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앞두고 경기도 수원시의 한 전통시장을 시민들이 찾고 있는 모습. (사진= 구민주 기자)
설 명절을 앞둔 25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의 미나리광시장.
매섭게 부는 바람과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전통시장에서 설 명절 준비를 위한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명절 대목을 노리는 시장 내 전집에서도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쉼 없이 부침개와 전을 부쳐내고 있었다.
노릇하게 익힌 부침개와 전은 보기 좋게 진열돼 눈길을 끌었지만 어쩐 일인지 이를 사가는 손님은 뜸했다.
◇ 엎친데 덮친격…한숨 가득한 상인들오후 4시가 다 된 시간. 지난해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칠 정도로 전을 팔지 못했다는 상인 이모(70)씨의 입에선 한숨이 새어나왔다.
더욱이 AI 여파로 수급이 어려워져 가격이 치솟은 계란 때문에 전 값도 kg 당 1만5000원에서 2만원으로 올린 상황.
이 씨는 "전 장사는 명절 전 3일 동안 하는건데 평일보다도 장사가 안된다"며 "준비해 놓은거라 어쩔 수 없이 전을 부치고 있지만, 경기가 어려워 그런지 팔리지도 않을뿐더러 물어보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보다 사과 가격을 7천원 가량 낮춘 과일가게도 상황은 마찬가지.
지동시장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과일가게에는 설 대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과, 배, 한라봉 등 선물용 과일박스가 쌓여 있었다.
과일장사만 25년을 했다는 상인 허모(63)씨는 "올해가 가장 어렵다"며 하소연했다.
4~5년 전만 해도 평일에만 100만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지금은 명절을 앞두고도 매출이 3분의 1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허 씨는 "가격을 인하했는데도 장사가 안된다"면서 "명절이라고 물건을 많이 갖다놨지만 사가는 사람이 없어 매일 공과금 내기도 빠듯한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2~3명씩 꾸준히 손님의 발길이 이어지는 축산물 판매점들도 "예전엔 명절 앞두고 줄을 서서 고기를 사갈 정도로 시장이 북적거렸다"며 "국거리, 적거리도 많이 나가지 않으니 대목이라 할 수도 없다"고 손사래 쳤다.
전통시장 상인이 부침개와 전 등을 부치고 있다. 상인들은 경기불황 등으로 설 대목이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 구민주 기자)
◇"필요한 만큼만…" 물가 올라 부담스러운 서민
전통시장을 찾은 시민들도 경기 불황에 주머니를 선뜻 열기가 쉽지 않다.
시민들은 최대한 저렴한 재료를 찾거나, 명절 준비에 필요한 소량의 음식만 구매했다.
시민 김모(53)씨는 "전에는 제사용품 중 과일을 사더라도 박스로 샀었는데, 지금은 물가가 많이 오르다보니 제사상에 올릴 만큼만 사게 된다"며 "매년 시장에서 명절 준비를 하지만 올해는 사람이 많이 줄어 상인들이 더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 서모(48)씨는 "경기가 안좋다고 하지만 이렇게 안좋을 줄 몰랐다. 물가가 너무 올랐다"며 "생선, 채소, 계란 모두 비싸 조금씩만 샀다"고 설명했다.
명절 특수가 사라진 전통시장. 상인은 물론 시민들까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명절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