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현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모두 6명이 숨진 '용산 참사'가 10주기를 앞두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그날 이후 뿔뿔이 흩어진 세입자의 현실을 조명하고, 곳곳에서 반복되는 강제철거의 실태를 되짚는 연속기획을 마련했다.[편집자 주]
지난 2009년 1월 20일 철거민들의 점거농성이 벌어진 서울 용산구 한강로 남일당 건물에 경찰특공대가 오르는 모습(노컷뉴스 자료사진)
10년 전 용산에서 뼈아픈 희생을 겪었지만, 한쪽에서 끌어내고 반대쪽에서 버티는 '강제철거' 충돌은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 "용역깡패들이 무차별 폭행"2016년 4월 26일 새벽 철거 용역업체 직원 300여명은 서울 노원구 인덕마을 한 상가 건물로 몰려들었다. 1층 출입문을 부수고 내부로 들어간 이들은 자신들을 막고 선 주민 30여명과 부딪쳤다.
전국철거민협의회 등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주민 24명이 다쳤다고 한다. 코뼈·치아·골반이 부러지는 건 예삿일이고 뇌진탕이나 척추손상이 발생한 경우도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인덕마을 대책위원장을 맡은 철거민 김진욱씨는 "용역깡패들은 소화기와 쇠파이프로 무차별 폭행했다"며 "피투성이로 끌려 나온 주민들은 바닥에 쓰러졌고 본인도 앞니 3개와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했다.
강제퇴거 직후 폐허가 된 서울 종로구 서촌 궁중족발 외관(자료사진=김광일 기자)
지난해 11월 20일에는 '588'로 불리는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에서 충돌이 있었다. 철거 용역 200여명은 해머로 담장을 부순 뒤 주민들 쪽으로 소화기를 쐈다고 한다.
이 지역 철거민 백채현씨는 "이날 외에도 조폭들이 6~7명씩 몰려와 집 앞에 평상을 펼쳐놓고 위협했다"며 "집창촌 개발지에 사는 사람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했다.
임차상인들도 마찬가지다. 2016년에는 가수 리쌍 소유로 화제가 됐던 강남 곱창가게 '우장창창'에서, 지난해에는 종로 서촌 족발집 '궁중족발'에서 충돌은 반복됐다. 노량진 수산시장도 철거 갈등의 현장이다.
◇ 참사 후 강제퇴거 금지법 발의됐지만갈등의 배경으로는 개발사업에서 세입자 등 원주민의 재정착과 생계가,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점이 꼽힌다.
한국도시연구소 이원호 책임연구원은 "현재 어느 법을 봐도 원주민 재정착 대책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며 "세입자는 물론이고 집주인도 표준공시지가에 의한 감정평가대로 보상을 받다 보니 시세 차이가 많이 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용산참사 10주기,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 에 참석한 용산참사 유가족 전재숙 씨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황진환기자
이처럼 대책 없이 쫓아내는 걸 막고, 허가 전 인권영향평가를 시행하도록 하는 이른바 '강제퇴거 금지법'은 용산참사 이후 지난 18대 국회에서부터 꾸준히 발의돼 왔다.
하지만 18·19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함께 폐기됐고, 20대에서도 민주평화당 대표를 맡고 있는 정동영 의원이 발의했지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는 실정이다.
정 의원은 15일 국회 토론회에 나와 "촛불시민이 정권을 교체했지만 공무원은 그 공무원"이라며 "집권여당이 '사람이 먼저다'라고 했다면 정책적 걸림돌을 치우는 데 앞줄에 서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함께 자리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그런 법안이 왜 논의가 제대로 안 됐는지에 대한 부끄러움이 솔직히 있다"며 "실질적 논의를 통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