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뉴욕에서 열린 아머리 쇼(Armory Show). The Armory Show 홈페이지 캡처"우리는 혁명을 일으킬 겁니다. 뉴욕을 세계 예술의 중심으로 만들 겁니다."
1912년 말 미국의 모더니즘 화가 월트 쿤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이다. 몇달 뒤 뉴욕에서 '아머리 쇼(Armory Show)'가 열린다. 그리고 쿤의 말대로 혁명이 일어나고 뉴욕은 세계의 문화 수도가 된다.
미국 화가 및 조각가협회가 기획한 '국제현대미술전시회'는 뉴욕 주 방위군 제69연대의 병기고(Armory)에서 열려 '아머리 쇼'로 불린다. 현대미술의 전위를 달리던 문제작들이 파리 등 유럽에서 공수됐다.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는 스캔들 그 자체였다. 전통적 미학에 안주해 고루함에 젖어 있던 미국 평단은 경악했다.
"이게 누드냐? 널빤지 공장이 폭발한 것 같다"고 조롱과 혹평을 쏟아냈지만, 실제로는 처음 겪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구시대에 종언을 고한 혁신은 순식간에 미국을 사로잡았다. 뉴욕에 이어 시카고, 보스턴에서 총 30만 명이 몰려 들어 새로운 시대를 영접했다.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 필라델피아 미술관 홈페이지 캡처미국 대중의 열광은 자본을 움직였다. 부유층들은 '혁신이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작품들을 앞다퉈 사들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샤갈, 몬드리안, 달리 등 유럽의 거장들은 대거 미국으로 피신했다. 미국 미술계로 자본과 재능이 유입됐고 시장은 급속도로 커졌다. 미국적인 현대미술이 고민되고 창조됐다. 파리의 아방가르드(전위, Avant-garde)가 뉴욕의 거대한 시장으로 이식됐다. 그렇게 뉴욕은 세계 현대미술의 심장이 됐다.
1909년 필리포 마리네티의 '미래주의 선언', 1916년 스위스 취리히의 한 술집에서 시작된 파괴적 허무주의 '다다이즘',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 등을 통해 현대미술은 과거의 예술과 단절하고 새로운 미(美)를 추구하게 됐다. 그리고 전쟁은 그 축을 파리에서 뉴욕으로 강제로 이전시켰다. 현대미술은 자본과 시장을 만났고 미국은 압도적인 경제력으로 문화 패권까지 차지했다.
구겐하임, 록펠러 등 미국의 자본가들은 유럽의 예술가들을 뉴욕으로 탈출시키고 작품을 수집하고 작가들을 후원했다.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 등 젊은 작가들은 자동기술법 등 파리의 아방가르드를 토양 삼아 '추상표현주의'를 탄생시키며 뉴욕을 현대미술의 진정한 전위로 만들었다. 할리우드 영화, 재즈, 브로드웨이 뮤지컬, 패션 등 대중문화라는 자양분도 뉴욕에 압도적인 지위를 부여했다.
연합뉴스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의 광주 이전 문제가 논란이다. 한예종은 대학 본부 및 연극원·영상원·전통예술원·미술원이 있는 석관동 캠퍼스와 음악원·무용원이 있는 서초동 캠퍼스로 나눠져 있다. 그런데 석관동 캠퍼스 옆의 의릉(懿陵) 복원 계획이 추진되면서 캠퍼스 이전 논의가 시작됐다. 이 참에 캠퍼스 통합도 고려하고 있는데 마땅한 부지가 없었다. 그러던 중 광주 이전안이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최근 정준호·민형배 등 광주 지역 의원들은 한예종의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이전을 골자로 한 '한예종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한예종 대학원 석·박사 학위를 인정하는 '당근'도 끼워 넣었다. 한예종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이다. 의원들은 "문화예술 교육 인프라가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돼 지역 간 문화 격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지역 청년 예술인들의 수도권 유출로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가 위축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예종은 물론 예술계 전반이 반발하고 있다. 한예종은 "충분한 준비가 전제되지 않은 물리적 이전은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한 예술 교육 시스템의 효율성을 저하시키고 국가적 예술 자산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한예종이 지적한 요소는 '강사진, 공연 전시 인프라, 예술 현장과의 연계'이다. 지방의 문화예술 생태계 복원을 위해서라면 부산은, 통영은, 대전은, 강릉은 어떠한가? 그 지역 의원들도 서둘러 한예종 법안을 발의해야 할 것 아닌가? 기타 치는 최휘영 문화부 장관은 어떤 생각인지 궁금한데 아직 말이 없다.
지역민을 위하는 의원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예술은 정치와 권력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가뜩이나 문화부 산하 일부 기관장 인사로 문화예술계가 소란스럽다. 영감님들이 아머리 쇼와 뉴욕의 사례를 곱씹어 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