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연합뉴스 제공)
미국의 일방적인 5배 인상 요구로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지만 우리 측은 명쾌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분담금 산정 구조와 집행 과정 등 각종 운영 관련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물론 예산 집행 전 최후의 보루인 국회조차 뾰족한 수가 상황이다.
◇깜깜이 운영에 미집행액만 2조…그럼에도 5배 인상 요구하는 美한미 방위비 분담금은 1991년 양국이 맺은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에 의해 결정되는, 한국 주둔 미군의 경비에 대한 한국측의 부담분을 의미한다.
주한미군지휘협정(SOFA)에 의해 미군의 경비는 시설이나 구역을 제외하고는 미국이 부담하도록 돼 있지만 예외를 둔 것이다.
현재 한미 방위비 분담금은 군사건설비, 주한미군 내 한국인 고용인 인건비, 군수지원비 등 3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군사건설비는 주한미군시설의 설계와 감리, 미군과 군속의 숙소, 각종 기지 환경시설 등에 대한 지원 비용을 포함한다. 고용인건비는 미군이 고용한 주한미군 내 한국인 근로자의 인건비 중 최대 75%를 한국이 부담하며, 군수지원비는 탄약 저장, 항공기 정비, 철도·차량 수송지원 등이 주된 내용이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이 '깜깜이'로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산정 방식이 사업별로 필요한 소요액을 합하는 '소요형'이 아니라 일정량의 액수를 정해놓고 이에 맞춰 사업을 결정하는 '총액형'이기 때문이다.
1991년 국회의 첫 비준동의 이후 올해 10차 협상까지 총 9차례 중 2005년 6차를 제외하고는 협상 때 마다 적게는 2.5%에서 많게는 25.7%를 기록했던 인상률의 근거가 뚜렷하지 않은 셈이다.
시행할 사업을 구체적으로 정해놓지 않은 채 과도하게 예산을 편성하다보니 불용률 또한 상당할 수밖에 없다.
매년 2000~3000억원의 미집행금이 발생한 탓에 누적액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2조원에 이르렀다. 심지어 미국은 이 돈을 운용해 3000억원이 넘는 이자수익까지 거뒀다.
깜깜이이다 보니 엉뚱한 곳에 사용된 경우도 있었다.
대안신당 천정배 의원은 지난 4월 국방부를 통해 지난 5년간 연평균 191억원, 총 954억원의 돈이 주한미군이 아닌 주일미군의 전투기와 헬기 정비에 사용된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미국은 전략자산의 전개와 주한미군의 순환배치·작전준비태세 등 국내 요인은 물론 호르무즈 해협 호위연합체 구성이나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등 국제 안보비용까지 함께 부담하자며 올해 분담금보다 무려 5배나 상승한 최대 50억달러를 우리 측에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역외에서 일어나는 군수비용에 대한 부담은 SOFA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일이다.
◇'따져보겠다'지만 뚜렷한 대안은 없어…"나중이 더 큰 문제될 수도"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 제3차 회의가 19일 파행 끝에 조기 종료된 가운데 정은보 한국 측 협상 수석대표(왼쪽)가 외교부 브리핑룸에서 정부 입장과 협상 상황 등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드하트 미국 측 수석대표.(사진=연합뉴스 제공)
우리 정부는 순식간에 5배나 불어난 미국 측의 분담금 요구에 대해 일단 꼼꼼하게 따져보겠다는 복안이다.
외교나 국방이 아니라 경제를 전문적으로 다뤄온, 기획재정부 차관보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정은보 전 부위원장을 협상 대표로 삼았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전체적인 협상의 틀을 미국 측과 맞대고 짜기 보다는 미국이 제시하는 비용의 근거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겠다는 인선인 셈이기 때문이다.
협상단 핵심 관계자는 "경제나 예산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고 협상의 공정과 합리성에서 역할을 맡은 것이 아니겠느냐"고 정 대표를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의 막무가내식 인상 요구에 대해 반박할 구체적인 전략의 윤곽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유보에도 불구하고 한미 동맹이 곤경에 처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나오고 있는 점도 대규모 분담금 인상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해야 하는 것은 정부로서도, SMA를 비준동의하고 예산안을 처리해야 할 국회로서도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그간 국회는 지난 10차례의 SMA 비준동의를 단 한 차례도 거부한 적이 없다.
미국의 분담금 산정 기준이 달라진 첫 해인 만큼 어느 정도의 인상폭은 감내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문제는 그 이후의 추가 인상에 대한 부담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미국이 우리 뿐 아니라 일본 등 다른 우방에 대해서도 동일한 근거를 들며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의 인상은 불가피해 보인다"며 "분담금이 대폭 상승하더라도 한 차례에 그칠 경우에는 문제가 없지만 차후 협상에서 이번과 유사하게 전에 없던 새로운 사유를 근거로 한 인상을 요구할 경우 부담이 증폭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