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10일 오후 퇴원 기자회견을 위해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세미나실로 들어서며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박종민 기자)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퇴원 기자회견에 앞서 미 대사관 측이 동의 없이 기자들의 개인 물품을 뒤지고 몸수색을 벌여 취재진의 거센 반발을 샀다.
기자회견이 열리기 1시간 30분 전인 10일 오후 12시 30분쯤, 미 대사관 직원들이 기자회견장인 세브란스병원 6층 세미나실을 찾았다.
이들은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몸수색을 해야 하니 짐을 놓아두고 브리핑실을 잠시 비워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취재진이 모두 기자회견장을 비우자, 대사관 측은 방문을 닫고 경찰의 협조 아래 개인 짐과 외투를 하나씩 뒤졌다.
일부 취재진이 "짐을 뒤진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며 항의했지만 서울 서대문경찰서 경비과 소속 경찰관 4-5명은 별다른 설명 없이 "들어갈 수 없다"며 문 앞에 버틴 채 몸으로 막아섰다.
상당수 기자들은 점심 시간이어서 자리를 비웠다가 뒤늦게 기자회견장 앞으로 찾아와 "사전에 안내조차 받지 못했다"고 항의하기도 했지만 역시 경찰에게 제지된 채 아무런 답도 들을 수 없었다.
일부 기자들이 "필요한 물품을 가지러 가야 한다"며 기자회견장 진입을 시도하자 경찰관이 이를 제지하며 해당 기자를 끌어내기도 했다.
대사관 측은 뒤늦게 기자들에게 동의를 구했지만, 이미 수색을 거의 마치고 대사관 직원들이 방을 나서기 시작한 뒤였다.
이날 20여분에 걸친 보안수색에서 대사관 측은 한 기자의 필통 안에 있던 연필깎기용 커터칼 1점을 발견해 압수했다가 기자회견이 끝난 뒤 반납했다.
이후 기자회견장에 출입하는 기자와 병원 관계자 등을 상대로 금속탐지기를 동원하며 몸수색을 벌였으며, 기자회견이 시작하기 30여분 전에는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이와 관련해 미 대사관 관계자는 "보안에 관한 내용은 미국 본국 직원들이 전담한다"며 "관련 내용은 같은 대사관 직원이라도 한국인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한국 언론의 경우 미 대사관 보안 관련 인원과는 전화 통화도 불가능하다"며 "보안 담당자에게 문의해보겠지만 답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세브란스 병원 측은 "대사관이 오늘 오전 보안 검색에 관한 안내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고 전했지만, 회견장에 있던 기자들 중 메일을 받은 곳은 외신을 제외하면 1~2군데 뿐이었다.{RELNEWS:right}
현장에 있던 한 기자는 "가방을 마음대로 뒤지는 바람에 물품에 커피가 쏟아져 난장판이 됐다"며 "한국인을 속국 취급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이광철 변호사는 "당사자 동의가 없으면 수사당국도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야만 수색할 수 있는 게 상식"이라며 "동의 없이 짐이나 몸을 뒤지는 일은 형법상 강요죄 등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항 등에서 이뤄지는 보안수색은 법적 근거를 이미 갖췄고, 공항 이용객들도 암묵적인 동의를 했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라며 "기자라는 특수한 신분이기 때문에 소송을 걸기 어렵겠지만, 일반인이라면 민형사 소송도 제기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