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서울 논현동 파티오나인에서 열린 tvN 토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배우 변요한(왼쪽부터)·이병헌·김태리·김민정·유연석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올해 안방극장 최대 화제작으로 꼽혀 온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제작발표회가 열린 26일 오후 서울 논현동 행사장 1층에서는 1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시위에 나선 이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한빛센터) 탁종렬 소장으로, 그가 든 손팻말에는 "tvN '미스터 션샤인' 참여해 주세요! 노동인권이 있는 드라마 현장"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드라마를 보고 싶습니다" "'원래'라는 건 없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번 1인 시위는 한빛센터에서 진행 중인 '조인! 드라마 세이프!'(Join! Drama Safe!) 캠페인의 하나다. 인권이 있는 드라마를 위해서는 방송사와 제작사는 물론 감독·작가·배우·스태프·시청자 등 드라마 관련 주체들이 참여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행동이다.
탁 소장은 이날 CBS노컷뉴스에 "열악한 드라마 제작 현장 문제를 단순히 방송사나 제작사만의 잘못으로 미루기에는 여러 모로 한계가 있더라"며 "현장에 있는 감독, 작가, 그리고 주연급 배우들이 스태프들 인권 신장에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제보 받은 문제에 대해 방송사 등의 협조로 일부 개선이 됐다가도 금새 원래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잦았다. 이유를 따져보니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감독, 작가 등이 중요한 구조적 변수로 작용하더라. 시민들에게 드라마를 알리는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연출자, 배우들에게 호소하자는 의미에서 캠페인을 시작했다."
앞서 한빛센터는 지난 21일 MBC 일일드라마 '비밀과 거짓말'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이 캠페인을 진행하려 했으나 MBC 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MBC가 공영방송으로서 인권이 있는 드라마 제작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는 것이 한빛센터 측의 당부다.
탁 소장은 "그 이전에 MBC 드라마 '검법남녀'의 장시간 촬영 문제와 관련해 MBC 측과 협의하는 과정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각 협의할 수 있는 소통창구를 드라마국으로 하자'는 논의와 함께 이 캠페인 이야기도 나눴다. 그런데 제작발표회 당일 현장에서는 끌려 나왔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취지를 설명하고 '드라마국과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으니 연락해 보라'고 했는데도 MBC 실무자들은 '남의 잔치에 와서 뭐하는 짓이냐' '업무방해'라며 경비에게 들어내라고 하고 경찰까지 불러 결국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후 MBC 측으로부터 '간부진에서는 캠페인하는 것을 알고 협조하려 했는데, 실무자들과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라는 해명을 들었다"고 말했다.
◇ "이미 조명·소품 분야 젊은 인력은 새로 들어오지 않는 분위기"
'미스터 션샤인'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탁종렬 소장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한빛센터 제공)
탁 소장은 "최근 드라마 제작 상황에 변화가 있기는 하다"며 "'화유기' 사태 이후 일부 제작 현장에 산업안전기사가 배치되고, 대본 표지에 성폭력·언어폭력 예방 내규가 들어가고, 제작기간을 늘릴 수 있도록 편성 확정을 앞당기는 등 방송사·제작사의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여기에는 한빛센터 제보에 대한 (방송사·제작사의) 긴장감도 작용한다고 들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캠페인은 제보에만 의존하지 않고 사전 예방 차원에서 벌이는 일이다. 특히 최근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안판석 감독 사례에서도 봤듯이, 연출자가 스태프 인권을 얼마나 인지하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쪽대본이 발생하지 않도록 작가들이 미리미리 협조하면 촬영 스케줄도 여유롭게 진행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이번에 1인 시위를 벌인 '미스터 션샤인' 제작 현장과 관련한 정보 역시 꾸준히 모으고 있다는 것이 탁 소장의 이야기다.
"대본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다더라. CJ E&M 측과도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지난번 '나의 아저씨' 경우도 지난해 12월부터 50% 정도 사전 제작을 진행했는데, 중간에 성추문에 휩싸인 배우 하차로 재촬영 등 변수가 생기면서 촬영 스케줄이 빡빡해진 것으로 안다. 당시 결방을 하면서 촬영 회차를 여유있게 보장하겠다는 것이 CJ E&M의 결정이었다."
그는 "CJ E&M 측은 문제를 제기했을 때 바로 인정하고 여러 개선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고 이한빛 PD 죽음 이후 약속했던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노력하는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전했다.
"방송사·제작사에서 노력하더라도 현장에서 당장 개선되지 못하는 데는 앞서 말했듯이 감독·작가의 역할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주연 배우들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작가와 주연급 배우들 몫이 제작비의 7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만큼 더 많은 책임이 부여되는 셈이다. 스태프들 인권은 남의 문제가 아니다. 주연급 배우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특히 탁 소장은 "한국 드라마 제작 현장의 인권 문제는 결과적으로 드라마 산업 발전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며 "지금과 같은 열악한 스태프 인권 환경이 계속 이어진다면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고 경고했다.
"이미 조명·소품 쪽으로는 젊은 인력들이 새로 들어오지 않는다더라. KBS 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의 경우 소품팀 5명 가운데 4명이 너무 힘들어서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이로 인해 기존에 쓰던 소품들이 어디 있는지 몰라 제작에도 차질을 빚은 것으로 안다. 지금처럼 드라마 제작 현장 인권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산업 발전에도 치명적인 한계를 그을 수밖에 없다. 연출자들이 인권 문제를 산업 문제로도 접근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