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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 경찰 총리는 '술래'…공무원은 '꼭꼭' 숨어라

[뒤끝작렬] 경찰 총리는 '술래'…공무원은 '꼭꼭' 숨어라

정부세종청사 풍경. (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요즘 정부 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중앙부처 공무원, 특히 과장급 이상 간부들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살맛이 나지 않는다'며 푸념하는 소리도 들린다.

공무원연금은 반타작이 날 것이라는 흉흉한 소식이 들리고, 퇴직한들 관피아 비난 때문에 재취업할 기회도 공간도 사라졌다. 이래저래 기분이 언짢다.

이런 마당에 지난 3월부터는 일 거수 일 투족까지 '감시'를 받고 있으니, 정권에 대해 은근히 약이 오르고 있다.

◇ '사라진 김 과장을 찾아라'…간부 공무원 출장내역 조사

지난달부터 세종청사에 있는 국토교통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의 간부 공무원들은 아예 출장을 가지 않겠다며 버티는 분위기다.

국무총리실이 '사라진 A 과장'을 찾겠다며 모든 부처 과장급 이상 간부들의 출장 현황을 조사하는 등 난리를 피웠기 때문이다.

내용은 이랬다.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에 근무하던 A 과장이 기획재정부로 발령이 난 뒤, 서울 출장을 핑계로 기재부 세종청사에 거의 출근하지 않았다.

조직에 불만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불똥이 세종청사 모든 간부들에게 튀면서 최근 1년 치 출장 기록이 낱낱이 조사됐다.

국무총리실은 출장이 많았던 상위 20%에 대해선 출장 사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이렇다 보니 세종청사 간부공무원들은 괜한 오해를 사면서까지 출장을 갈 이유가 없다며 자리를 지키겠다는 분위기다.

국토부의 한 간부 직원은 "업무상 전국 출장이 많은데 사유서를 내라고 하면 마치 죄가 있어 해명하는 것 밖에 더 되느냐"며 "그럴 바에야 출장을 아예 가지 않겠다는 동료들이 많이 있다"고 전했다.

◇ 컴퓨터 부팅 시간을 체크하라…일 거수 일 투족 감시

간부 공무원들은 그래도 여기까지는 참았다. 그런데 이 달 들어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가 또다시 내려왔다.

국무총리실이 청사 출입 시간과 컴퓨터 부팅 시간까지 조사를 해 간 것이다. 제때 출퇴근을 하는지, 점심시간은 준수하는지, 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조사한 것이다.

심지어 간부 공무원들에게 개인정보 조사에 따른 동의서까지 받아갔다. 이에 대해 세종청사 공직사회는 드러내 놓고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한 간부 공무원은 "공직사회가 아무리 경직됐다고 하지만 그래도 정해진 틀 안에서 업무의 자율성이 보장됐다"면서 "컴퓨터 부팅 시간까지 조사해 간 것은 공무원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또, "공무원을 믿지 못해 감시를 한다면 이게 정상이냐"며 "맥이 빠져서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상황이 이쯤 되다보니, 세종청사 주변의 음식점은 오후 12시 30분이 조금 지나면 공무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썰렁하기만 하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커피전문점에서 커피 한잔 하면서 담소를 나누던 여유도 사라졌다. 봄이 왔지만 세종청사는 한 겨울이 시작된 느낌이다.

◇ "이완구 총리가 경찰 출신 아닙니까?"

국무총리실은 이런 조치들이 공직 기강 확립을 위해서라고 항변한다. 분명 일리가 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눈치를 살피던 공무원들이 연말에 몰아서 해외출장을 다녀온 경우가 공직 해이의 대표적인 사례다.

심지어 야근을 하지 않았으면서 야근 수당을 타가는 것은 이미 오래된 관행처럼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총리실이 공직사회를 통제와 감시 대상으로 싸잡아서 몰아붙인 것은 전례가 없었다.

공직사회는 공무원연금 개혁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해서 공직사회를 옭아매겠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세종청사의 한 간부 공무원은 "경찰 출신 (이완구) 총리가 취임하더니 공직사회가 사정 대상이 된 것 같다"며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무슨 창조적인 혁신 방안이 나올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간부는 또, "공무원연금 개혁을 하겠다고 나선 마당에 공무원들의 근무 기강 해이는 개혁의 명분으로 더 이상 좋을 게 없다"며 "그렇지만 공무원들의 힘을 빼서 정부가 좋을 게 무엇이 있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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