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가 지난 2001년 펴낸 '21세기 국사교육의 새로운 모습' (사진=정영철 기자)
정부 여당이 무리하게 강행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교육부 산하 국사편찬위원회가 지난 2001년 펴낸 책자에는 "일제 잔재와 유신 독재의 독소가 청산되지 못한 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신랄한 비판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지난 2001년 펴낸 '21세기 국사교육의 새로운 모습'이라는 책은 국사교과서 국정화의 연원과 폐해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은 국사편찬위가 공동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나온 내용을 국사편찬위가 모아 엮은 책이다. 국사편찬위는 연구비도 지원했다.
이 책은 우선 1972년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된 국정화 논의에 대해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교재를 획일화함으로써 민족사 교육의 강화보다는 오히려 엉뚱한 부작용을 초래해 역행적인 결과를 자초할 것이라는 이유에서 반대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유신정권의 강행으로 1974년부터 중고등학교에서 국정교과서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는 "1972년 '10월유신'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책은 '유신과업 수행에 앞장서는 한국인 육성'이라는 1973년과 74년의 장학방침을 언급하며 "국사교육의 강화는 유신체제 수호를 위한 정치학습으로, 또 국정화는 독재에 대한 저항을 막는 예방 장치로서 각각 의미를 가졌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정화에 대해 "박정희 정권이 자행한 유신독재의 독소 중 하나"라면서 "그 원죄는 일제 식민지 지배의 잔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국가 건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까지 국정교과서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데 대해선 "일제의 잔재와 유신독재의 독소가 청산되지 못한 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못박았다.
이 책은 이어 "국사교육이 정치의 시녀가 되는 것을 막고 학문과 사상의 다양성을 회복하는 의미"라며 국정화 철폐를 강하게 주장했다.
교육현장에서도 국정 교과서의 부작용이 크다는 진단도 내놨다. 단일본으로 나오는 역사 교과서가 '성경'과 같은 절대적 위상을 갖게 되면서 "학생들은 교과서에 적힌 내용만을 되뇌는 정답형의 사고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교육주체들의 소외는 심화되고, 경쟁적인 입시 위주의 암기식 교육만이 판을 치게 되었다"면서 "국사수업도 역사적 사고력, 역사의식의 심화와 같은 본래의 목적을 잃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책은 역대 편찬위원장들이 한결같이 국정화의 조기 폐지를 강력히 촉구했다면서 대표적인 인물로 박영석(전두환 정권부터 10년 이상 위원장 역임), 이원순(1994년 취임), 이성무(1999년 취임) 등을 예로 들었다.
현행 검정제에 대해서도 "국가가 교과서를 사전에 검열하는 방식으로 교육내용에 대해 통제하고 간섭하는 제도"라며 "자유민주주의 기본원리에도 어긋난다"고 했다.
대안으로 검정제보다 정부 간섭이 훨씬 적은 자율발행제 채택을 요구했다. "교과서와 교과서 이외의 학습자료 사이의 벽을 허물고, 교과서에 대한 논의와 비판을 개방하며 활성화하고 집필의 통로를 확장할수 있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