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 경로조차 파악할 수 없는 메르스 확진 사례가 속출하고 있지만, 보건당국의 현실인식은 여전히 안이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26일 브리핑에서 "서너 케이스 정도 감염경로를 조사 진행 중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조사가 된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대 잠복기' 4주를 지나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까지 감안하면, 감염 경로가 분명치 않은 환자는 줄잡아 20명이 넘고 있다. 보건당국이 지나치게 현실을 낙관적으로 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일단 이날 보건당국이 아직 감염 경로를 밝히지 못했다고 실토한 사례는 경기도 평택의 경찰인 119번(35) 환자. 당국은 119번 환자의 동선을 추적해 평택박애병원에서 52번(54·여) 환자를 통해 감염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52번 환자가 병원을 찾기 17분 전 이미 119번 환자가 병원을 떠났기 때문에 119번 환자의 감염경로는 2주일째 미궁 속에 빠져있다.
보건당국이 인정한 또다른 사례는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됐지만 응급실 밖에서 감염된 첫 사례인 115번(77·여) 환자다.
이 환자는 지난달 지난 27일 정형외과 외래 진료를 받기 위해 삼성서울병원을 찾았을 뿐, 대규모 감염의 온상이었던 응급실에 들른 적이 없는데도 메르스에 감염됐다.
당국은 이 환자가 의도치 않게 삼성서울병원에 메르스 바이러스를 노출시킨 14번(35) 환자와 화장실에서 접촉했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두 환자가 성별이 달라 '화장실 입구에서 잠시만 마주쳐도 감염되느냐'는 반박이 쏟아졌다.
또 지난 24일 메르스 환자로 확인된 경기도 평택의 178번(29) 환자도 아직 역학 조사 중이다. 이 환자는 지난달 18일부터 평택성모병원과 평택박애병원에서 아버지를 간호한만큼 감염 경로는 쉽게 밝혀질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지난 6일 간암으로 숨진 이 환자의 아버지는 두 차례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또 178번 환자는 지난달 29일 평택성모병원을 떠났고, 증상은 지난 16일 발현했기 때문에 잠복기를 고려하면 이 병원에서 감염됐을 가능성은 낮다.
마지막으로 178번 환자가 평택박애병원에 머무른 동안 22번(39·여) 환자와 52번 환자가 같은 병원을 경유했지만, 178번 환자의 병세가 위중해 면접조사를 실시할 수 없어 아직 정확한 감염경로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보건당국이 인정한 이 3가지 사례 외에도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환자들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당장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밖 감염 사례만 봐도 115번 환자를 포함해 수두룩하다.
메르스 증상을 자각하지 못한 채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던 141번(42) 환자는 지난달 27일 부친이 삼성서울병원 비뇨기과에서 외래 정기검진을 받을 때 동행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됐다.
166번(62) 환자도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5일까지 삼성서울병원 암병동에 입원한 아내를 간병했던 환자 가족으로 막연히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됐으리라는 추정 뿐이다.
174번(75) 환자 역시 지난 4일과 8일, 9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메르스 바이러스에 노출 된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감염경로는 '확인 불가' 상태다.
이 외에도 강동경희대병원에서 감염된 165번(79) 환자는 투석치료 차 내원했다가 지난 9일 숨진 76번(75·여) 환자에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됐지만, 응급실과 투석실이 분리돼있어 정확한 감염경로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보건당국의 방역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당국은 여전히 자신들이 내놓은 '짜맞추기식' 추정을 토대로 "감염경로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해 국민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