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커뮤니티 캡처우리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이발소 면도사 '미쓰 유'가 같은 이발소 세발사(洗髮師) '춘식'과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다.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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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유: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질거야 사람이 좀 많아야지. 하기야 팔자 좋은 나라도 있드라만은. 프랑스에서는 아예 아이를 낳기만 하면은 병원비도 공짜고 우유값에다가 유모차까지 그냥 한 대씩 더 준대. 더구나 세번째 아이를 낳을 때는 나라에서 상금까지 엄청나게 주고 넓은 집에서 살라고 집 살 돈까지 융자해 주질 않나. 세금, 교통비, 납부금 혜택이 굉장하대.
춘식: 미쓰 유는 아는 것도 많네. 어떻게 그런 것들 다 알았어?
미스 유: 아까 신문에서 읽었…어머? 얘 춘식이, 거기서 뭐 하는거야? 어머, 이리 내려와!
춘식: 미쓰 유우우, 미쓰 유우우 (소근거리듯)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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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개봉됐던 1980년 프랑스의 출산 지원 정책은 당시 한국인에게는 별나라 얘기였다. 아이를 낳는 '당연한 자연 현상'에 정부가 돈을 준다는 것도 신기했고, 그럼에도 프랑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는지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40여 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 별나라 얘기는 우리의 현실이 됐다. 합계 출산율이 그 사이 2.82명에서 0.82명으로 급격히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인구 규모를 현상유지할 수 있는 합계 출산율이 2.1명인 점을 고려하면 0.82명은 나라 자체가 없어질 수 있는 위험 수준이다. 미스 유가 말하던 당시 프랑스의 합계 출산율은 1.95명이었고 지금은 1.62명이다. 두 숫자 모두 지금의 우리에게는 부러울 따름이다. 동시에 우리의 임신 출산 지원 정책이 너무도 늦었음을 일깨워주는 숫자이기도 하다.
만시지탄이기는 하지만 출산 지원 정책이 효과를 내는 듯하다. 지난 2월 합게 출산율이 0.93명으로 올랐고 출생아수도 지난 2019년 이후 동월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번 출산율 상승은 정부의 지원 정책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코로나19 기간 미뤘던 결혼이 최근에 몰려 만든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 출산 지원 정책이 지속 강화돼야 하는 이유다.
'바람 불어 좋은 날'에는 청년 세 명이 등장한다. 춘식과 덕배, 길남은 무작정 상경해 넝마주이, 철공소, 식당 등을 전전하다 각각 세발사와 중국집 배달부, 여관 심부름꾼으로 정착한다. 세 청년들이 몸담은 곳은 부동산 개발이 한창인 서울 강남인듯하다. 부동산 개발업자의 꾐에 빠져 땅을 넘긴 원주민 농부는 실성해 '내 땅 내놔라'고 소리치며 밤낮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다 객사한다. 부동산 개발업자인 '김 회장'은 벼락부자가 되고 미스 유까지 품에 넣고 만다. 영화는 지역 소멸과 수도권 집중, 부동산 투기 등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들을 이미 지적하고 있다. 덕배가 조심스럽게 배달한 탕수육을 개에게 그릇째 던져주는 부유층 장면은 한국 사회 양극화를 예고하고 있다.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영화가 고발했던 지역 소멸과 일자리, 부동산 등 저출산을 구조적으로 야기하는 큰 문제들을 손봐야 한다. 세금 폭탄이니 선심성 세금 낭비이니 하며 정부의 각종 전향적 정책을 비난하며 기득권만 지키려 하다가는 저출산 극복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임신과 출산, 보육을 직접 지원하는 현금성 지원 외에 구조적 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영화 속 세 청년의 사랑은 파탄으로 끝난다. 춘식의 사랑은 돈에 팔려 갔고 길남의 사랑은 돈을 갖고 튀었다. 덕배를 유혹했던 부유층 여대생의 사랑은 애초부터 심심풀이였다. 영화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병폐와 사랑의 파탄을 씨줄 날줄로 얽어내고 있다.
사랑 없이 아이가 태어날 수는 없다. 청춘들이 걱정 없이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도록 일자리 창출, 부동산 안정화, 사교육비 절감 정책 등을 강도높게 추진해야 한다.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아역 배우로 이름을 날리다 청소년기 공백을 거쳐 성인 역할로 다시 데뷔한 고 안성기 배우에게 신인상을 안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