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춘 국가보훈처장
"국가보훈이 국민의 올바른 국가관과 굳건한 안보의식으로 이어져 안보현실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가지 않도록 계도하고 홍보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지난 2011년 2월, 박승춘 보훈처장이 국무회의에서 취임 인사를 하며 밝힌 내용이다. 얼핏보면 보훈처 본연의 임무인 국가보훈을 강조한 말인 것 같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보훈 보다는 안보교육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남북 분단 현실에서 올바른 안보교육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안보교육이 자칫 이념편향적으로 흐를 경우 정부 비판세력을 종북세력으로 낙인찍는 등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박 처장은 이념편향적 안보교육의 대명사로 떠오른지 오래다. 그의 발언을 살펴보자. "국방부는 군사대결 업무를 하고 국가보훈처는 이념대결 업무를 한다. 지난 2년 동안 내가 이념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선제 보훈 업무를 추진했다"(2013년 1월, 여의도 중앙보훈회관), "국가보훈처는 이념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업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2013년 11월 보훈처 국정감사장). 취임 인사에서 밝힌 안보교육에서 한발 더나가 이념대결을 국가보훈처의 업무로 규정했다.
그런데 그 이념대결의 내용이 더욱 가관이다. 대선을 앞둔 지난 2011년 말 국가보훈처가 제작한 '호국보훈 교육'이라는 제목의 DVD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고 주장하며 종북세력 척결을 주장한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대목은 그 국가정책이라는 것이 4대강 사업,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정책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박 처장의 논리를 가만히 따져보면 '국가보훈→안보교육→이념대결→대통령 보호'로 이어진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세월호 침몰 사건 때문에 대통령과 정부가 아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무슨 큰 사건만 나면 우선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의 임기 말 지지도를 보면 30%를 넘는 대통령이 없다. 대통령이 성공해야 성공한 대한민국이 된다"(5월 2일, 용산 전쟁기념관)는 그의 발언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자 가족들은 물론 전 국민이 실의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도 박 처장의 사고의 중심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1순위인 것으로 보인다. 박 처장의 눈에는 박근혜 정부의 무능.부실 대응을 비판하는 야권과 시민단체, 언론, 심지어 청와대 앞으로 찾아가 항의한 희생자 가족들까지 모두 미국에 한참 못미치는 의식수준을 가진 이들로 비춰졌을지 모른다 .
이처럼 앉으나 서나 대통령 걱정이 앞선 덕분에 이명박 정권 당시인 2011년 2월에 임명된 박 처장은 정권이 바뀐 뒤인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벌써 3년 3개월째로 1983년 퇴임한 이종호 전 보훈청장 이후로 30여년 만에 최장수 보훈처장으로 기록됐다. 역대 처장 가운데는 3번째 장수 기록이다. 박 처장은 그동안 대선개입 의혹, 5.18 기념식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금지, 연평해전 폭탄주 등 부적절한 발언과 행동으로 숫한 사퇴압력을 받았지만 버티고 또 버텼다.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성 비하 발언이 '대통령 바라기' 박 처장의 거취에 어떤 영향을 줄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박 처장 스스로는 야당이나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하는 '자진사퇴'를 할 뜻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보훈처 관계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최근 공직자들의 적절치 못한 발언으로 국민 마음에 상처를 주고 불신을 키우고 있어 유감이다. 국민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는 공직자가 없기를 바란다. 국민을 위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임해주길 바라면서 이런 일이 재발시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사 개인정보 대량유출 사태에 대한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부적절 발언'에 대한 경고 메시지였다. {RELNEWS:right}
실제로 박 대통령의 경고 이후 여수 기름유출 사고 발생과 관련해 부적절한 발언과 행동을 한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을 전격 경질했다. 윤 전 장관은 당시 "피해가 크지 않다고 보고받아 심각하지 않은 줄 알았다"는 등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 그런데 윤 전 장관의 발언과 박 처장의 발언 가운데 어느 발언이 국민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준 발언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처장이 또 다시 자리지키기에 성공한다면 국민들은 '대통령 바라기' 덕분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박 대통령이 판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