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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봄의 데자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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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봄의 데자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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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중의의 가장자리톡]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
    "어떻게 지내요?"
     
    여자에게 안부를 묻는다. 30대 후반인 그는 강아지와 고양이의 털을 깎고 목욕을 시키는 반려동물 미용실 '말랑뽀송'의 주인이다. 동물병원 손님으로 서로 알게 된 사이다. 오랜만에 만났다. 재래시장 골목에 허름한 가게를 얻어 미용실을 연지가 벌써 15년이다. 그 자리에서 20~30대를 보냈다. 저축할 돈은 없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것으로 만족한다.
     
    여자는 내가 안부를 묻자 기다렸다는 듯 넋두리를 한다. 
     
    "다음 달부터 삼십만 원을 더 달래요.(말을 멎고 한참을 있다가) 지금 삼십만 원을 주고 있는데…… 육십만 원을 내라는 거에요. 열 평도 안 되는데. 겨울엔 수도 파이프가 얼어 터지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는 허름한 창고 같은 가건물이잖아요. 돈에 환장한 놈예요!
     
    물가는 자고 나면 오르지, 손님이 줄었어요. 반 토막요. 그런데 월세를 두 배로 올리겠다니…… 나가라는 소리잖아요! 밤에 잠이 오지 않아요. 쫓겨나는 거잖아요. 월세 삼십만 원에 임대해 줄 건물주가 있을까요?"
     
    여자는 근근이 살아갈 뿐인데 일상이 마음을 허비하게 만든다며 숨을 길게 내 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돈이라는 섬이 있어서 사는 게 힘들다며 고개를 젓는다. 손등을 올려 눈가를 훔친다. 곁에서 얘기를 들어주던 동물병원 원장이 흰 티슈를 뽑아 건넨다. 
     
    창 너머로 따사로운 봄 햇살이 쏟아진다. 건너편 '카멜 모터' 수리점 앞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여자의 하소연과 그걸 듣고 있는 나와 동물병원과 오토바이 수리점의 시공간이 익숙하다. 언제였더라…… 나는 그때 아버지의 모험을 속상해하는 여자에게 들려주었었다.
     
    "사람에게는 기적이라는 신비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사람은 아버지였어요.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배운 건데, 이것이 만만찮은 산수 문제 같은 거로구나, 어슴푸레 알게 됐어요.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차지할 수도, 놓칠 수도 있다는 것도요. 그냥 어린 마음에, 혼자서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내 이야기를 듣던 여자가 빤히 바라본다. 얼마나 절박해 보았느냐는 듯 냉소적이다. 여자의 반응 역시 언젠가 있었던 일이 되풀이되는 것처럼 낯설지 않다. 그때도 그녀는 나를 비웃었으니까. 데자뷰가 일어난 것은 가게에서 쫓겨난 그녀의 처지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처럼 흠! 하고 마른기침을 한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자신이 겪었던 일종의 모험을 나에게 들려주었듯이 여자에게 들려준다. 
     
    "아버지는 항상 '얘야, 옛날에 내가 아주 어렸을 때……'라고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아버지의 어린 시절 모험을 듣다 보면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고였어요."
     
    여자는 시큰둥하다. 숨을 돌리더니 눈을 감는다. 나는 갑작스럽지만 놀랍고도 뭉클했던 아버지의 모험을 풀어 놓는다. 
     
    "홀어머니와 함께 먼 친척 집에 세 들어 살았는데, 집주인이 죽을 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났데요. 어느 날 점쟁이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세 들어 사는 친척 때문에 병에 걸린 거라며, 손가락으로 어린 아들과 엄마를 가리키더래요. 저 사람들 내보내야 주인 병이 낫는다며, 당장 쫓아내라고 윽박지르더래요.
     
    그날로 쫓겨났어요. 길바닥에 나앉게 된 거지. 엄마가 아들 손을 꼭 잡고 받아줄 사람을 찾아 나섰는데, 예닐곱 집을 찾아갔었나 봐요. 가는 집마다 문전박대를 당했데요. 동네 사람 모두가 점쟁이 말이 무서워서, 죽을 병에 걸릴까 봐, 받아주지 않더래요.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가는데, 엄마가 어린 아들을 한참 바라보더니 파리해진 얼굴로 말하더래요. '얘야, 우리 한 집만 더 찾아가 보자. 그 집에서도 받아주지 않으면…… 저 가재도구들 몽땅 불사르고 정처 없이 떠나자!' "
     
    여자가 감았던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나를 바라본다. 
     
    "어떻게 됐어요?" 
     
    "아버지는 운 좋게 살아남았어요."
     
    "찾을 때까지 찾았고, 결국 찾았다는 거네요?"
     
    "어린 아버지의 모험은 실제였지만 기적이었어요. 하도 들어서 지금은 아버지의 모험이 나의 모험인 것처럼 동화되어서 헷갈릴 정도니까요."
     
    여자의 눈가는 그사이 말끔하게 말랐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꽃집에 들러 노란 수선화를 사야겠어요. 수선화가 나르시시즘이라잖아요. 저는 그 꽃말이 좋아요. 이기적인 자기애라고 하지만 그걸 이해해요. 나를 사랑하면 찾을 때까지 찾아 나설 힘도 생기겠지요."
     
    여자와 아버지의 넋두리가 사라졌다. 신기루처럼 나타났던 데자뷰도 자취를 감췄다. 동물병원 실내는 투명한 온기가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린다. 여자가 해맑게 웃는다.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
    동물병원을 나오니 공중의 봄빛이 눈부시다. 여자가 쫓겨난 가게는 여전히 비어 있다. 임대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인다. 빈 가게 안에는 그녀가 키우던 마른 장미 화분이 놓여 있다. 낡은 자전거는 먼지 이불에 덮여 있고, 창밖 의자는 빛이 바래 앉으려는 사람이 없다.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
    여자가 강아지에게 먹일 심장사상충 약을 손에 들고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나를 향해 뒤돌아서더니 쑥스러운 듯 뒤늦은 안부를 묻는다. 
     
    "어떻게 지내요?"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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