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사건의 억울한 피해자들은 최근의 재심을 통해 늦게나마 치유됐을까. 현실 속 그들은 고문 가해자와 다시 맞닥뜨린 트라우마로 충격 속에 세상을 등지기도 했고, 배상 절차의 허점 때문에 또다른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CBS노컷뉴스는 '되살아난 고문, 두번 죽는 이들' 기획을 통해 공안사건 피해자들이 다시 겪는 아픔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영화 '남영동 1985'의 한 장면.
"분노에 가득 차서 부들부들 떨었어요, 다시 보지 말아야 할 사람을 봤으니 병이 생겼죠."
1980년대 중반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국가정보원의 전신)에서 고문을 받고 간첩의 누명을 쓴 A씨.
그는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이 과정에서 고문 가해자와 다시 마주해야 하는 고통을 겪게 됐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암에 걸렸고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A씨의 부인 B씨는 그 후 기억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남편이 괴로워하던 모습뿐이라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기로 했다. 기억을 묻어버리기로 했다.
이미 B씨는 그해 추운 겨울 남편이 안기부에 끌려간 충격으로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병까지 얻은 상태.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한 말이 자신도 모르게 넋두리로 입 밖을 빠져나오곤 한다.
하지만 용기를 낸 B씨는 CBS노컷뉴스 취재진을 만나 어렵게 기억을 더듬어 깨웠다.
"안기부 지하실에 개장 같은 곳에 갇혀 있었대요. 자신들이 원하는 말을 자백하라며 빛 한줌 없는 곳에서 말도 못할 고문을 당했죠. 얼마나 힘들었으면 '차라리 죽여달라'고 했대요."
A씨는 40여일 동안 계속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일부 혐의를 인정했다. 그리고 법원은 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후 그에게는 '간첩'이라는 주홍글씨가 따라다녔다. 주변 이웃은 물론이고 가족들과도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이사를 가도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일쑤였다. 결국 2010년 재심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기로 결심했다.
신청한 지 2년여 만에 시작된 재심. 그러나 법정에 나온 A씨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안기부 지하실에서 자신을 고문한 C씨를 만난 것.
A씨는 C씨를 알아볼 수 없었다. 덩치가 코끼리 같던 C씨가 볼품없이 깡마른 노인이 돼 나타났기 때문이다.{RELNEWS:right}
B씨는 "남편이 정말 자신을 고문한 사람이 맞는지 판사에게 물어봤다"며 "재판이 끝나고도 저에게 '이상해, 정말 이상해'라고 할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몸집은 외소해졌지만 C씨는 법정에서 당당했다. 고문을 한 적 없고 오히려 국가가 하는 일에 일조했다는 식으로 A씨를 몰아붙였다. A씨는 분노에 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고문으로 잔인하게 사람을 죽여 놓고 또다시 말로도 고문을 했으니 사람이 병이 안나요? 악마보다 더한 사람이죠. 남편은 그동안 살아도 산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날 이후 A씨는 고문실에서 겪었던 지옥 같은 일들이 떠올라 잠을 잘 수 없었다. 평소 하루 한갑씩 피우던 담배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B씨도 괴롭긴 마찬가지였다. B씨는 "사람들은 그 속을 전혀 모를 것"이라며 "저도 옆에서 같이 산 사람이지만 10분의 1도 모른다"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A씨는 1년여의 재판 끝에 지난 2012년 무죄를 선고받았다. 명예는 회복됐지만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이런 경우가 어디있냐고 너무너무 억울해하며 떠났어요.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그 과정과 내용은 고문을 당할 때와 똑같은 폭력이었다고 생각해요, 삶 자체가 고통이었으니 차라리 눈을 감은 게 훨씬 편할 거예요."
B씨는 남편의 한(恨)을 풀어주기 위해 ▲고문 가해자의 사과 ▲정부의 공식 사과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 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B씨는 정부를 상대로 A씨를 대신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중이다.
B씨는 "제가 못할 말을 한 것은 없다"면서도 자신의 이야기가 재판에 영향을 끼치게 될까 걱정해 익명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