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가 CBS 방송에 출연한 민중총궐기 집회 참가자의 신상정보를 요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적잖은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북한이탈주민 관리나 간첩, 보안사범 등을 수사하는 경찰 내 '그림자 부서'인 보안수사대가 직접 방송사를 상대로 일반 집회참가자의 신원까지 요구하고 나서면서 '민중총궐기' 대회를 '종북 프레임'으로 몰고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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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이튿날인 17일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 소속 김모 경위는 '김현정의 뉴스쇼' 제작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일베 같은 사람들이 계속 연락해 A씨를 조사하라고 한다"며 "목격자가 맞는지 확인해야겠다"고 신원공개를 요구했다. 그는 또 "방송국으로 찾아갈테니 A씨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인터넷 극우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일베)'에서는 농민 백씨가 물대포를 맞고 넘어질 당시의 영상을 놓고 "빨간 우비를 입은 남성이 백씨를 일부러 무릎과 주먹으로 때렸다", "80년대에 자살유발조도 있었는데 철저히 밝혀내면 좌파들 까발려질 좋은 기회", "1990년 안팎에 줄줄이 분신자살할 때 자살조 운영조는 지금 엄청 출세했다", "보성 할배, 시체팔이 장사꾼 손에 맞아 죽을 뻔 했다"는 등의 루머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
지난 17일 극우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올라온 한 게시글. 현재 이 사이트에는 물대포에 맞은 백씨를 구조려던 집회참가자에 대한 비난이 들끓고 있다. (자료=일간베스트저장소 캡쳐)
백씨를 구조하려던 집회 참가자가 결국 자살유인조이고 백씨가 사망하면 이를 토대로 시민단체들이 '시체팔이'를 해 대정부 투쟁 강도를 높이려 한다는 게 '일베' 사이트의 주장이다.
결국 서울청 보안수사대 소속 경찰관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백씨를 부축한 방송 출연자 A씨의 신원공개를 요청한 셈이다. 쌀값 폭락에 따른 정부 대책을 요구하기 위해 집회에 참여한 농민들에 대한 '일베'의 일방적 주장을 근거로 경찰 보안수사대가 사실확인에 나선 것.
특히 경찰청 보안수사대는 국내외 간첩활동이나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등을 수사하기 위해 설치된 특수 조직으로 인력규모와 예산, 운영방침 등은 철저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경찰이 전방위적으로 집회참가자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가운데 보안수사대까지 나서면서 결국 '민중총궐기 대회' 전반을 종북 프레임으로 몰고가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강하게 제기된다.
지난 17일 극우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올라온 한 게시글. 위 캡쳐 자료에 이어지는 내용. (자료=일간베스트저장소 캡쳐)
새정치민주연합 김정현 수석부대변인은 18일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대공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보안수사대가 이 사건에 나선 것 자체가 (민중총궐기 집회를) '종북몰이'로 악용할 의도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역시 논평을 통해 "방첩수사를 전문으로 하는 경찰 보안수사대가 이번 민중총궐기를 공안사건으로 엮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신뢰성도 없고 공신력도 없는 극우집단 '일베'의 지도까지 받고 있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자백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 '그림자 부서' 보안수사대는 어떤 곳?'경찰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에 관한 대통령령' 15조는 '경찰청 보안국은 북한이탈 주민관리 및 경호안전대책 업무, 간첩 등 보안사범에 대한 수사의 지도·조정, 보안관련 정보의 수집 및 분석, 간첩 등 중요 방첩수사에 관한 업무를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령 52조는 서울지방경찰청 보안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일명 '보안분실'로 불리는 보안수사대는 경찰청 보안국과 각 지방경찰청 보안부 산하에 필요에 따라 2-4개 대가 존재한다.
경찰청 보안수사대는 1948년 대간첩 수사를 목적으로 치안국 특수정보과 '중앙분실'로 발족했으며, 1976년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이름을 바꾼 뒤 1991년 경찰법이 제정되면서 보안수사대라는 이름으로 이어졌다.
1985년 김근태 전 상임고문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보안수사대 전신) 515호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에 의해 22일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하고 결국 2011년 고문후유증으로 사망했다.
1987년 1월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중이던 박종철도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다가 숨졌다. 당시 경찰은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다 부검의(剖檢醫) 폭로로 진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 2012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 백재현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청 보안수사 1, 2, 3대는 홍제동 분실(서대문구 홍제동), 서울청 보안수사1대는 종로구와 동대문구, 양천구, 서대문구 등에 산재돼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보안수사대는 여러군데 있지만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각 지방청 보안수사대는 팀별로 적게는 10명 내외에서 많게는 20명까지 구성되며 전체적인 규모와 예산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일반 편성 예산과 별도로 국정원에 배정된 특수활동비를 사용하며 각종 첩보수집, 공안사범 수사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지난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서울지방경찰청에게 권고한 결정문 일부(자료=국가인권위원회 제공)
특히 보안수사대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나 간첩 활동 혐의자 등을 수사할 때 일선 경찰서가 아닌 일반 주택 등으로 위장한 사무실에서 수사를 진행해 인권침해 논란을 끊임없이 야기했다.
당시 백재현 의원은 "어디에 위치한지도 모르고, 은밀하게 이뤄지는 비공개 보안수사로 인권침해와 위법수사 유혹이 항상 존재한다"며 "명패도 간판도 없는 보안분실에 끌려가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는 피의자는 그 자체로 커다란 심리적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