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달 31일 부산 해운대구 좌동재래시장에서 상인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이정주 기자) 홍준표
“내는 원래 한국당 좋아했어요. 근데 막말하고 문재인이가 뭐만 하믄 빨갱이로 몰고, 대표란 사람이 저래가 되겠어요?”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 사거리 유세를 마치고 황급히 자리를 뜬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를 향해 김모(76) 씨는 일갈했다. 김씨는 한국당에 대해 “지금 여기(유세장)에는 빨간 옷밖에 안보이니까 아직도 마이(많이) 밀어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대표가) 막말하다 보니 절단났다”며 “6석 안나오면 옷 벗겠다고 했으니까 함 보입시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대표는 6‧13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31일 격전지인 부산을 찾았다. 부산은 한때 대구와 경북에 이어 보수정당의 우세지역으로 꼽혔지만, 이번 선거를 앞두곤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유세차량 인근에는 출마 후보자들과 선거운동원들 외엔 일반 시민들은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싸늘했다.
◇ 예전 같지 않은 분위기...보수에 싸늘한 반응
전통적으로 보수당의 우세 지역으로 꼽히는 부산에서 한국당은 전신인 민주자유당과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에서 단 한번도 광역단체장 자리를 뺏기지 않은 전력을 갖고 있다. 지난 1995년 1회 지방선거에서부터 지난 2014년 6회 때까지 모두 보수정당이 부산시장을 가져갔다.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민주당 소속으로 부산시장에 도전했던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대권 가도를 열어준 곳이 부산이기도 하다. 부산을 정치적 고향으로 삼고 있는 문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불어온 민주당 바람이 지방선거에도 그치지 않고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은 부산에서 38.71%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홍 대표(31.98%)를 따돌렸다. 홍 대표도 이를 감지한 듯 여풍(與風) 차단을 위해 유세 첫날부터 부산을 찾았다.
홍 대표는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 사거리와 해운대구 좌동재래시장 유세현장에서 “부울경(부산·울산·경남)만 민주당이 차지하면 지역주의 정치가 타파된다고 한다”며 “그런데 호남에 가보면 거기는 민주당 지지율이 93%다. 영남지역이 우리 당을 지지하면 지역주의가 되는 것이냐”며 지역주의 공세에 반박하면서 기존 보수층의 집결을 꾀했다.
또 “지난 1년간 살림살이 나아졌냐”며 “2번을 찍으면 장사가 두 배로 잘될 것”이라며 당이 선거 전략으로 전면에 내세운 민생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이같은 홍 대표의 호소에 돌아온 건 싸늘한 민심이었다. 대체로 보수성향이 강한 고연령층에서도 반감을 표시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좌동시장에서 야채가게를 운영 중인 이모(60) 씨는 “솔직히 부산 분위기가 옛날 같지 않다”며 “홍 대표가 막말을 하니까 당 이미지도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같은 시장 내 빵집 주인 김모(42) 씨는 “표를 얻으려면 좀 보고 싶은 사람이 와야 관심이라도 갖지 않겠냐”며 “홍 대표는 여기 온다고 해도 별로 안보고 싶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홍 대표와 한국당이 보여주는 모습에 실망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내심 아쉬움을 표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시장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홍모(57) 씨는 “마 지금 한국당이 좀 잘못하는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짝사랑’ 같은 마음이 남아있다”며 “지방선거에서 잘 밀어주고 하면 잘못한 거를 고치지 않겠나”라고 토로했다.
◇ 후보들 사이 ‘洪 경계령’…“오면 표 떨어진다”
부산 지역에서 한국당 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들 사이에선 때 아닌 ‘홍준표 경계령’이 회자되고 있었다. ‘막말’과 ‘색깔론’ 등 구시대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홍 대표의 유세가 오히려 선거에 방해가 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날 홍 대표가 방문한 책방골목 사거리 유세 현장에 한국당 서병수 부산시장 후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현장 유세를 시작하기 직전에 홍 대표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서병수 시장은 다른 데 간 모양이죠?"라고 묻기도 했다.
서 후보는 이날 홍 대표의 동선과 유세 일정과 엇갈리게 잡아 사상구 인근에서 별도로 선거운동을 했다. 이같은 현상에 비춰볼 때 서 후보가 홍 대표의 지원 유세를 의도적으로 피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방선거와 총선 등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출마 후보자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를 받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중앙당에 요청을 하는 게 통상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막말’ 이미지로 점철된 홍 대표의 방문이 오히려 도움이 안된다는 기류가 확산되면서 후보자들이 중앙당의 지원을 거절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당내 한 영남권 관계자는 “홍 대표가 선거 현장에 오는 게 긍정적인 요소가 없다”며 “바닥 민심이 그렇게 형성되다 보니 차라리 후보자가 직접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명함을 돌리며 인사를 하는 전략을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 대표가 부산을 방문하면서 인근 지역인 경남을 들르지 않는 점도 ‘홍준표 경계령’ 영향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김태호 경남지사 후보는 중앙당에 지원을 요청하지 않고 홀로 선거 운동을 진행 중이다.
창원시장 공천을 두고 홍 대표와 안상수 시장이 갈등을 빚은 것도 경남 지역 방문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홍 대표의 측근으로 창원시장 후보로 낙점된 조진래 후보와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안 시장 사이에 후보 단일화 논의가 진행되는 와중에 홍 대표의 방문이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