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사진 = 청와대 제공)
안대희, 문창극 두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 서보지도 못한 채 낙마한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근원적 책임은 이들을 발탁한 청와대에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박 대통령은 3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총리 후보자들의 잇따른 낙마사태에 대해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는데 누구나 지적하는 인사실패에 대해 사과하지도 유감을 표명하지도 않았다.
박 대통령은 오히려 "총리 후보자의 국정 시행 능력이나 종합적인 자질보다는 신상털기식, 여론재판식 여론이 반복돼서 많은 분들이 고사를 하거나 가족들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말했다. "청문회에 가기도 전에 개인에 대한 비판과 가족 문제가 거론되는 데엔 어느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같고, 높아진 검증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분을 찾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다"고도 했다. 총리 후보자들이 연거푸 낙마한 것이 개인적인 문제를 지나치게 지적하는 잘못된 여론 탓이고, 높은 검증 기준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관예우로 단기간 거액의 재산을 축적한 것이 국가 개조의 사령탑을 맡을 총리로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신상털기인가? 과거사 문제로 일본과 외교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 정서에 반하는 역사관을 지닌 인물이 총리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여론재판인가? 이게 높아진 검증 기준이라면 대체 청와대의 인사 검증 기준은 어느 수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그렇게 자신 있었으면 여론을 의식하지 말고 인사청문요청서를 국회에 보내 당당히 자질을 검증받는 정면돌파를 왜 하지 않았는지 의아할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 같은 인식은 인사실패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도 책임을 지우지도 않는 상황에서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인사위원장인 김기춘 비서실장의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박 대통령은 철옹성처럼 김 실장을 곁에 두고 있다. 이러니 부실 검증의 책임을 누구에게 묻겠는가? 다 언론 탓이고 여론 탓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사과하면서 눈물 흘리던 박 대통령의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낀 국민들이 많았다. 국가개조를 말하고 적폐 청산과 국정 쇄신을 강조하면서 세월호 이전과 이후를 확실히 바꿔놓겠다는 의지에 모두 공감했다. 오죽하면 새누리당이 지방선거에서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자고 했겠는가. 하지만 국가개조를 추진할 국무총리는 인사실패로 두 사람이나 낙마하고 그 자리를 정홍원 총리가 계속 맡게 되면서 대통령의 의지는 퇴색되고 추진력도 힘을 잃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분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분명히 노력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수첩과 주변 인물에 국한한 노력이라면 결코 어려운 노력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분열된 나라를 통합과 화합으로 이끌어가겠다”고 한 대통령 아닌가? 문고리 권력이니 비선 인사라는 수근거림이 나오는 상황에서 널리 인재를 구할 수도 정상적인 인사 검증이 될 리도 없다.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모습을 바꾸지 않는 한 인사실패는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의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라 대통령이 스스로 바뀌는 노력을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