혜가 거론되는 이유
유은혜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오는 30일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14주기를 앞두고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에녹PD유 전 장관은 내년에 있을 경기도교육감 선거의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공식적인 출마 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교육부장관으로서 교육행정을 운영한 경험이 자연스럽게 그를 무대 위로 끌어 올리고 있다.
유 전 장관 본인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교육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선 거침없이 의견을 쏟아냈다.
그 중 하나가 '민주시민교육'의 재개다. 유 전 장관은 내란사태 이후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이 보다 커졌다고 강조했다. 헌법적 가치를 새기고, 공동체 일원으로서 갖춰야 할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학생들 스스로 할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
하지만 지난 정권에서 민주시민교육이 폐지되면서 학생들이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유 전 장관은 꼬집었다. 그는 "교육부나 전국 교육청에서 민주시민교육 부서를 만들고 교육을 해왔지만 지난 정권 때는 이 부서들이 모두 없어졌다"며 "'민주'라는 단어를 정치적이고 정쟁적으로 해석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AI시대일수록 사람과 사람간 관계 형성이 중요하지만, 지금과 같은 입시경쟁 속에선 개인주의만 심화된다고 판단했다. 유 전 장관은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보보다는 현장과의 소통이 중요한 시대"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이나 일부 교육감처럼 일방통행식 통보는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전 장관은 최근 화두로 떠오른 '교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에 대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교사이기 전에 시민으로서 정치적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실 밖에서 만큼은 교사들이 자유롭게 정치적 표현을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
학생들에게 왜곡된 정치를 교육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한국형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만들면 된다고 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1976년 독일에서 제정된 정치교육의 기본 원칙으로 △강제적 주입 금지 △논쟁적 주제 장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른 판단을 하도록 한다.
유 전 장관은 학생들에게 토론의 장을 열어주고 논리성 향상을 도와주기 위해서라도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 전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이 밝힌 것처럼 국민들의 합의 과정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학생들이 상식적인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교사들의 정치적 기본권 역시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