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개봉한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 신하균과 이광수가 각각 세하, 동구 역을 맡았다. (사진=명필름, 조이래빗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누구든 태어났으면 끝까지 살아갈 책임이 있는 거야."
목 아래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어 집안의 골칫덩이로 전락한 세하(신하균 분)와 어린이날 수영장에서 엄마를 기다리다가 결국 만나지 못한 동구(이광수 분). 두 사람이 만나고 오랫동안 머무르게 되는 곳 이름은 '책임의 집'이다.
지난 1일 개봉한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감독 육상효)는 '책임의 집' 박신부(권해효 분)의 대사로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을 초반부터 숨김없이 들려준다. 하지만 영화는, 고단하더라도 삶을 이어가야 한다고 정색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고유한 특별함과, 보편적인 존엄함 모두를 상기시키면서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세하와 동구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다. 다른 점이 훨씬 많다. 세하는 얼굴 말고는 몸을 움직이지 못해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이고, 동구는 키도 크고 체격도 좋지만 5살 수준의 지능을 가진 지적장애인이다.
세하가 실제로 뛰어난 두뇌를 가져서 무언가를 시키는 데 익숙하고 할 말을 참지 않는다면, 동구는 그렇지 않다. 몸을 못 움직이는 형을 위해 휠체어 끌기는 기본이고 세세한 것까지 모두 챙기는 동구는 세하 말에 순응한다. 대부분 세하 뜻대로 하지만, 그런 동구도 적극적으로 하자고 주장하는 게 있다. 어릴 적부터 좋아한 수영이다.
단지 같은 시설에 산다는 것만으로 두 사람이 이렇게 가까워진 건 아니다. 어릴 적 물에 빠진 세하를 동구가 구하면서 여느 가족보다 각별한 사이가 된 것이다.
박신부가 세상을 떠나면서 책임의 집의 정상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두 사람은 이별의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세하는 손놓고 바라보지만은 않는다. 봉사시간을 발급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활용해 봉사활동 보고서 작성 아르바이트 등을 진행한다.
봉사활동 스펙이 필요한 해외대 출신 지원자에게 번역 아르바이트를 맡기는가 하면, 정해진 시각에 늦었다며 두 사람을 받아주지 않는 공무원 앞에서 넘어진 듯 상황을 꾸며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데도 여념이 없다.
이를 주도하는 세하는 별로 죄책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동구는 조금 눈치를 보긴 하지만, 어쨌거나 세하의 뜻대로 할 수 있게 돕는다.
'나의 특별한 형제'는 이렇게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장애인 캐릭터를 관객 앞에 내놓는다. 장애인-비장애인 조력자 관계가 아니라 장애인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두는 것을 넘어, 문제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영화 속 장애인은 신체적·정신적 능력이 부족하긴 하지만 심성만은 곱고 맑아, 모든 욕망이 거세된 것처럼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정신질환을 앓는 설정의 캐릭터는 종종 범죄자나 용의자로 등장했다.
극중 세하는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위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봉사활동 시간을 받고 싶어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아르바이트를 진행해 돈을 벌고, 동구의 수영대회 출전을 이유로 후원 계좌를 홍보하기도 한다. 왼쪽부터 미현 역의 이솜, 세하 역의 신하균, 동구 역의 이광수 (사진=명필름, 조이래빗 제공)
아주 착하거나, 아주 나쁘거나. 세하와 동구는 그 어떤 쪽도 아니다. 세하는 말을 '곱게' 하지도 않고, 필요하다면 위법과 비도덕의 영역에 있는 일도 한다. 동구 또한 '천사'가 아니다. 수영을 하다가 멈춰 세하를 속 터지게 하기도 하고, 무언가 못마땅한 게 있으면 머리를 세차게 부딪치면서 불만을 표현한다.
"누구라도 우릴 무시하면 무시무시하게 대해주는 거야", "약하면 밟히기나 하지" 등의 대사는, 흔히 장애인에게 '기대되는' 모습을 배반한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의 세계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친절하고 호의적이어야 한다는 편견에서 멀리 비켜나 있다.
세하와 동구는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고 표출하고,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주어진 조건과 상황을 이용할 줄 안다. 각기 잘나고 못난 면 여러 개가 조합된 흔한 비장애인과 전혀 다를 바 없이.
'나의 특별한 형제'는 인류 중 '장애인'이라는 특별한 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장애'는 다채로운 모습을 가진 인간의 특성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표현한다. 덕분에 관객은 그 새삼스러운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다.
동구의 엄마 정순(길해연 분)이 나타나 친권을 주장하고 나서, 영화는 다른 주제도 함께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낳아준 부모여서 각종 법적 권한을 지닌 사람과,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며 한몸처럼 지낸 사람 중 어떤 사람을 '가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똑똑한' 세하는 안다. 피붙이라고 해서 가장 애틋하거나 서로 존중하는 관계는 아니라는 걸. 세하의 친척은 몸을 못 쓰는 세하를 구제불능 취급해 결국은 버렸고, '책임의 집'에 온 한 아이 가족은 그 아이의 모자람을 문제 삼아 폭력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똑똑하진 않지만' 동구도 안다. 밥 잘 먹고 학교 다니면서 매일 기다려도 엄마는 자신을 떠난 후 오랫동안 찾지 않았다는 걸. 세하와 자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것도 안다. "형아는 동구 없이는 아무 데도 못 가지?"라는 대사는 어쩌면 동구가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동구의 엄마가 동구를 대하는 자세를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하긴 어려울 수 있다. 다만 오래 떨어져 지낸 만큼 동구를 잘 알지 못하고, 동구를 오롯이 받아들이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이 정해 둔 방식에 적응시키려고 하기에, 적어도 그 '사랑'은 동구에게 '최선'은 아니었다.
'나의 특별한 형제'는 자꾸만 질문하게 만드는 영화다. 사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것을 감추고 숨겼던 것은 아닐까? 핏줄과 법적 위치가 사람간의 가장 결정적인 관계를 좌우하게 해도 되는 걸까? 장애 종류가 다른 사람은 서로 다른 곳에서 격리된 채 사는 게 맞을까? 장애인이 자립하는 것이 '대견한 일'이 아니라 '일상적인 일'이 되는 건 불가능할까?
이런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도, 가르치려는 태도는 없다. 그럼에도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은 무사히 도착한다. 약하기에 서로 도와야만 강해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하고 유쾌한 이야기를 풍부하게 담아낸 점도 눈에 띈다.
얄밉고 능청스러운 얼굴부터 수심이 가득한 얼굴까지, 신하균은 목 아래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설정을 뛰어난 연기력으로 돌파했다. 이광수는 정말 어린 아이 그 자체의 순수함과 귀여움, 거침없음을 아낌없이 보여줬다. 동구의 수영 코치로서 두 사람을 가까이에서 보는 비장애인 조력자 미현 역의 이솜 연기도 흠잡을 데 없다. 특히 이솜은 극중에서 관찰자로 위치함으로써, 관객의 이입을 돕는다.
1일 개봉, 상영시간 113분 37초, 12세 이상 관람가, 휴먼 코미디.
1일 개봉한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는 현재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사진=명필름, 조이래빗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