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 년 전 제주 4‧3 당시 군‧경에 의해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수장' 학살된 사람은 기록도 없을뿐더러 먼 타국 대마도까지 시신이 흘러가 여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제주CBS는 대마도 현지에서 '역사의 어둠 속에 묻힌' 그들을 추적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매장지와 화장터를 대마도 곳곳에서 찾아냈다. 28일은 네 번째 순서로 대마도 동쪽 고후나코시를 찾았다. [편집자 주]글 싣는 순서 |
① 생(生)의 기억조차 말살…제주 4·3 수장 학살의 비극 ② "손발 철사로 묶여…" 대마도로 흘러간 제주 4·3 희생자 ③ '시신 태우는 곳', 대마도에 남은 4·3 수장 희생자 흔적 ④ 4·3 수장 시신 흘러간 대마도, 지금은 제주 쓰레기가… (계속) |
대마도 동쪽 고후나코시 지역 4·3 희생자 매장지. (그래픽=김성기 PD)
대마도 동쪽 해안 마을 고후나코시와 사람이 살지 않는 구로시마 섬. 4‧3 수장(水葬) 학살이 이뤄지던 70여 년 전 해안가로 수십 구의 한국인 시신이 떠밀려왔다. 당시 주민이 시신을 묻은 자리에는 지금도 해류를 타고 제주에서 쓰레기가 떠내려오고 있다.
◇ "시체 썩는 냄새 진동"…시신 수십 구 흘러와 매장
일본 대마도 고후나코시 해안에 있는 4·3 수장 시신 매장지. 지난달 17일 취재진이 찾았을 때 파도에 떠밀려온 쓰레기가 많이 보였다. 현지인 나카시마 노보루(68)씨가 매장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상대마도와 하대마도, 2개의 큰 섬으로 이뤄진 대마도는 길이가 82㎞, 폭 18㎞ 섬이다. 원래 2개의 섬이었지만, 1990년대 중반 이 두 섬을 잇는 만관교(만제키바시)가 건설되면서 지금은 하나의 섬이 됐다.
만관교로부터 북쪽으로 4㎞가량 떨어진 곳에 고후나코시 마을이 있다. 이 마을 인근 해안에 70여 년 전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시신 수십 구가 떠밀려와 주민들이 매장했다.
지난 10월 17일 오후 취재진은 고후나코시 내 하타케우라에 사는 쓰이키 가즈미(88)씨를 만나 당시 상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쓰이키 씨는 10대였던 70여 년 전 마을 사람들이 시신을 해안 곳곳에 묻어준 뒤 스님을 안내하며 봉양을 도왔던 사람이다.
"이곳 주변 대부분이 굽어진 해안이다 보니 시신들이 굽이마다 흘러왔어요. 당시 마을 청년회에 있었는데 시신이 매장된 곳에 봉양하러 온 스님을 안내하며 다녔습니다. 많은 시신이 떠내려 왔기 때문에 스님이 코를 부여잡을 정도로 시신 썩는 냄새가 진동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후나코시 마을 주민 쓰이키 가즈미(88)씨. (사진=고상현 기자)
쓰이키 씨의 증언에 따르면 고후나코시 해안 내에는 모두 네 곳에 32구의 한국인 시신이 매장됐다. 현지인이 부르는 지명인 '이토리코지마'에 8구, '미난바카' 8구, '이케바타케' 8구, '쿠니사키' 8구다. 1㎞ 반경 안에 속한 네 곳은 육로는 없고 배를 타고 가야 한다.
특히 이곳 해안에 흘러온 시신 수는 32구보다 더 많을 수 있다. 그 당시 갑자기 워낙 많은 시신이 떠밀려왔던 터라 미처 수습하지 못한 시신도 있었기 때문이다. "해안가로 떠밀려온 시신은 수습했지만, 바다에 떠 있거나 발견하지 못한 건 수습하지 못했습니다."
◇ 희생자 묻은 자리에 제주서 떠내려온 쓰레기가…
대마도 동쪽 고후나코시 해안까지 떠밀려온 제주 쓰레기. 지난달 17일 취재진이 4·3 수장 학살 희생자 매장지 인근에서 발견했다. (사진=고상현 기자)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에서만 생산되는 '웰빙 유기농 제주비료', 지금은 생산하지 않는 '한라산 올래 소주', 그리고 '제주 삼다수 라벨'.
취재진이 이날 오후 쓰이키 씨의 증언을 들은 직후 한국인 시신이 매장된 '이케바타케' 해안 쓰레기더미에서 발견한 것들이다. 대마도 동쪽 해안까지 제주에서 버려진 쓰레기들이 대마난류를 타고 흘러온 것이다. 4‧3 당시 수장 학살 희생자도 이 해류를 타고 이곳에 떠밀려올 가능성이 큰 대목이다.
이날 자신의 어선(1t)에 취재진을 태워 이곳까지 안내한 고후나코시 어민 나카시마 노보루(68)씨도 "제주에서 북동 방향으로 향하는 해류의 영향으로 70년 전 제주도 해상에 버려진 시신들이 충분히 이곳에 흘러올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고후나코시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렸을 때 부모에게 70년 전 마을 해안에 많은 시신이 떠내려온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다. "시신 상태가 좋지 않아 운반하기 어려워서 시신이 떠밀려온 곳 바로 인근에 마을 사람들이 묻어줬다고 합니다."
지난달 16일 일본 대마도 고후나코시 마을에서 만난 나가세 아사코(81·여)씨. (사진=고상현 기자)
10월 16일 저녁 고후나코시 마을에서 만난 나가세 아사코(81‧여)씨도 "제가 어렸을 때 많은 시신이 떠밀려 와서 해변에 묻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무서운 얘기라 부모님께서 시신이 떠밀려온 곳에는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라고 증언했다.
◇ '무인섬' 구로시마에도 한국인 시신 떠밀려와
고후나코시 해안 동쪽으로 1㎞ 떨어진 구로시마 섬에도 4‧3 광풍이 몰아치던 70여 년 전 한국인 시신들이 흘러온 것으로 알려졌다. 구로시마 섬은 사람이 살지 않지만, 섬에서 북쪽으로 1㎞ 떨어진 가모이세 마을 주민들이 해안에 떠밀려온 시신을 수습해 모래사장에 매장했다.
전직 일본 니시니혼 신문 대마도 주재기자 오에 마사야쓰(70)씨. (사진=고상현 기자)
전직 일본 니시니혼 신문 대마도 주재기자 오에 마사야쓰(70)씨는 지난 10월 16일 낮 대마도 이즈하라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을 만나 이와 관련해 의미있는 증언을 했다. '4‧3 수장 학살 희생자 표착 시신에 대해 취재한 적이 있는지' 물은 직후였다.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건데 4‧3이나 한국전쟁이 벌어지던 시기에 구로시마 섬 북쪽 모래사장에 많은 한국인 시신이 흘러왔습니다. 당시 일본인이었다면 큰 뉴스가 났을 텐데 그런 뉴스는 없었습니다. 또 옷차림으로도 한국인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취재진은 10월 17일 오후 나카시마 씨의 배를 타고 구로시마 섬에 가려 했으나 파도가 높아 섬까지는 가지 못했다. 다만 섬과 500m 떨어진 해상에서 구로시마 섬을 봤을 때 해안으로 떠밀려온 쓰레기 더미가 눈에 띄었다.
구로시마 섬은 제주에서 떠내려온 쓰레기를 발견한 '이케바타케'로부터 1㎞ 근방에 있다. 이 때문에 70여 년 전 4‧3 수장 학살 희생자들이 구로시마 섬에도 떠밀려왔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구로시마 섬. 해안가로 파도에 떠밀려온 쓰레기가 보인다. (사진=고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