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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태평양 건너 여성혐오 쓰레기 된 힙합

    래퍼 블랙넛 (사진=블랙넛 인스타그램) 확대이미지

     

    블랙넛이라는 래퍼가 여성을 비하하는 랩 가사를 선보이면서 국내 힙합의 여성혐오·차별이 다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블랙넛은 지난 11일 발매된 래퍼 존오버의 신곡 '블레스유'에 참여해 "안 되면 때려서라도 내 걸로 만들래. 오늘 넌 내 여자 아님 반X신"이라는 가사를 붙였다. 명백하게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블랙넛의 여성혐오·차별적 랩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과 이같은 여성혐오·차별의 랩을 블랙넛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는 가볍지 않아 보인다.

    랩과 디제잉, 비보이, 그래피티 등을 주요 요소로 하는 힙합은 원래 1980년대 미국 뉴욕 빈민가에서 음악을 배울 기회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흑인들이 만들어낸 음악으로 알려져있다. 기존에 존재하는 흑인음악에 이미 발표된 여러 다른 장르의 음악을 부분적으로 오리고, 붙이고, 섞어서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 바로 힙합이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이 1989년에 발표한 영화 '똑바로 살아라'를 보면 흑인들이 큰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나 휴대용 턴테이블을 들고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음악을 듣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카세트테이프나 음반에 수록된 음악을 듣고 마음에 들거나 필요한 음원을 발췌한 뒤 섞어서 새로운 곡을 만들면 그것이 힙합이었다.

    그러니까 힙합이란 음악이론을 배우고, 값비싼 악기를 구입해 연습할 돈이 없었던 흑인들이 끼리끼리 모여 만들어낸 음악이었다. 빈민가 구석에서 조악한 장비로 만들어낸 이 새로운 음악이 20~30년 뒤 전 세계 젊은이들을 매혹하는 주류음악으로 등극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힙합에서는 랩으로 구사하는 가사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인종차별이나 경찰의 폭력 등 흑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차별과 불평등을 노래하는 랩이 등장하면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대개 이런 가사들은 머리 속에서 생각해 지어낸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직접 경험한 것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꽤 사실적이었다.

    이를테면 198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N.W.A나 가장 정치적인 힙합밴드로 꼽혔던 퍼블릭에너미 등의 곡이 그 예이다.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이라는 영화를 보면 이런 종류의 힙합이 어떻게 생성·진화했는지 생생하게 볼 수 있다.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미국 힙합에서도 여성 혐오나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는 가사는 늘 문제였다. 또 모든 힙합이 저항의 음악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약자에 대한 폭력이나 조롱을 표현하는 랩은 가급한 피한다는 공감대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여성을 혐오·비하하고 관객에게 막말을 퍼붓는 한국의 일부 랩퍼들은 이런 힙합의 역사와 정신을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흑인처럼 외모를 꾸미고, 피부를 태우고, 건들거리며 웅얼거린다고 모두 다 힙합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것처럼 못된 점만 따라하는 힙합은 태평양을 건너온 쓰레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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