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지출을 수반하는 법안을 발의할 때 재원확보 방안까지 내도록 하는 '페이고(Pay-Go·번 만큼 쓴다)' 제도의 도입을 정부·여당이 적극 추진 중이다. 포퓰리즘적 예산낭비 사업을 막아 재정건전화를 꾀하자는 취지지만, '입법권 침해' 논란해소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새누리당 이만우 의원은 23일 CBS와의 통화에서 "원내대표가 페이고 제도 도입에 진지한 입장을 보인 만큼, 6월 임시국회 때 관련 후속법안 발의를 할 예정"이라며 "일정액 이상의 재정소요 법안인 경우 국회 예산결산특위와의 상의를 의무화한다는 게 골자"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앞서 2012년 10월 '재정지출을 수반하는 의원입법에 대해 재원 조달을 규정한 법안도 함께 제출'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아울러 동일한 내용으로 정부의 법안제출을 규제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도 냈다.
그는 "고속도로와 공항 건설을 비롯한 각지의 SOC사업에 대해 '국비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식의 특별법 입법이 많다. 이런 데서 오는 과다지출을 막기 위해 사전에 재정검토를 제도화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의 법안 발의 뒤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유사 입법이 뒤따랐다.
이노근 의원은 2013년 11월 '재정지출 법안 발의시 재원조달 방안을 첨부'하도록 이만우 의원안보다는 다소 유연한 국회법 개정안을, 이한구 의원은 지난해 3월 '예결특위 중심의 하향식 예산심사 체계 수립으로 상임위의 예산 재량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 당·청 적극적 도입 의지이같이 수년간 계류상태에 있던 페이고 법안들이 최근 재조명되는 것은 당청 수뇌가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지난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관련 법안이 계류돼 있으니, 모든 것을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박근혜 대통령도 앞서 "입법을 통한 무분별한 지출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재정을 수반하는 법률 입안시 재정 조달 방법도 함께 제출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3년간 세수부족이 22조 2000억원이고 올해도 상당 규모 부족이 예상된다"는 유 원내대표의 지적처럼, 현재 재정상태는 비관적으로 평가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0년 392조원으로 GDP대비 31% 수준이던 국가채무는 2013년 현재 490조원(GDP대비 34.3%)로 오른 게 확인됐고, 올해는 570조원(35.7%)으로 급증이 예상됐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2013년 21조1000억원에서 올해 33조6000억원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몰아간 원인 중 하나가 의원들의 선심성 공약과 입법이라는 지적이다. 19대 국회 들어 '특정 지역' 또는 '특정 국제행사'를 수혜대상으로 하는 지원특별법은 30여건이나 발의됐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선심성 지역예산 남발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역구 의원들로서는 각자의 표가 달려 있기 때문에 서로 견제하기가 어렵다"며 "말도 안되는 국제행사 유치를 지원하는 특별법 입법 등 무분별한 재정낭비는 합리적 수준에서 걸러주는 게 맞다"고 말했다.
◇ 국회의 입법권 침해 논란
다만 페이고 제도 도입이 결과적으로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침해한다는 점이 문제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재정을 수반하는 모든 의원입법에 대해 지출법안을 의무화하는 것은 국회 입법권과 재정 권한을 과도하게 통제할 것"이라며 "재정건정성 회복을 위해서는 페이고 보다는 '부자감세' 철회가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정부는 재정악화에 책임이 없느냐'는 반격으로 이어진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재정문제에 대해 국회만 탓할 게 아니라, 정부와 공공기관의 방만한 재정운영을 돌아봐야 한다. 4대강사업과 자원외교, 방위사업 비리가 명백한 증거가 아니냐"고 질타했다.
또 미국에서 쓰는 페이고 제도를 우리 예산체계에 접목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미국은 의회가 예산을 편성하지만 우리는 정부가 한다.
인천대 경제학과 황성현 교수는 "페이고는 기본적으로 우리보다 재정규모가 크고, 재정적자도 큰 미국이란 나라에 적합한 제도다. 이 제도가 '꼭 해야 되는 복지사업'의 입법을 기피할 핑계거리로 악용될 여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이 제도가 종국적으로 '예결특위의 우위'를 인정하게 된다는 점에서 상임위간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 의원 상호간에 동료의원 지역사업 예산에 대한 통제를 꺼릴 가능성 등에 따라 입법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