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다'고 그토록 다짐했던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벌써 기억 저편의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7·30 재보선이 끝나자마자 여야 정치권은 '기다렸다는 듯이', '쫓기듯이'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했다. 유가족들은 '망각'을 위한 또 다른 야합일 뿐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망각'의 대한민국…. 세월호마저 '망각'의 제물이 되고 말 것인가?[편집자주]
지난 8일, 세월호 참사 115일째를 맞은 진도항에는 무심한 파도 소리만 들렸다.
근처 모래사장에는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이 모여 파도를 구경하고 있었다.
사고 초기 약 1,000명에 가까운 봉사자가 몰리는 바람에 천막 놓을 자리조차 없어 봉사단체들도 줄줄이 돌아섰던 진도항이 이제는 순찰하는 경찰만 눈에 띌 뿐이다.
참사 100일째만 해도 방파제를 따라 종교계 천막이 놓여있었지만, 태풍이 연이어 북상하면서 항구 안쪽 부둣가의 컨테이너 가건물로 옮겨졌다.
친정이 진도여서 종종 현장을 찾는다던 곽미선(46·여) 씨는 "2주 전만 해도 사람도 천막도 많았는데 오늘은 정말 텅 비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는 우리의 기억 속에 가라앉고 있지만, 지난달 18일 294번째 시신이 발견되고도 아직 10명의 실종자가 남았다.
◈ "특별법 합의? 장관 복귀? 아직 10명의 실종자가 남았습니다"고창석, 권재근, 권혁규, 남현철, 박영인, 양승진, 이영숙, 조은화, 허다윤, 황지현.
실종자 가족들은 오늘도 텅 빈 체육관을 지키며 돌아오지 않은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동생 권재근(52) 씨와 조카 권혁규(6) 군을 기다리고 있는 권오복(60) 씨는 새벽 6시면 일어난다. 잠이 적어서가 아니라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느라 매일 저녁 일찍부터 술을 마시다 보니 생긴 버릇이다.
권 씨는 "세월호 참사 100일 전후에 기자들이 잔뜩 몰려와서 이틀 사이에만 스무 번 넘게 인터뷰했다"며 "언론에서 세월호 참사를 안 다룰까 봐 인터뷰는 하지만, 속은 편하지 않다"고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침묵 속에 빠져있던 가족들도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 합의를 강행한 얘기를 꺼내자 꾹꾹 눌러 담았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밀실 합의를 했다는 것 자체가 틀렸다"는 권 씨는 "오히려 지금이라도 취소하면 된다. 자기들끼리 말로 합의한 사안이니 인정할 수 없다"고 답답해했다
또 권 씨는 "특례입학이니, 의사자니 하며 돈으로 입막음 하려는데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반면교사로 삼자는 것"이라며 "국회의원들은 '철저히 사고 원인을 조사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본보기로 만들자'는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특히 실종자 가족들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정상 업무로 복귀해야 한다"고 발언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 대해서는 격한 분노를 참지 못했다.
권 씨는 "그걸 말이라고 하나. 강 건너 불구경하는 건가"라며 "'여기는 현재진행형이니 착각하지 말라'고 전해 달라. 남아 있는 사람 모두 아직 못 찾은 10명을 다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당이 진상조사위원에 수사권, 기소권 부여를 반대하고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든 덮어볼까 하는데 뭐가 두려워서 이러는지 알고 싶다"며 "제대로 수사하면 국정원, 청와대를 모조리 수사해야 하는데 털면 다 나오니까 막으려고 애를 쓰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세월호 특별법도 중요하지만, 시신 수색 작업이 더 급한 실종자 가족으로서는 먼저 올라간 유가족처럼 정치권에 제대로 항의할 여력이 없다고 호소했다.
그동안 태풍과 장마가 찾아오면서 바지선까지 여러 차례 철수와 재설치를 반복하느라 수색 작업이 미뤄졌던 탓에 실종자 가족들의 속은 더 타들어만 간다.
딸인 단원고 학생 허다연(17) 양을 기다리는 허흥환(50) 씨는 "어느새 8월 중순이 다 되었는데, 8월이라고 바람 안 분다는 보장이 없다"며 "한 번 바지선을 빼면 다시 설치하는 데 1, 2일을 허비하니 미칠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정치권 행태에 너무 속이 상하지만, 우리는 자식이 아직 여기 있으니 어떻게든 찾아내야 해서 솔직히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진도에 남은 봉사자와 진도를 찾는 시민들진도를 떠나지 못하는 실종자 가족들이 안쓰러워 아직 그들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참사 첫날부터 식사 봉사를 해온 한국재난구호회 조성래(62) 목사는 지난 4월 16일, 옷 두 벌만 챙긴 채 진도항을 찾았다.
"기껏해야 일주일, 아무리 길어도 열흘이면 끝날 줄 알았다"던 조 목사는 순두부를 나눠주던 밥차 대신 아예 컨테이너 가건물에 '가족식당'을 차렸다.
조 목사는 "실종자 가족 중 한 명이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함께 있어 달라'고 눈물로 호소할 때 했던 약속을 지키려 남았다"고 말했다.
밤이 깊자 진도항에 버스 2대가 도착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진도를 찾는 시민들을 태운 '기다림의 버스'였다.
서울과 전남 광주, 군산 등지에서 온 시민 50여 명은 실종자 가족들과 조용히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진도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