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감축) 착수로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걷혔지만 신흥국의 정치적 불안이 또 다른 위협 요소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일 일제히 분석했다.
저널은 이와 관련, 테이퍼링 '취약 5개국' 가운데 인도와 인도네시아가 내년에 선거를 치르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 그룹의 나머지 3개국은 브라질, 남아공 및 터키이다.
저널은 또 다른 아시아 신흥국인 태국도 내년에 선거라면서 금융시장이 이제는 이들 신흥국의 선거발(發) 불안 요소를 본격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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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도 '정치가 신흥시장의 불안한 전망을 심화한다'는 제목의 분석에서 앞으로 몇 년 역내의 정치적 위험 요소가 갈수록 두드러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씨티그룹의 티나 포드햄 정치 분석가는 FT에 "민중의 소리 위험(Vox Populi risk)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신흥국의 중산층이 확산하면서 갈수록 열악해지는 경제 여건에 불만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설상가상으로 역내의 정치적 주도력은 약화하기 때문에 사회적 마찰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포드햄은 경고했다.
아비바 인베스터스의 대니얼 제임스 국제 시장 책임자도 FT에 "정치적 위험이 크다"면서 "자산 운용자 대부분이 이미 지난 3-4년 감당하기 버거운 정치적 변수에 휘둘렸지만, 그 불확실성은 갈수록 커지기만 한다"고 경고했다.
FT는 상대적으로 높은 신흥국의 인플레와 중산층 확대, 청년 실업 심화, 사회적 미디어 사용 확산, 그리고 정치 주도력 약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저널은 이들 취약 신흥국의 고통이 이제 막 시작됐다는 경고도 나온다고 전했다.
이처럼 정치적 위험 요소까지 가중되면서 '더 많은 것을 잃을 것'이란 비관론도 적지 않다고 저널은 덧붙였다.
저널은 한 예로 인도네시아와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 차이(스프레드)가 올 들어 2.1%포인트 더 벌어져 5.5%까지 상승했음을 지적했다.
인도와 함께 대표적 경상 적자국인 인도네시아는 통화 가치까지 심각한 약세이기 때문에 투자자가 관심을 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이런 위기가 기회라는 견해도 제시됐다.
바클레이스의 알리아 무바예드 이코노미스트는 FT에 "위험 감수 투자자에게는 오히려 기회"라면서 "선거가 시장주의 개혁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가 지난 5월에 비해 테이퍼링 '면역력'이 강화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뱅크 오브 싱가포르의 리처드 제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지난 5월 테이퍼링을 첫 시사했을 때 두 나라의 충격이 특히 심각했음을 강조했다.
제럼은 따라서 인도와 인도네시아가 "이제는 (경제와 금융을 방어하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쳤기 때문에 6개월 전과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저널은 연준의 테이퍼링 결정에도 인도 뭄바이 증시 지수가 19일 0.73% 빠지는데 그쳤음을 상기시켰다. 달러에 대한 루피화 가치 하락도 이날 0.18%에 불과했다고 덧붙였다.
크레디트 아그리콜의 다리우스 코발치크 이코노미스트는 저널에 "(이들 취약 국에 대한 테이퍼링 발표) 충격이 아직은 미미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장기적 영향은 미 국채 수익률 추세와 연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