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8일은 100년 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이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향해 포탄을 쏘며 진군함으로써 유럽 각국이 뒤엉켜 싸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날이다.
유럽이 제국주의 영토 확장과 군비 팽창의 야욕에 휩싸인 나머지 빚어진 이 전쟁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까지 번져 세계는 참극을 겪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인류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냉전 등을 겪었지만, 여전히 갈등과 분쟁을 겪고 있어 세계 1차대전이 남긴 값비싼 교훈을 망각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배경과 경과1914년 7월28일 0시,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 시민이 우려했던 첫 포탄이 결국 날아들었다. 닷새 전 오·헝 이중제국은 세르비아에 사실상 선전 포고인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에 세르비아의 동맹국인 러시아는 총동원령을 내렸고, 오·헝 제국의 동맹인 독일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세르비아를 지원하는 프랑스와 벨기에 동맹국인 영국은 모두 독일과 맞서야 하는 '동맹 톱니바퀴'가 돌아갔다.
전선은 벨기에를 중심으로 한 서부전선, 발칸 반도를 무대로 삼은 동부 전선으로 크게 갈렸다.
전쟁 발발 3년 후인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일으킨 공산주의자들이 독일과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체결, 동부 전선의 총성은 멎었다.
초기에 밀렸던 영국-프랑스는 미국의 참전 덕분에 서부전선에서 우세를 확보했다. 전쟁은 5년 후인 1918년 11월11일 오전 11시 마지막 남은 독일이 항복 문서에 서명하면서 끝이 났다.
일본과 뉴질랜드는 독일이 지배하던 중국 칭다오, 뉴기니 등을 차지했고 중동과 아프리카의 양측 식민지에서도 전투가 벌어졌다.
◈ 신조어 '참호-저격-교착-무인지대'벨기에 서부전선에서 양측은 참호를 파고 상대의 진격을 저지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독일은 참호를 파는 기계를 만들 정도였다.
이탈리아를 침공한 오·헝 제국은 북이탈리아 알프스의 바위산에도 참호를 파 참호전은 세계 1차대전의 대명사가 됐다.
참호에 숨은 저격병은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물체를 향해 곧바로 총알을 쏘았다. 그 탓에 양측 모두는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가시 철조망을 에워싼 참호 속에 엎드려 서로 노려보는 양측에는 저격병 사거리만큼인 폭 1∼2㎞ 구간에 누구라도 얼씬할 수 없는 무인지대(no-man's land)가 생겼다.
정부 기록물에 따르면 이 같은 소모전으로 세르비아군 48만명 중 10만명만 살아남았다.
민간인 피해를 제외하더라도 양측 군은 사망 800만명, 장애인 700만명, 중상자 1천500만명을 냈다. 독일과 오·헝 제국, 프랑스에서 남성 활동 인구의 10∼17%가 감소했다.
◈ "교훈 잊지 말자"
전쟁이 끝나고 나서 오·헝 이중제국의 뿌리인 합스부르크 제국을 비롯해 프로이센 제국,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 오스만튀르크 제국 등은 무너졌다.
폐허가 됐지만, 체코 프라하와 헝가리 부다페스트,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등지에서는 민족자결주의 깃발을 내건 독립선언이 잇따라 나왔다.
이후 창설된 국제연맹은 지금의 유엔을 낳았다. 유엔은 국제법을 바탕으로 삼아 외교 협상으로 분쟁 해법을 찾으려 하지만 당사자들은 외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이자 유엔 특별자문관은 최근 '자만과 무지의 지도자들이 전쟁을 몰고 온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세계 1차대전에서 얻은 교훈을 되찾자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한다면 이는 희극"이라고 꼬집고 나서 "핵무기 시대의 세계가 전쟁에 다시 휩싸인다면 이는 희극이 아니라 모두가 공멸하는 비극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삭스 교수는 "1차 세계대전 발발 100 주년을 맞아 세계시민은 희극이나 또 다른 비극으로 분쟁을 종결할 게 아니라 대화와 협력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