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손자병법(孙子兵法)에는 전쟁이 국가의 존립과 폐망을 좌우하는 중대한 일이고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적의 변화에 따라 이에 상응하는 다양한 전략 전술을 사용해야 승리할 수 있으며…(중략)…용병을 하는 경우 적을 기만하는 방법을 활용할 수도 있고, 적에게 이로움을 보여줌으로써 적을 유도할 수 있으며,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병력을 움직이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는 등 탄력적인 용병을 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취지가 기재돼 있습니다. 수천년 전부터 제기되는 이런 주장에 대한 양측 입장은 무엇입니까?"
위 질문은 대학 강연이 아니라 지난 30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4차 공판준비기일에서 나온 김시철 부장판사의 질문이다. 국정원 사이버 전담팀의 댓글 활동을 뜬금없이 손자병법에 적용시키는 재판부의 황당 질문에 박형철 부장검사는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김시철 부장판사)가 심리하는 원 전 원장의 파기환송심이 정식 재판이 시작되기 전 공판준비기일에서부터 지나치게 편향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진행된 4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의견서나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문 표현 하나하나를 문제삼았다.
재판부가 미리 문서로 준비해온 질문지만 수십 장에 달했다. 어느 재판에서도 보기 힘든 꼼꼼한 준비였지만 내용은 변호인 측에 지나치게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다.
질문은 가정법으로 '~라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는 형식이었는데 대체로 변호인의 입장을 그대로 옮겨왔다. 재판부의 질문이 계속될수록 변호인들은 옅은 미소를 띄며 "맞습니다", "그렇습니다"는 답변을 이어갔지만, 검사들을 얼굴을 붉히며 반발했다.
오전에 재판부는 국정원법 3조1항1호에서 국정원 업무로 규정한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에서 '배포'의 범위를 문제삼기 시작했다.
즉 국정원이 평소 유관기관에 국내 정보를 배포하는 것이 업무의 일환이라면, 일반 국민에게 사이버상으로 정보를 배포할 수 있는 것도 업무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정 대선 후보를 비하하는 등의 국정원의 사이버 댓글 활동을 유관기관과의 정보 공유 상황에 빗댄 것.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이 신분을 노출한 상황에서 사이버 활동을 하면서 일반 국민에게 대공 업무를 배포하는 경우는 적법하느냐"고 묻자, 검찰은 "민주주의 대명천지에 국정원 직원이 신분을 노출하고 올리는게 가능하냐. 1%라도 가능성이 있는 것을 물어달라"고 맞받았다.
재판부가 "꼭 이름을 밝히는 것이 아니고 국정원 공식 SNS가 있을수도 있지 않느냐. 홈페이지에 올릴 수 있지 않느냐"고 논쟁을 이어가자 검찰은 "신분 노출은 국정원직원법상 처벌을 하게 돼 있다"고 재반박했다.
검찰은 "우리는 국정원법상 선거 관련 정치관여에 위법성을 먼저 검토했고, 국정원의 직무는 여러 논거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논리전개가 뒤바뀌었다"고 질문 자제를 요청했지만, 국정원 직무범위에 관한 추상적이고 가정적인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오후에도 재판부는 변호사들도 미쳐 생각하지 못한 법적 논리까지 찾아내며 편향적인 진행을 이어갔다. 원 전 원장에게 실형을 선고한 2심 재판부의 판결문이나 검사 측이 제출한 의견서에서 등장하는 표현에 대해 앞뒤 맥락을 자르고 문제를 제기했다.
급기야 재판부는 "2005년 3월 참여정부 시절부터 국정원의 대북 사이버 심리 전담팀이 설치됐기 때문에 이 기간의 모든 사이버 활동을 전반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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