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과 익산은 유기동물의 지옥이었다. 지난 2017년 겨울, 이 지역 유기동물보호센터에서 동물 사체가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그 민낯이 드러났다. 일부는 자루에 담겨 창고에 켜켜이 쌓여 있었고, 몇몇은 바닥에 버려진 채였다.
센터 운영자 A(56)씨의 소행이었다. 검찰 수사 결과 이 동물들은 사료는커녕 물조차 먹지 못하고 죽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동물복지법 위반 혐의로 약식 기소돼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최근 대규모 안락사 논란이 불거진 '케어 사태'보다 1년 앞서 벌어진 사건이다.
후원자 750명이 가입한 SNS 계정을 소개하며 웃는 임종현 익산시 유기동물보호센터 소장. (사진=김민성 기자)
◇ '안락사 0마리' 익산의 이유 있는 기적…"수백명 지원군 덕에 든든해요"이후 익산지역 유기동물을 거둔 건 임종현(60·익산시 유기동물보호센터) 소장이다. 동물들이 죽어간 그해 겨울은 임 소장이 30여 년간 몸 바친 의류업을 뒤로하고 반려견과 전원생활을 시작한 때였다. 휴식은 짧았다. 평소 알고 지내던 유소윤(55) 동물보호활동가의 부탁으로 유기견 몇 마리를 잠깐 맡았던 그는 숙고 끝에 익산시와 센터 위탁운영 계약까지 맺었다.
"새벽부터 깨서 아이들 밥 주고 똥 치우다 밤 10시쯤 돼야 하루가 끝납니다. 겨울엔 더 바빠요. 애들 물이 얼어서 계속 새것으로 갈아줘야 하니까요. 점심도 못 먹었는데 벌써 오후 2시 반이네요. 유기견 신고 들어와서 이따 또 낭산(면)에 가야 하고. 보통 일이 아니에요, 이게."
지난달 30일 만난 임 소장은 일에 쫓겨 숨 돌릴 시간도 없어 보였다. 이날 아침 대형견 둘과 고양이 하나를 구조한 그는 새 캔넬(견사)의 잠금장치를 서툰 솜씨로 용접하고 있었다. 기자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려던 그때, 입양자가 찾아와 센터 문을 두드렸다. 임 소장이 두 아이를 보내고 돌아서니 이번엔 한 캔넬 안에서 '깨갱' 소리와 함께 실랑이가 벌어졌다.
"지금 익산센터에 250마리 정도 있어요. 아이들이 하루에 먹는 사료량이 20㎏짜리 포대 5개입니다. 한 달이면 400만 원어치가 넘어요. 아이들 예방접종이나 일 도와주시는 분 월급, 차량 연료비 같은 기본 운영비만 월 1천만 원 가까이 부서진다고 보면 됩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조사를 기반으로 유기동물 통계를 제공하는 '포인핸드'와 익산시에 따르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지난해 익산센터에서 안락사당한 유기동물 수는, 0마리다. 입양률은 60%(675마리)를 상회하는 반면 자연사 비율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이유 있는 기적'이다.
익산시 유기동물보호센터 SNS에 모여 소통하는 반려인들. (사진=#익산보호소 SNS 캡처)
아픈 유기견이 구조되면 상태가 어떻든 그냥 자연사 처리하는 법이 없다. 수술비와 약값으로 억을 썼고, 그중 수천이 빚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걱정이 덜한 건 임 소장의 우군, 유 활동가가 이끄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후원자 군단 덕분이다.
(유소윤 활동가) "센터에서 반려동물을 입양한 모두가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750명 가까운 이들이 주기적으로 소식을 공유해요. 떠난 아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자연스럽게 모니터링되는 거죠. 그분들이 주시는 꾸준한 관심과 사랑이 가장 큰 도움입니다. 후원금은 1원 단위까지 깨끗하게 공개해요. 사람은요, 모든 게 진심이면 통해요. 이렇게 내 주위 사람부터 '애견 문화'가 아닌 '반려 문화'로 바꿔갈겁니다."
이정호 군산시 유기동물보호센터 소장이 센터 내 입양시설에서 유기견들을 보듬고 있다. (사진=김민성 기자)
◇ "살 기회를 줘야죠" 군산에선 민(民)-관(官) 양 날개로 유기동물 '훨훨'달리고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잔디밭, 그 위에 세워진 수영장 딸린 집. 호화 저택이 아니다. 이제는 유기동물보호센터가 된 군산의 한 반려동물 카페 이야기다. 이를 운영하던 이정호(47) 대표의 삶도 2017년 그해 겨울을 기점으로 달라졌다.
'잠깐만 맡아 주세요.'
군산시가 잠깐이라고 해서, 이 대표는 석 달이면 될 줄 알았다. 엉망이 된 유기동물보호시설이 새로 만들어지면 내 역할은 거기까지겠지.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그는 단 하루도 쉴 날이 없었고 이를 돕던 배우자도 수차례 병원 신세를 졌다. 사재 지출도 심각했다. 카페에서 쓰던 화물차 두 대를 정리했는데도 빚이 8천만 원 늘었다. '이런 걸 왜 하느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돌아왔다.
"맞아요. (군산시에) 안 하겠다고 했어요. 맡겼으면 제대로 하게 해줘야죠. 더 좋은 거 먹이고 더 자주 씻기고 해야 하는데 혼자 하기는 너무 어려웠어요. 한 달에 많게는 140마리씩 구조돼요. 지엠(GM) 군산공장 문 닫고 나서는 더 심했어요. 안락사요? 물론 편하고 쌉니다. 그런데 기회는 줘야죠. 수술해서 살 수 있다면 그게 정답이잖아요."
지난해 군산 센터에서 안락사한 유기동물은 모두 4마리다. 한 녀석은 시시때때로 발작증을 일으켰다. 점점 횟수는 잦아지고 시간은 길어졌다. 뼈가 휘는 고통을 버티려고 자기 다리를 물어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결국 센터와 동물보호단체 관계자, 복수의 수의사가 수차례 상의한 끝에 녀석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이 대표가 만든 일종의 '시스템'이었다.
유기동물을 안고 활짝 웃는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 (사진=군산시 유기동물보호센터 제공)
이 대표는 이 시스템에 동물보호단체가 들어와 쭉 함께하기를 바랐다. 센터의 모든 정보를 단체에 공개하고, 부족한 점을 지적받았다. 그러자 오히려 속속들이 사정을 알게 된 단체들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동물보호단체와 센터는 이제 구조·치료·입양 등 모든 과정을 함께한다.
이 대표의 진심에 결국 군산시도 움직였다. 시는 올해 농업축산과에 동물복지팀을 새로 만들고 관련 예산을 대폭 늘렸다. 치료비는 물론 유기동물보호센터 내 직원들의 임금, 유기동물을 입양한 반려인에게 지급되는 지원금까지 크게 증가했다. 시와 보호센터, 동물보호단체가 다른 의미의 '삼각관계'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