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열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받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홍준표(62) 경남도지사가 '망자와의 진실게임'에서 졌다. 8일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수수한 혐의가 인정돼 실형을 선고 받으면서다.
'성완종 리스트'는 지난해 4월 10일 '자원외교 비리'로 수사를 받던 성 회장이 경남기업의 비자금이 드러나자 압박감에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촉발됐다.
숨진 그의 주머니에서는 '김기춘·허태열·홍준표·홍문종·이병기·부산시장·이완구·유정복' 등 여권 최고 실세 8명의 이름이 적힌 메모지가 발견됐다.
성 전 회장은 전날 경향신문과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에게 돈을 건넸다"고 밝혔고, 이같은 언론 보도에 정치권과 법조계는 발칵 뒤집혔다.
대검찰청은 곧바로 '성완종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을 꾸려 수사에 착수했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검찰은 김 전 비서실장 등을 서면으로만 조사한 뒤 '혐의 없음' 또는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
다만, 검찰은 성 전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받은 혐의로 홍 지사를,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이완구(66) 전 국무총리를 각각 재판에 넘겼다.
서울 종로구 북한산 형제봉매표소 인근 산자락에서 숨진채 발견된 성 전 회장의 시신을 수습하는 모습. (사진=자료사진)
수사 초반부터 홍 지사는 '망자와의 진실게임'이라며 "고인이 앙심을 품고 자살하면서 남긴 메모 쪼가리 하나가 올무가 돼서 나를 옥죄고 있다"고 억울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1년 4개월여 만에 문제의 '메모 쪼가리'가 진실쪽에 더 가까운 것으로 판명됐다. 홍 지사와 이 전 총리의 담당 재판부가 모두 성 전 회장의 진술이 믿을 만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법정에서 한 진술만 증거로 인정되지만,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라도 신빙성이 입증되면 증거로 채택된다.
홍 지사의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현용선 부장판사)는 성 전 회장의 생전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지난해 3월 성 전 회장이 경남기업 재무담당자 등과 대책 회의를 하면서 전달자로 지목된 '윤승모(전 경남기업 부사장)한테 1억원을 줬는데 2011년에 줬다'고 말한 점, 같은 해 4월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같은 진술을 한 점이 일관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성 전 회장이 같은 해 4월 윤씨가 입원해있던 병원을 찾아가 '금품 교부 시점이 한나라당 당대표 경선 직전인 2011년 6월'이라고 말한 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같은 진술을 한 점 등을 유죄를 입증할 핵심 증거로 들었다.
앞서 지난 1월 이 전 총리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장준현 부장판사)도 성 전 회장의 마지막 인터뷰 내용과 '성완종 리스트'의 증거 능력을 인정했다.
결국 고인이 남기고 간 리스트가 살아있는 두 권력을 징벌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지만, 정작 리스트에 등장했던 나머지 6명은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지도 못한 채 검찰 수사 단계에서 자체 종결됐다는 점에서 미완의 수사였다는 꼬리표가 붙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