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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판사들 "성폭력 재판은 지뢰밭"…왜?

    5개 관련법률, 모두 70차례 개정에 판·검사들도 헷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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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과 법원의 잘못된 법적용으로 성폭력범이 법에 정해진 것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았음에도 이를 바로잡을 수 없는 일이 또 일어났다. 도대체 왜 자꾸 이런 일이 발생할까?

    서울고법에 한 판사는 "성폭력 재판을 두고 '지뢰밭'이라는 표현을 쓴다"며 "법률의 제·개정이 잦아 재판을 할 때마다 법률을 다시 하나하나 확인하는데 공을 들이는데 가끔 법적용을 실수했다는 기사를 보면 아찔하다"고 밝혔다

    최근 서울고법 형사10부(권기훈 부장판사)는 20대 여성을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기소된 박모(22)씨에게 원심과 같이 징역 4년을 선고하며 "법정형 상한이 무기징역인 성폭력 범죄는 전자발찌 부착 기간이 10년 이상 30년 이하가 돼야 하는데 원심(서울동부지법)은 5년간 부착을 명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만 항소한 이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불이익하게 부착 기간을 늘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형사소송법 368조)"고 밝혔다.

    법원은 물론 검찰이 역시 법을 잘못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검찰은 박씨에 대해 징역 4년과 전자발찌 부착 5년을 구형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형대로 선고가 내려졌기 때문인지 검찰은 항소하지 않았고, 항소심 재판부는 '불이익변경금지 원칙' 때문에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의 오판을 알면서도 바로 잡을 수 없었다.

    검찰과 법원의 잘못된 법적용은 이 번 만의 문제는 아니다.

    앞서 법원은 서울 중곡동 주부살해범 서진환의 과거 범행에 대해서도 법을 잘못 적용해 그에게 최소 10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해야 함에도 징역 7년만 선고했다. 검찰은 8세 여아를 성폭행한 조두순을 기소하면서 법을 잘못 적용해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성폭력범죄와 관련된 검찰과 법원의 법적용 실수가 이어지는 이유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1차 책임은 잘못된 법을 적용한 판사와 검사에게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개인성폭력범죄 처벌규정과 관련한 법률 제·개정이 남발되는 것이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성폭력 범죄자의 강력한 처벌과 성폭력피해자의 보호를 골자로 한‘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특별법)은 1994년 제정된 뒤 17차례 개정됐다. 2010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으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9차례 개정됐다. 2000년 제정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역시 28차례 개정됐고, 2007년 제정된 '특정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부착에 관한 법률(전자발찌법)'과 2010년 재정된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약물치료에 관한 법률' 역시 각각 12차례, 4차례 개정됐다.

    잦은 제·개정이 이어지면서 성폭력범죄 관련 법률은 복잡한 체계를 갖게 됐고 현장에서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에 한 판사는 "법적용 실수는 매우 드문데 성폭력범죄는 형법과 성폭력특별법, 아청법 등 여러 법률에 조항이 흩어져있다 보니 성폭력 재판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재경지검의 한 검사 역시 "한 달에 수백 건씩 사건을 처리하는 일선지검 형사부 검사가 수시로 제·개정되는 관련법과 사문화된 조항을 줄줄이 꿰고 있기는 힘들다"며 "기소단계나 구형단계에서 관련법을 매번 확인하는데 솔직히 헷갈리기 쉬운 것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각종 특별법에 산재해 있는 대책들을 형법에 통합하거나 일부 특별법을 통합하는 방향으로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법률의 잦은 개정이 법적용 실수의 변명이 될 수 없다며 수사기관과 사법부가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성폭력범죄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호중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성폭력범죄 관련법이 굉장히 복잡한 것은 사실"이라며 "법전문가들도 특정 범죄에 대해 어떤 법이 적용되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관련법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오류가 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혼란을 줄이려면 앞으로 법 개정할 때 가능한 한 특별법에 산재한 규정들을 정리해 하나의 특별법으로 통합하고 형법에 처벌규정을 흡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형법을 전자발찌를 통합하기는 쉽지 않아도 성폭력특례법과 아청법은 통합할 수 있을 것 같다. 2개 법률만이라도 통합하면 법 적용에서 발생하는 혼란은 조금 줄일 수 있지 않겠나"고 제안했다.

    정현미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는 "법률은 필요에 의해 바뀌는 것이고, 잦은 개정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며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나 한계는 있겠지만 실무가라면 그 내용을 바로바로 숙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법률이 너무 자주 바뀌어서 실수를 한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BestNocut_R]

    정 교수는 "성폭력범죄에 대해 검찰의 관심이 덜 한 것도 이 같은 실수가 근절되지 않는 원인일 수 있다"며 "성폭력범죄 관련법이 왜 바뀌었는지 관심 있게 지켜본다면 개정되는 부분을 놓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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