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희망연대노조 C&M 지부가 노숙농성을 벌이는 파이낸스 빌딩 앞 인도에서 김진규 지부장 등이 삭발식을 하고 있는 너머로 붉은 원 안에 강성덕, 임정균 고공농성자들이 보인다.
케이블방송업체 C&M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 강성덕(35) 씨와 임정균(38) 씨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 있는 20m 높이의 광고판에 오른 날은 지난달 12일.
광고판 아래에서 노숙농성을 벌이는 노조원들이 올려주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비닐 봉투를 화장실 삼은 지 5일로 벌써 24일째다.
바람이 불면 난간이 따로 없는 광고판이 태풍에 휘말린 배처럼 사방으로 휘청거려 밧줄로 몸을 묶은 채 엎드려 지내야 한다. 엉금엉금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가도 겨울바람은 악착같이 두 사람을 따라붙는다.
자정이 넘으면 광고판 전원이 꺼지지만, 시설 내부 전등은 '윙윙' 소리를 내며 밤새도록 깜빡인다. 억지로 잠을 청해도 살을 에는 추위에 퍼뜩 눈을 뜨다 보면 하루에 2시간도 자기 어렵다.
3남매의 아버지인 임 씨는 "아이들에게 멀리 일하러 왔다고만 말했다"며 "아빠 얼굴을 보겠다고 서로 싸우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약해져서 전화하고 싶어도 참는다"고 털어놓았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강 씨 역시 가족에게는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언론보도로 뒤늦게 아들의 목숨을 건 농성을 알아차린 부모님이 찾아오자 결국 강 씨는 눈물을 쏟았다.
"비정규직 109명 대량해고를 책임져라"
이들이 광고판 위에 내건 현수막에 적힌 문구다. 지난 7월 C&M은 19개 외주업체 중 5개 업체의 비정규직 노조조합원 109명을 골라내 한 번에 해고했다.
희망연대노조 이종탁 노조위원장은 이번 정리해고가 단순한 인력감축이 아니라 "C&M을 인수한 MBK, 맥쿼리 등 사모펀드가 이른바 '먹튀'를 하기 위해 단기 실적을 높이느라 빚어진 일"이라고 주장한다.
C&M의 '먹튀'의 역사는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C&M은 이 때 골드만삭스에서 1,400여억 원을 투자받으며 급속히 회사 규모를 확장했다.
그러나 2008년 MBK 파트너스, 맥쿼리 등 사모펀드가 '국민유선방송투자(KCI)'라는 회사를 만들어 C&M을 인수해 최대주주로 떠올랐고, 이 과정에서 골드만삭스는 지분 30%를 매각해 6,250여억 원을 챙겼다.
당시 MBK와 맥쿼리는 인수대금 2조 2,000여억 원 중 자기자본은 고작 3,500여억 원만 준비했을 뿐 1조 5,600여억 원은 은행에서 대출받았다.
대출 담보는 C&M의 주식으로, 인수할 회사의 자산을 미리 맡기고 자금을 빌린 뒤 구조조정으로 회계상 이익을 극대화해 되파는 전형적인 먹튀 수법이라는 게 노조 주장이다.
이 때문에 MBK 등은 과거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했다가 되팔아 막대한 차익을 남기면서 먹튀의 전형이 된 '론스타'에 비유되기도 한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C&M은 은행이자로만 4,280여억 원을 허공에 날렸다.
지난 3일 농성장을 찾은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도 "MBK가 C&M을 인수하는 과정과 은행권과의 유착 관계 등에 관해 문제삼겠다"고 약속할 정도다.
이종탁 노조위원장은 "C&M은 해마다 300~500억 원씩 당기순이익을 냈다"며 "그동안 MBK 등은 해마다 당기순이익의 80% 이상을 주주배당으로 받아가고 은행은 꼬박꼬박 이자를 챙겼지만, 노동자에게는 임금 인하와 정리해고만 돌아왔다"고 지적했다.
원청업체인 C&M과 하청업체, 노조는 지난달 28일부터 1차 회의를 열고 3자협의체를 구성했다. 이들은 지난 일주일을 집중교섭 기간으로 잡고 대책을 논의했지만 뾰족한 돌파구는 아직 찾지 못했다.
노조 측은 ▲109명 해고자 원직복직과 단협·근속 승계 ▲구조조정 중단 및 고용보장 ▲임금단체협상 체결 ▲해고 및 직장폐쇄 장기화에 따른 위로금 지급을 4대 요구안으로 꾸준히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지난 3일 사측이 고용승계안을 내놓았지만, 기존 기술직 노동자를 방문판매 영업직으로 고용하겠다는 내용이어서 노조의 반발만 샀다.
지난 4일 5차 교섭에서도 사측은 "109명에 대한 영업직 전환을 제외한 방안이 있다"면서도 이를 공개하기 전에 고공농성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20여분 만에 협상이 결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