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불허의 행보와 막말을 일삼아온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이번에는 유력 방송사의 대선후보 토론을 거부하고 나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는 28일(현지시간) 아이오와에서 열리는 폭스뉴스 주최 제7차 공화당 TV토론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혔다.
트럼프의 불참 이유는 토론 공동 진행자인 여성 앵커 메긴 켈리의 ‘편파성’이다. 켈리는 지난 8월 1차 토론 때 트럼프의 과거 여성 비하 발언을 꼬집으며 “여성을 뚱뚱한 돼지, 개, 역겨운 동물로 불러왔다”면서 “그런 자질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느냐”며 직격탄을 날렸다. 켈리는 다른 후보들에게도 송곳 질문을 던져 토론회 최종 승리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토론회 이후 켈리에게 성적 비하 발언을 퍼붓는 듯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번에도 “켈리는 편향적”이라며 불참의 이유가 켈리에게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이에 따라 대선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를 나흘 앞두고 열리는 공화당 후보 토론은 선두 주자가 불참한 가운데 치러지게 됐다.
트럼프는 대신 같은 시간 불과 몇 블록 떨어진 드레이크 대학에서 참전 용사 후원 행사를 열 계획이다. 트럼프측은 다른 방송사들을 행사에 모두 초청해 생중계 하도록 할 것이라며 폭스뉴스에 맞불을 놨다. 트럼프는 이에 앞서 “나 없이 토론회 시청률이 얼마나 나오는지 보자”고도 했다.
미국 정치권은 트럼프의 전례 없는 토론 보이콧이 앞으로 지지율 등 판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토론회 불참이 트럼프의 대선 가도에 결정적 실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뛰어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우선 고공행진 중인 트럼프의 지지율에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좀 더 우세하다. 트럼프는 압도적으로 전국적 지지율 1위를 내달리고 있지만 유독 아이오와에서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과 선두자리를 놓고 접전을 벌이는 상황이다. 따라서 크루즈를 포함한 다른 후보들은 트럼프의 부재를 활용해 저마다 모멘텀 만들기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크루즈의 경우 토론에 강하고 무대 연출력도 뛰어나다. 미국 언론들은 크루즈가 무대에 없어 방어 조차 할 수 없는 트럼프를 시종일관 밀어붙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낙태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트럼프의 오락가락 입장이 도마 위에 오를 것이고 트럼프의 옹졸함도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섰던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누군가가 치고 올라올 수 있는 진공상태가 만들어졌다”면서 “트럼프는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유권자들의 마음은 아주 빠르게 변한다”고 덧붙였다.
공화당의 선거 전략가인 스튜어트 스티븐슨은 “미국인들은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 사람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면서 토론 불참으로 트럼프에게 불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반해 토론 불참은 전략적인 선택이라는 분석도 있다. 압도적 지지율 1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구태여 언론 검증과 경쟁자들의 공격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선거 참모들이 지난 8월 폭스뉴스 토론회 이후 이번 토론회 대신 새로운 대안을 마련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토론 불참을 선언하면서 공화당내 전선은 트럼프와 다른 후보들에서 트럼프와 언론간의 싸움으로 변화하는 양상이다. 이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트럼프다. 트럼프는 토론에 참석하지 않지만 오히려 더 부각되고 있다.
방송인이자 보수 논객인 러시 림보는 “아주 절묘한 선택”이라며 “트럼프는 토론 불참을 통해 토론회 자체를 장악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 이미지 전문가인 프레드 데이비스는 “일반적인 통념에서는 토론 불참은 독이 될 수 있지만 언제 트럼프에게 일반적인 통념이 적용된 적 있느냐”고 말했다.
토론 불참이라는 트럼프의 또 다른 기행이 그의 대선 행보에 결정적인 독이 될지, 아니면 오히려 대세론을 굳히는 계기가 될지는 다음달 1일 아이오와 코커스를 통해 드러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