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의 한복판에 선 국가정보원이 '권력의 첨병'을 자처하고 나섰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대선 개입 의혹 사건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까지 이슈 메이커를 자임했기 때문이다.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에 직면해 거센 개혁의 외풍으로 쓸려간 검찰의 빈자리를 국정원이 채운 모양새다. 바야흐로 국정원공화국 시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정원의 전신은 중앙정보부다. 중정의 권위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로 통했다. 12·12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에 의해 ‘국가안전기획부’로 확대개편 됐다. 위치 탓에 '남산'으로 불리며 고문의 상징으로 통했다.
87년 체제 이후 헌법과 민주주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법 전문가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이른바 '정치 검찰'이었다. 검찰이 쥔 칼은 기소독점주의였다. 검사만이 재판에 넘길 권한을 갖는 것이다. 무리한 기소, 봐주기 수사 논란에 휩싸였던 MB정권 검찰사를 지나 검란과 대검 중수부 폐지로 이어지며 검찰은 지금 수술대에 누워있는 신세다.
"검찰이 개혁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쫓기다 보니 채동욱 수뇌부가 들어섰고 당연히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수사를 세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아니겠냐" 법조인 출신인 한 야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권력은 컨트롤 할 수 없는 검찰을 대신할 권력기관을 찾았고, 궁지에 몰린 국정원은 생존의 방법으로 그 역할을 다시 떠안게 된 것"이라는 말도 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와 이석기 사건 공개수사 등을 예로 들며 "'공개'를 해야하니 음지를 지향하지 못하고 양지로 국정원이 노출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에 대한 언론보도가 나오면서 검찰 흔들기, 국정원과 힘겨루기로 보는 시각이 팽배한 것도 국정원과 검찰의 역학구도에서 비롯됐다. 야당에서는 "새누리당 측 사람들은 검찰이 도움을 준 게 없다. 오히려 해가 된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다니고 있다"면서 "집권 실세들의 검찰에 대한 판단과 생각이 그렇고, 여기에는 국정원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민주당 신경민 최고위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해 진행 중인 재판과 'NLL대화록 실종' 수사를 벌이는 검찰의 칼날을 무디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다.
그러면서 시계를 거꾸로 돌린 권력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도 나온다. 참여정부 청와대의 인사였던 한 의원은 "검찰이나 경찰과 달리 국정원은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는다. 국회 정보위도 비공개"라며 "예산을 어디에 썼는지도 모를 알 수 없는 존재"라며 "정권의 수족으로서 리스크(위험)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