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다'고 그토록 다짐했던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벌써 기억 저편의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7·30 재보선이 끝나자마자 여야 정치권은 '기다렸다는 듯이', '쫓기듯이'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했다. 유가족들은 '망각'을 위한 또 다른 야합일 뿐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망각'의 대한민국…. 세월호마저 '망각'의 제물이 되고 말 것인가?[편집자주]
"울 힘도 없는 유가족들이 전 국민을 위해 싸우고 있다".
세월호 참사 네 달 째를 앞둔 7일, 단식 농성장에서 세 사람을 만났다.
가수 김장훈과 고(故)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 그리고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 원재민 변호사. 그들은 모두 세월호 진상규명이 유가족이 아닌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장훈은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 단식 농성장에서 가진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4일 단식했는데 장정인 저도 쥐가 나고 어깨가 너무 아프다"면서 "유민이 아버지 다리를 만지면 보통 남성 팔 굵기밖에 안 된다. 그런 것을 보면서 제가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단식에 임하는 심경을 털어놓았다.
이어 "(세월호 진상규명은) 단순히 유가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방송을 보고 듣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부모를 위한 것"이라며 "울 힘도 없는 유가족들이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 전 국민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해줬으면 한다. 끝까지 지치지 말고, 놓지 말고 관심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진상규명이 가능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에 들어간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와 단식에 동참한 가수 김장훈씨, 그리고 원재민 변호사가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유가족 단식장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성호기자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천만 영화 '명량'에 현실을 빗대기도 했다. '명량'은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담은 영화다.
김장훈은 "정치인들은 조금 안 돼도 국민들은 깨어있고, 대한민국은 항상 민초들이 일으켰지 않느냐. 끝까지 1년이 걸리든 평생이 걸리든 함께 해달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칠 때, 조선의 모든 것에 대해 조사했다고 한다. 질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패전한 이유가 의병과 이순신을 계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에 대한 억울한 오해를 풀기 위해 단식에 동참했지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신곡 앨범 준비, 겨울 콘서트 준비 등 바쁜 스케줄들이 있었기 때문.
김장훈은 "먼지만큼이라도 도움이 될까하는 마음으로 왔다. 쉽지 않았지만 죽어도 와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며 "목숨을 건 단식을 하겠다는 말은 상징적으로 제 결연한 의지를 말씀 드린 것이다. 그만큼 모든 일들을 절대로 해가 안 가게 완벽하게 하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단식농성을 지지하는 시민을 안아주는 가수 김장훈씨. 윤성호기자
단식 농성장에서 그는 대한민국의 희망을 봤다. 7세 어린이는 응원가를 준비해 그와 듀엣을 하고, 60세 넘은 노인은 90도로 인사를 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김장훈은 "주저앉지 말고 이제 희망으로 세월호를 이야기하자"면서 "4일 동안 힘들었지만 다시 온다. 할 일 마치고 2차, 3차 단식 오는 이유는 떠나질 못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유민이 아버지, 김영오 씨의 마음도 같았다. 김 씨는 유민이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 사실을 세월호 사고가 난 뒤에야 알았다. 딸 유민이는 아버지에게 용돈 부담이 될까 알리지 않고, 자신이 모아 놓은 돈을 용돈삼아 수학여행을 떠났다.
단식 20일을 넘기면서 그의 몸 상태는 인터뷰하는 것이 힘들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김 씨는 또렷한 목소리로 질문에 답했다.
그는 "몸이 망가지는 것은 참을 수 있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가슴을 매일 찢어놓는 것이 더 아프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결단을 내렸으면 좋겠다.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유가족이 요구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은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몇 백명이 모여 이렇게 하면 진상규명을 할 수 있다고 만든 법"이라고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진상규명이 가능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에 들어간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와 단식에 동참한 가수 김장훈씨, 그리고 원재민 변호사가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유가족 단식장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성호기자
세월호 특별법안이 합의됐지만 김 씨의 투쟁은 계속된다.
그는 "특별법이라는 첫 단추를 잘 채워야 청문회,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고 제대로 할 수 있어서 단식하며 싸우고 있는 것"이라며 "철저한 진상규명, 정확한 책임자 처벌, 안전한 나라를 위한 정치하는지 계속 그것들을 가지고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유가족들에 대한 국민들의 오해도 해명했다.
김 씨는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진상규명이다. 특별법안에 의사자나 보상, 배상 문제는 일절 넣지도 않고, 하지도 않았다"면서 "얼마 전에 인터뷰한 대로 10원짜리 하나 줘도 받지 않는다. 자식 억울하게 죽는 것은 풀어주지도 않는데 그 돈을 받아 쓰느냐. 그럴거면 같이 죽어 버려야 한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원재민 변호사 역시 진상규명과 수사권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원 변호사는 "수많은 참사 있었지만 제대로 진상규명되고 책임자 처벌되고 제도 개혁이 되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똑같이 유야무야 넘어가면 안 된다"면서 "그건 모든 국민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유가족들 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반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호사 입장에서 그는 임의 조사권이 아닌 강제 조사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NEWS:right}
원 변호사는 "진상규명을 하려면 제대로 조사할 수 있어야 되는데 그러려면 확실한 조사 권한인 수사권이 필요하다"며 "과거에도 여러 조사 위원회가 있었지만 임의 조사권밖에 없었고, 진상규명에 한계가 있었다. 청와대나 이런 쪽에서 자료 제출 요청을 거부하는 사례들이 얼마나 더 수사권이 필요한지 보여주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벌써 네 달 째, 세월호 진상규명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과연 청와대와 정치권이 유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을 특별법안에 반영해 한 발 앞으로 전진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