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석유공사가 해외자원개발에 신중하라는 매킨지 용역보고서를 정반대로 왜곡해 투자 기준을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새정치민주연합 전정희 의원실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였던 2007년 5월 투자관리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영국 에너지 연구기관인 우드매킨지와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매킨지는 같은 해 8월 최종 보고서를 통해 "목표 생산량 달성을 위해 수익률이 낮은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말라. 자주개발율이라는 정치적 목표는 투자의 결정요인과 다르다"고 권고했다.
수익율이 낮은 광구에 투자하지 말고 자주개발율이라는 목표에 맞춰 투자를 결정하지 말도록 철저하게 기업의 시각에서 투자를 하라는 주문을 내놓은 것이다.
자주개발율은 우리나라 기업 등이 국.내외에서 생산한 자원의 비율이 총 1년간 소비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노무현 정부에 이어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자주개발율 목표치를 높게 잡고, 석유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들이 대대적인 해외자원개발에 나서도록 직.간접적인 압박을 가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있었던 2010년 12월 발표된 '제4차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을 통해 정부는 2019년 기준으로 석유·가스 자주개발율 목표를 30%로 잡았으며, 유연탄 철광 동광(구리) 아연광 우라늄 니켈광 등 6대 전략광물에 대해선 42%로 정했다.
이종호 가스공사 사장 직무대행은 올해 2월 국정감사에서 '자주개발율'을 평가 지표로 활용한 것이 사실상 '압박'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매킨지가 자주개발율을 '정치적 목적'으로 규정한 것은, 과도한 목표치가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매킨지는 또 "입찰할 때 해당 프로젝트의 수익에 대해 항상 유의해야 하며, 너무 도전적으로 입찰에 참여하지 말라"고 석유공사에 권고하기도 했다.
석유공사가 매킨지 보고서에 충실했다면 캐나다 업체 하베스트 등을 인수해 수조원의 손실을 보지 않았을 개연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석유공사가 매킨지 보고서를 자의적으로 왜곡해 투자기준을 세웠다는 점이다.
석유공사가 2007년 11월 12일 작성한 '석유개발사업 투자관리기준 수립보고'에는 "(매킨지가)공사의 장기 전략목표 달성을 위해 기존보다 더 적극적인 자산가치 평가를 권유했다"고 적혀 있다.
이는 매킨지가 보고서에서 "석유공사는 매장량 2P(추정매장량) 100%, 3P(가능매장량) 30%라는 매우 도전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우려한 것과도 상반되는 것이다.
이런 왜곡 과정을 거쳐 석유공사는 매장량을 과다 인정하는 투자 기준을 세웠다.
이는 추정매장량은 50%만 인정하고, 가능매장량은 거의 인정하지 않는 국제기준과도 한참 거리가 멀다.
석유공사는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에 자체 대형화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투자 매장량 기준을 느슨하게 책정했고, 이는 노 정부에 이어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정책과 맞물려 공격적인 투자의 근거가 됐다.
실제 매킨지가 분석한 해외기업 7개사의 매장량 인정범위을 보면, BP.ECOPETROL 등 5개 해외 기업 대부분이 확인매장량 100%, 추정매장량 50%, 가능매장량 0~15% 정도만 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석유공사는 국제시장에서 손쉬운 '먹잇감'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전정희 의원은 "매킨지 보고서는 분명히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투자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음에도 석유공사가 이를 무시한 것은 국민을 위한 기업이 아닌, 정권을 위한 기업이라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