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국가라는 큰 틀을 보는 '천체 망원경'이라면, 지방의회는 주민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현미경'과 같습니다."
경기도의회 김태희 의원(더불어민주당·안산2)의 의정 활동은 날카로운 정책 분석력과 투박한 현장성이 공존한다.
20대 시절 국회 인턴으로 시작해 비서관과 보좌관을 거치며 10차례 이상의 선거와 국정감사를 치러낸 '베테랑 참모' 출신다운 날카로운 정책 분석력과 30대 시절 동네마트 배달팀장 시절 몸소 익힌 현장 감각은 그를 경기도의회의 대표적인 '민원 해결사'로 만들었다. "배추 뽑고 쌀 배달하던 6개월, 정치가 몸에 새겨졌다"
김 의원의 인생에서 가장 '몸이 고됐던' 순간은 2009년 무렵이다. 지역을 제대로 알고 싶어 무작정 동네에서 가장 큰 마트의 '배달 팀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당시를 "승강기 없는 다세대 주택 3~4층까지 쌀과 배추를 나르며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며 "인근 지역 밭에 가서 배추와 무를 직접 뽑아 실어 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새겼던 배달팀장 명함은 지금도 김 의원의 명함 모음집에 남아 있다. 김 의원은 이 때의 고된 경험이 지방의회 활동이 큰 자양분이 됐다고 회고했다.
이런 현장 경험은 정책적 성과로 이어졌다. 안산 모 중학교 엘리베이터 설치 사례는 그런 김 의원의 형장 중심 정치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휠체어를 타는 한 여학생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학교에 배정돼 진학을 포기할 위기에 처하자 그는 직접 학생의 등굣길을 함께 걷고 주민 600명의 서명을 이끌어내며 교육청과 학교를 설득했다.
김 의원은 "교육청은 예산을 주겠다는데 학교는 공사 피로감을 이유로 신청을 안 하는 상황이었다"며 "주민들의 간절한 서명지를 들고 가서 결국 도장을 받아냈을 때 그리고 내년에 그 학생이 당당히 등교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정말 벅찼다"고 전했다.
학교와 교육청 사이의 '핑퐁 행정'을 넘어 지켜낸 한 학생의 이동권 보장이 전교생과 교직원, 나아가 지역 사회의 보편적 편익으로 확장된 순간이었다.
경기도의회 김태희(더불어민주당·안산2). 박철웅 PD10년 묵은 '아동 그룹홈 지원' 난제 해결…'기본'이 답이었다
김 의원의 진가는 소외된 이웃을 위한 정책에서 더욱 빛난다. 10년 동안 조례상으로만 존재했던 '경기도 아동 그룹홈 지원센터' 설립을 이끌어낸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가정 학대나 방임으로 그룹홈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도내에만 850여 명"이라며 "이들이 사회에 나갈 때 기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직접 아이들과 종사자들을 만난 그는 자신이 맡은 상임위원회 업무가 아니었지만 끈질기게 조례를 정비해 결국 경기도 아동 그룹홈 지원센터' 설립을 현실화했다.
이런 추진력은 철저한 준비에서 나온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그 위에 어떤 성과를 쌓으려 해도 금세 무너진다"는 그의 말은 그런 그의 준비성과 추진력의 뿌리를 드러낸다. 그는 행정사무감사를 앞두면 관련 자료를 최소 세 번 이상 훑어보고, 집행부에 가장 많은 자료를 요청하는 의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인생의 점과 선을 이어 '밥값 하는 정치' 완성할 것"
김 의원은 자신의 정치를 중국의 정치인 덩샤오핑의 '점·선·면 정책'에 비유한다.
20대의 다양한 경험이라는 '점'들이 모여 30대 보좌진 시절의 '선'이 되었고, 40대 경기도의원으로서 지역 사회라는 '면'을 채워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밥값 하는 정치인'을 꼽았다. 그는
"국정감사를 준비하던 보좌진의 자세로 자료를 살피고, 배달팀장의 마음으로 현장을 누비며, '밥값하는 정치인'의 길을 걷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역의회 구성원으로서 집행부를 견제하고, 안산 지역 의원으로서 주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늘 '기본'에 충실하겠다"고 강조했다.
경기도의회 김태희(더불어민주당·안산2). 박철웅 PD다음은 김 의원과의 일문일답.
Q 정계 입문 계기가 궁금하다 A 대학생 시절 철학을 전공했고 학생회 활동도 했다. 농촌 봉사활동도 하고 중국과 유럽 등으로 배낭여행도 다녀왔다. 국제학대학원에서 중국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다양한 활동을하면서 세상에 눈을 떴다.
2005년 29살 때 국회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정치와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국회 인턴에서 비서관, 보좌관을 거치면서 선출직 의원들의 역할과 업무를 알아갔다. 모시던 국회의원들이 바뀌면서 대부분의 국회 상임위원회를 겪었다. 매년하는 국정감사는 물론 선거도 10차례 이상 경험했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공영방송 장악 시도, 민간인 사찰, 신문과 방송 겸영 등 이른바 '언론악법'을 추진했을 때 여야 대치가 격렬했는데 그 현장에 있었다. 보좌관을 지내면서 법제사법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정무위원회 등 국회 대부분의 상임위원회를 경험했다.
국회 보좌관을 하면서 깨달은 건 일을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더 나은 것이지만 더 중요한 건 어떤 방향으로 하느냐다. 잘못된 방향을 잡고 일을 진행하면 일을 하면 할수록 잘못된 방향으로 나간다. 그래서 방향성이 매우 중요하다. 정무적 판단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박근혜 정권 말기 탄핵 정국 즈음에는 당시 문재인 당대표가 대선 후보로 나섰는데, 그때는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총무국장 등 당직 생활을 1년 6개월가량 했다. 그러면서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기회도 얻었다. 2018년 안산시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Q 보좌관 시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가 A 첫 경험이 중요한데 큰 실수를 했다. 2005년 보좌관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정감사 시기가 다가왔다. 국정감사가 되면 피감기관에 대한 다양한 질의서를 만들어 낸다. 정부부처를 운영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등을 짚어내고 발전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
자료는 진짜 많이 들어온다. 일을 잘하는 보좌관들은 그 자료만 봐도 그 자리에서 국정감사 질의서를 만들어낸다. 나한테는 첫 국정감사였는데 기관 한 곳을 맡아서 질의서를 만들어야 했는데 결국 만들지 못했다. 펑크를 낸거다. 정말 힘들었다. 컴퓨터 자판을 누르지 못하는 알수 없는 압박감이 컸다. 스트레스가 정말 엄청났다.
너무 창피하고 자괴감마저 들었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들이 재차 기회를 주고 시간이 쌓이면서 점차 일머리를 알게 됐다. 국회는 임시회, 행정감사, 결산감사 등 일이 정말 많다. 밀려오는 일을 처리하다보면 어느새 실력이 늘어나 있었다.
Q 국회에서 지방의회로 활동 공간을 옮긴 이후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었나 A 국회는 마치 '천체 망원경' 같다. 국가라는 큰 틀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기초의회를 와보니 '현미경'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사업 하나하나가 주민들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250만 원의 사업비를 심의하는 데도 '실갱이를 한다'고 표현할 만큼 논쟁이 오간다. 생활정치에 눈을 떠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경기도의회 김태희(더불어민주당·안산2). 박철웅 PDQ 2018년 안산시의원에 당선되기 전에도 이미 한 차례 도전한 적이 있다 A 2009년 쯤이었다. 2005년 국회 보좌관 생활을 시작하고 매일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를 오가는 생활을 했다. 사는 곳은 안산인데 일하는 곳은 서울이었으니 안산에 대해 좀 더 알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역을 잘 몰랐다. 당내에 시의원 출마를 준비하는 후보가 있었는데 그것도 몰랐다.
지역도 잘 알고 이름도 알리고 싶어서 동네에서 가장 큰 마트의 배달팀장으로 일했다. 6개월 정도 일했는데 정말 힘들었다. 마트 매출에서 배달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자연스럽게 배달팀장 명함도 만들었는데 그때 명함은 지금도 갖고 있다.
국회에서는 머리가 힘들었는데 배달은 몸이 정말 힘들었다. 배달만 하는 게 아니라 농산물의 경우 현지 생산지에 가서 물건을 싣고 오는 일도 한다. 인근 지역 배추밭이나 무밭에서 배추와 무를 엄청 뽑았다.
승강기없는 다세대주택이 많았다. 3~4층으로 쌀 등 무거운 물품을 배달하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 요즘 새벽 배송 등 배송 시장이 엄청 커졌지만 그땐 막 걸음마 단계였다. 일은 고되고 임금은 적었다. 너무 힘드니까 주변에서 걱정과 우려를 했다.
결국 출마를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8년 뒤 2018년 지방의회에 도전할 때 이 때의 경험이 큰 자양분이 됐다. 보좌관 생활을 접고 지방의회 의원으로 도전하기로 했을 때 사회복지를 공부하게 된 것도 그때의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Q 정치철학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A 점, 선, 면이라는 게 있다. 흔히 20대 때 다양한 경험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그 경험이 30대가 되면 방향성을 가진 무언가의 형태도 드러나고, 40대가 되면 그게 한 형태를 띤다. 20대 시절의 경험이 점이라면 30대에 접어들면 그게 하나의 선으로 보이고, 40대가 되면 한 범주를 이루게 된다는 거다. 마치 도화지 위에 점을 마구 찍다보면 그 점이 점선, 실선으로 점점 진해지고, 나아가 도형의 형태로 발전하는 것처럼.
중국대학원에 재학한 시절 중국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을 공부했다. 그 정책을 점·선·면 정책이라고 부른다. 큰 중국 대륙을 개혁하고 개방하기 위해서 추진했던 정책의 특징을 설명하는 말이다. 당시 해안도시 상하이, 광저우 등 이런 거점을 중심으로 개혁개방 정책을 펼치면 그 영향력이 점점 내륙으로 뻗어나가 결국 중국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정치인의 영역으로 놓고 보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회 이 세 가지가 점, 선. 면이다. 자연 상태의 약육강식 질서를 넘어 인간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 내는 과정, 그리고 그 인간의 무리들이 공존하게 하는 것. 정치는 그런 점, 선, 면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Q 의정 활동 중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성과는 무엇인가 A 무엇보다 '아동 그룹홈 지원센터' 설립을 이끌어낸 점이다. 경기도에는 850여 명의 아이들이 가정 학대나 방임으로 그룹홈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이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센터가 10년 넘게 조례에만 머물러 있다. 소속된 상임위 업무는 아니었지만 직접 아이들과 종사자들을 만나며 그 필요성을 절감했고, 관련 조례를 정비해 결국 센터 운영을 현실화했다. 아이들이 사회에 나갈 때 기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경기도의회 김태희(더불어민주당·안산2). 박철웅 PDQ 지역구인 안산에서 해결한 대표적인 민원 사례가 있다면 A 한 장애 학생의 꿈을 지켜준 '학교 엘리베이터 설치' 건이 기억에 남는다. 휠체어를 타는 여학생이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는데 해당 학교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진학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놓였다. 교육청은 당장 엘리베이터 공사를 신청하라고 대답했지만 정작 학교가 신청하지 않았다. 그 학교가 몇 년 동안 이런저런 보강공사를 했는데 또 공사를 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이유였다.
학교 측의 공사 피로감으로 난항을 겪었지만 직접 학생의 등굣길을 동행하며 현장을 점검하고 주민 600명의 서명을 모아 교육청을 설득했다. 결국 내년에 그 학생은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학교로 당당히 등교할 예정이다. 가슴이 벅차다.
안산시의원 시절에는 코로나19로 무너지는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해 '코로나 극복 특별위원회'를 직접 구성했었다. 어린이집, 택시, 버스, 농업인 등 다양한 분야의 민간 단체와 공무원을 한자리에 모아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했다. 도의회 입성 후에도 1지망으로 경제노동위원회를 선택해 골목 상권과 소상공인 지원 정책에 매진해 온 것도 이런 경험이 토대가 됐다.
Q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A 그 부분은 항상 진행 중일 것 같다. 기본적으로 '밥값하는 정치인은 어떤 정치인인가' 라는 고민을 많이 한다. 의정활동은 크게 의회 구성원의 역할과 지역 의원 역할,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런 특성을 고려하면 기본에 충실한 정치인이 되고 싶다.
최근 아내와도 비슷한 주제로 대화를 나눴는데 '성실함'이라는 덕목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오갔다. 지방의회 구성원으로서 집행부를 견제하거나 감시하고, 때론 협력해야 한다. 다행히 지금 정치 지형이 경기도지사, 안산시장 모두 정치적으로 같은 코드를 공유하고 있다. 지금은 협력이란 덕목도 중요해 보인다.
기본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 행정사무감사 같은 일을 앞두면 적어도 3번 이상 자료를 검토한다. 집행부에 자료를 많이 요청하는 의원에 속하기도 한다.
Q '김태희는 ○○○이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A 김태희는 기본에 충실한 의원이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그 위에 어떤 성과를 올리거나 쌓으려해도 금새 무너진다. 밥값하는 정치인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광역의회 구성원으로써 해야할 역할과 안산을 지역구로 둔 지역의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의원으로 기억되고 싶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