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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유령'들에게 '그림의 떡'을 권하는 법무부[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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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탈북 유령'들에게 '그림의 떡'을 권하는 법무부[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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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노컷뉴스의 '기자수첩'은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법무부, CBS노컷뉴스 연속 보도에 공식 입장 밝혀
    "귀화 신청 가능"이라고? 사실상 '그림의 떡'
    "중국 국적자들" 되풀이하지만 中은 재추방까지
    언제까지 인권 사각지대에 방치할 건지 답할 시간

    '유령 탈북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무국적자 전경수씨(오른쪽)와 모친 고(故) 김옥만씨. 탈북자인 옥만씨는 미국에서 탈북민으로 인정받아 난민 자격을 얻었으나 국내에선 국적이 불인정돼 불법체류자로 살다 올해 2월 세상을 등졌다. 전경수씨 제공'유령 탈북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무국적자 전경수씨(오른쪽)와 모친 고(故) 김옥만씨. 탈북자인 옥만씨는 미국에서 탈북민으로 인정받아 난민 자격을 얻었으나 국내에선 국적이 불인정돼 불법체류자로 살다 올해 2월 세상을 등졌다. 전경수씨 제공
    "다만 현재 한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국적법상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귀화 신청이 가능하며 인도적 고려 등이 필요한 경우 우선처리 대상자로 지정하여 신속 심사 예정임을 알려 드립니다."

    CBS노컷뉴스의 [유령이 된 탈북자들] 기획 기사에 대해 지난 15일 법무부가 낸 공식 입장입니다. 어쩌면 의지를 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이 문장, 당사자들은 더욱 상실감을 크게 느꼈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취재진은 지난 13일부터 국내에서 무국적자 신세로 인권 사각지대에 오랫동안 방치된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은 탈북 후 자유와 번영을 찾아 한국 땅을 밟았지만 북한이탈주민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조상 중에 중국인이 있어, 중국인 혈통이란 이유에서였습니다. 이들 중 다수는 어머니 등이 북한 사람이었지만 그런 점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재북 화교 3세 윤성화씨의 외국인등록증. 이원석 기자재북 화교 3세 윤성화씨의 외국인등록증. 이원석 기자
    이들은 많게는 20년 넘게 국적도 없이 유령과 같은 존재로 살아왔습니다. 마지못해 주어진 외국인등록증 국적란엔 'STATELESS'(국적 없음)라고 선명히 적혔습니다. 남한 땅의 진짜 일원이 될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생활 수준은 당연히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가깝습니다.

    이들 이야기에 대해 법무부가 낸 공식 입장의 요지는 3가지입니다.

    ①재북 화교는 북한에 거주하는 중국 국적 보유자임
    ②국적심사시 본인의 진술, 관계 기관의 사실조사·의견, 진술과 제출서류의 정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 왔음.
    ③국적법상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귀화를 신청할 수 있음.


    하나하나 살펴보면 먼저 ①은 법무부가 이 사안과 관련해 반복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는 주장입니다. 재북 화교 후손 무국적자들은 중국 국적자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사실 법무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 현실을.

    중국 정부는 이들의 국적을 확인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 입국한 재북 화교 2세 탈북자 김천일씨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중국으로 추방됐다가 다시 한국으로 송환됐습니다. 당시 법무부 등 관계 기관이 천일씨를 중국인이라고 판단했지만, 중국은 거부한 겁니다.(관련 기사: [단독]20년 전 '처치곤란 유명인'은 잔반통 뒤지는 노숙인 됐다) 다른 재북 화교 2·3세들도 탈북 후 중국에서도 국적이나 신분을 얻을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중국이 거부하는 이들을 중국인이라고 과연 볼 수 있을까요?

    '유령 탈북자'들에게는 특수한 배경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북한 정권은 1950년대부터 정착한 화교 출신들에게 중국과의 관계 등에 따라 북한 국적을 줬다가 뺏는 등 정상 국가라고 보기 어려운 행태를 보였습니다. 실제로 재북 화교 후손들 대부분은 출생 시엔 북한 공민이었다가 성인이 된 이후에 갑자기 중국인 취급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중국말도 못 하는 '실질적 북한 주민'입니다.

    2009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진이 낸 '무국적 관리 및 체류질서 확립을 위한 제도 연구'. 법무부 연구용역 보고서 캡처2009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진이 낸 '무국적 관리 및 체류질서 확립을 위한 제도 연구'. 법무부 연구용역 보고서 캡처
    실제 법 전문가들은 이런 여러 역사적, 국가적 특수성을 감안해 이들의 국적을 달리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단순 사실 관계나 서류로 이들의 국적을 중국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심지어 법무부가 2009년에 서울대 정인섭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에 맡긴 연구용역 보고서(무국적자 관리 및 체류질서 확립을 위한 제도·연구)에는 "중국이 화교 출신 북한 이탈주민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자국민임을 주장하지 않는 한 그들이 북한 출신임을 근거로 그들의 화교 지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탈주민으로 간주하여 그들에게 한국 국적을 부여할 수 있고 또 부여하여야 한다고 본다"고 적혀 있습니다.(참고기사 : [단독]법무부 '유령 탈북인' 연구용역도 맡겼지만…여전히 방치)

    법무부의 설명 ② 역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법무부와 관계 기관들이 탈북자들에게 '증명할 서류를 가져오라'며 행정편의주의적 행태를 보인다는 지적에 대한 반박으로 읽힙니다. 그런데 14일 보도한 재북 화교 출신 무국적자 전경수씨(51)의 모친 고(故) 김옥만(향년 88세)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 탈북 난민 지위로 영주권까지 받았던 옥만씨는 국내에 들어와 올해 2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국적을 받지 못한 채 불법체류자로 살았습니다. 경수씨에 따르면 법무부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옥만씨의 한국 국적 보유를 '불인정'했고, 이후론 아무런 안내도 없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도 '북한' 국적으로 분명히 인정한 옥만씨에 대해 법무부가 책임감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렇게 방치할 수는 없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참고기사 : 미국도 '탈북자' 인정했는데…엄마는 '불체자'로 세상 등졌다)

    고(故) 김옥만씨가 한국에 들어와 직접 쓴 자필 진술서. 이원석 기자고(故) 김옥만씨가 한국에 들어와 직접 쓴 자필 진술서. 이원석 기자
    취재진은 보도 이후 옥만씨가 생전 직접 작성한 자필 진술서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진술서 속 담긴 옥만씨의 바람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다음은 진술서의 일부 내용입니다.

    "김옥만. 출생지 평양시 대성 구역 미산 2동. (중략) 미국에 가서는 이때까지 편하게 지냈으며 교회에서 많이 돌보아주었습니다. 그러나 말과 글도 모르니 몸이 아파도 교회 신세를 져야 하고 하여서 말할 수 있고 글도 볼 수 있는 것을 찾아가서 남은 인생을 편히 살아볼까 하고 한국 영사관에 가서 비자를 받아서 왔습니다. 나를 받아주세요. 꼭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국적법상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귀화 신청을 하면 인도적인 고려도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의 ③ 내용과 관련해선 당사자들은 듣자마자 '그림의 떡'과 같은 얘기라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귀화가 받아들여지려면 '요건'이 필요합니다. 법무부가 그 요건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귀화 종류에 따라 3천만~6천만원 이상의 자산 등 생계유지능력이 필요한데 겨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무국적자들에겐 꿈 같은 얘깁니다. 또 여러 법과 규칙을 준수해야 하는 '품행 단정'의 조건과 관련해서도 불안정한 신분 속에서 체납이나 벌금형 등의 전력이 있는 경우도 일부 있어 충족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북한 출신으로 출신지나 가족 등도 불분명해 귀화 신청 때 요구하는 서류를 제출하는 것조차 이들에겐 버거운 일입니다.
    CBS노컷뉴스가 만난 재북 화교 2·3세들인 '무국적자' 김천일씨(좌), 전경수씨(우상), 윤성화씨(우하). 박수연·이원석 기자CBS노컷뉴스가 만난 재북 화교 2·3세들인 '무국적자' 김천일씨(좌), 전경수씨(우상), 윤성화씨(우하). 박수연·이원석 기자
    따라서 귀화 신청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취지의 법무부의 입장은 오랫동안 유령으로 살아가고 있는 탈북자들을 두 번 울린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미 수십 년째 국적 없이 살아온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또 한 번의 책임 없는 원론적 응대가 아닙니다. 이제 국가는 앞으로도 이들을 사각지대에 방치하고 말 건지, 그 질문에 답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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