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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대필 사건 강기훈 "검찰, 우리의 피눈물 딛고 출세"

사회 일반

    유서대필 사건 강기훈 "검찰, 우리의 피눈물 딛고 출세"

    "눈 안감아도 선명"...1991년, 봄
    검찰 사과 받았지만, 오히려 모욕적
    손배소 제기했지만 검사, 감정인 '무죄'
    '괴물' 같은 검찰 안되도록 잘 싸우겠다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강기훈(유서 대필 조작사건 피해자)

    이제 올해도 나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제가 어떤 분을 좀 초대해 볼까. 어떤 분의 소회를 들어볼까 고민을 하다가 이분을 모시기로 결정했습니다. 방송 인터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분이에요. 바로 1991년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의 피해자 강기훈 씨입니다.

    이 사건은 이미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진상 조사를 다시 해서 2015년에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이 내려진 그런 사건이죠. 즉 강기훈은 유서 대필을 하지 않았다. 법원이 결론을 내린 사건입니다. 24년 만에 무죄 판결이었습니다. 이분 얼마나 속이 시원할까.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당사자인 강기훈 씨는 올 한 해가 가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십니다. 어떤 이야기인지 오늘 스튜디오로 직접 모셨어요. 강기훈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 강기훈> 안녕하세요.

    ◇ 김현정> 2012년부터 간암으로 투병 중이신 건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인데 우선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드리고요.

    ◆ 강기훈>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현정> 지금 건강은 괜찮으세요?

    ◆ 강기훈> 그런 얘기는 좀...

     


    ◇ 김현정> 그동안 방송 인터뷰를 많이 안 하신 건 왜 그러셨어요?

    ◆ 강기훈> 아니요. 별로 요청을 안 하셔서. 사실 이 사건에 대해서 관심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 김현정>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강기훈> 일반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서 이해를 하려면 굉장히 어렵고요.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탐구를 해야 돼요. 요즘 같은 세대에서는 복잡한 얘기 싫어하니까 당연히 관심에서 멀어지죠.

    ◇ 김현정> 아니, 제가 방송 전에 그 당시 그 사건을 모르는 젊은 세대도 많아서 그 부분도 얘기 나누죠 했더니 선생님께서 설명해도 잘 모를 겁니다, 너무 복잡해요 이러시더라고요. 복잡한 거 압니다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잠깐 그때로 돌아가겠습니다. 벌써 28년 전이네요. 1991년 5월.

    ◆ 강기훈> 그렇습니다.

    ◇ 김현정>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면서 이른바 분신 정국이 펼쳐집니다. 두 달 동안 13명이 정부에 반대하면서 반정부 투쟁을 하면서 분신을 합니다. 그 당시 지금도 눈 감으면 그 당시 장면들이 좀 선명하게 떠오르시죠?

    ◆ 강기훈> 눈 안 감아도 선명하고요.

    ◇ 김현정> 안 감아도. 어떤 장면 떠오르세요?

    ◆ 강기훈> 여러 장면이 있죠. 연세대에서 연세 철길에서 분신하고 떨어진 그 장면. 그 현장에 제가 있었거든요, 이정순 선생님. 그다음에 같이 일하던 동료가 아침에 분신하고 투신했다는 얘기를 듣고 뛰어가던 기억. 그다음에 연세대 앞길, 신촌 앞길에서 거의 100만이 가까운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던 강경대 씨의 장례식. 그 외에도 많습니다.

    ◇ 김현정> 그런 와중에 김기설 씨가 역시 유서를 쓰고 분신을 합니다. 그런데 검찰은 그 유서가 동료에 의해 조작이 됐다. 즉 유서를 누군가 대신 쓰고 김기설 씨가 분신하도록 방조 혹은 독려했다. 이렇게 몰고 간 거죠? 그런데 왜 하필, 왜 그때 그 대상으로 강기훈 선생님이 왜 지목이 됐을까요?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요.

    ◆ 강기훈> 저 아니면 누구 다른 사람을 엮었겠죠. 검찰이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인지 그때 당시는 몰랐어요. 요새는 참 그런 면에서는 설명하기 편합니다. 검찰, 검사들이 그런 일 했어 그러면 그렇지라고 이해를 하시더라고요. 그게 좀 달라진 점이랄까요. 요새는 그 이상도 못할까. 이런 게 상식이 되지 않았습니까?

    1991년 9월25일 강씨가 3차 공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김현정> 그런데 그 당시는 이상하셨겠어요. 왜 나한테 이럴까?

    ◆ 강기훈> 저는 처음에 오해라고 생각을 한 적도 있고요. 예를 들면 이 사람들이 혹시 권력의 압력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이런 걸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참 순진한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검찰은 이미 그때부터 권력의 일부였고요. 힘이 있는 사람 옆에 붙어서 미래의 자기가 힘을 갖기 위한 힘을 비축을 하는 과정으로서 이러한 시국 사건을 담당하는 것이 자기 앞길을 개척하는 데 굉장히 좋은 디딤돌이 되는 거죠. 그렇게 생각했다고 지금은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 김현정> 그렇죠. 나중에 다 드러나고 나서 보니까 이미 청와대로부터 수사 가이드라인이 검찰에 내려와 있었던 거예요. 저는 강기훈 선생의 혹시 필적이. 쭉 필적들을 보다가 진짜 좀 비슷한 사람을 찾아내다 보니까 강기훈이란 사람이 그 누명의 대상이 된 게 아닌가. 그 생각이 들던데.

    ◆ 강기훈> 저도 처음에는 오해라고 생각을 했다니까요. 오해가 아니고요. 만들어낸 겁니다.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집단이고요. 다만 그때는 설마 검사가 그랬겠어라는 이야기가 너무 상식화돼 있어서 다른 이유가 있는 거 아닐까? 라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는데, 오늘 오랜만에 그 질문을 앵커님께서 해 주시네요.

    ◇ 김현정> 그런데 필적 감정이라는 건 전문가는 틀릴 수가 없는 거잖아요. 우리는 눈으로 볼 때 좀 비슷한 거 아니야? 이럴 수 있겠지만 전문가는 틀릴 수가 없는 건데. 어떻게 국과수가 그렇게 다른 결론을 냈을까, 가짜 필적 감정서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가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지금 저희가 준비를 했습니다.

    그 당시 숨진 김기설 씨의 필적과 그리고 여기 나와 있는 강기훈 선생의 필적을 비교한 겁니다. 저희가 비교를 해봤는데요. 이걸 보면서 어떻게 같은 사람의 필적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가? 저는 지금 그 부분이 궁금합니다. 위가 김기설 씨 필적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강기훈 선생님의 필적이 그 아래. 아버님, 어머님. 딱 봐도 틀려요.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7년 11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유서대필 사건 재감정 결과와 함께 공개한 김기설씨 유서와 강기훈씨의 봉함엽서(아래) 필체.

     



    ◆ 강기훈> 그런데 이거 딱 봐도 맞다고 생각하는 데가 있더라고요.

    ◇ 김현정> 딱 봐도 틀려요. 더 긴 필적도 있죠. 이걸 딱 봐도 느낌으로만 봐도 다른데 어떻게 그 당시 국과수는 전문가들이 같은 사람이라고 필적 감정서를 내놨을까?

    ◆ 강기훈> 검찰에 가서 수사를 받으니까 검사들이 일관되게 하는 말이 그것이었어요. 내가 딱 봐도 너의 글씨가 유서 글씨하고 똑같은데 라면서 말을 시작해요.

    ◇ 김현정> 딱 봐도 똑같다고? 첫마디가 그거예요?

    ◆ 강기훈> 딱 봐도 똑같다는 얘기를 국과수 가서도 했겠죠. 우리가 누구를 하나 잡았는데 이놈과 이놈이 맞는지 알아봐줘라고 했겠죠. 그리고 수시로 검사들이 그 물건을 들고 가서 하면서 필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합니다. 암시를 주는 거죠. 얘를 범인으로 만들어줘죠.

    ◇ 김현정> 얘를 범인으로 만들어줘. 그 당시에 나 아니라고 아무리 외쳐도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던가요? 외치셨을 거 아니에요?

    ◆ 강기훈> 국과수가 앞에 있으니까. 어마어마한 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잘 모르겠지만 뭔지 틀리지 않을 것 같고. 사실은 과학에도 틀리는 것이 많이 존재합니다마는 그때 당시에는 그랬어요. 어떻게 국과수가 이런 필적 감정을 내지? 혹시 하면서 하던 제 주위의 분도 몇 분들은 갸우뚱하면서 혹시 썼니? 안 썼니? 이렇게 질문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 김현정> 가족도, 지인도?

    ◆ 강기훈> 가족은 아니지만 제 주변에 있던 몇몇 분들이 그랬어요.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제가 과학적인 기법상 무엇이 어떻게 돼 있고 이렇게 설명을 해야 되는데. 나중에 그 감정의 실체에 대해서도 알았습니다. 사실은 국과수 필적 감정이라는 것은 오래 숙련된 감정인의 마음이 작동하는 거더라고요.

    ◇ 김현정> 심리적인 게 작동하는 겁니까?

    ◆ 강기훈> 그렇게 진술을 했습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6월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검찰역사관에서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지적한 검찰 과오와 관련한 대국민 입장을 밝히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김현정> 재심 과정에서? 이렇게 해서 결국 누명을 쓰고 3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 화면으로도 보셨지만 너무나도 이게 필적 감정이 허위였다는 건 분명하기 때문에, 명백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2015년 재심에서 당연히 무죄가 났습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공식 사과도 했습니다. 24년 만입니다. 물론 착잡하지만 그래도 저는 시원하셨을 것 같은데, 기쁘셨을 것 같은데요.

    ◆ 강기훈> 사과라는 건 요건이 있어야죠. 내가 왜 무엇을 어떻게 해서 미안하다는 얘기가 있어야 하는 거고요. 어떤 부분을 어떻게 잘못했으니 그 잘못한 사람들을 어떻게 조치할 것이고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런 제도를 만들겠다. 이런 요건들을 다 갖추고 구비하고 실질적인 노력을 보여주고 나서, 우리 이렇게까지 했는데 정말 너무나 미안하다. 이런 의사가 있어야 된다고 보고요.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어느 가정에 강도가 침입해서 때리고 아무튼 온갖 못된 짓을 다 했다고 보자고요. 뒤돌아서서 나중에 시간이 지난 다음에 그때 일은 좀 미안하게 됐어라고 하면 이걸 사과로 받아들일까요, 아니면 모욕으로 받아들일까요?

    ◇ 김현정> 오히려 모욕적이셨습니까?

    ◆ 강기훈> 그래서 저는 사과를 하든 말든 그런 식의 사과는 관심 없다고 얘기했어요.

    1991년 당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강씨가 필적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김현정> 그러면서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말씀하셨어요. 이건 무슨 말씀이신가 하니, 결국 그 당시에 이 거짓 사건. 가짜 조작 사건을 만든 그 사람들이 처벌을 정당하게 받아야 합니다. 이 주장을 하고 계시는 거죠?

    ◆ 강기훈> 네, 그렇죠. 그게 시작이라고. 진실을 제대로 밝힌다는 건 그 사람들이 그때 무슨 일을 했고 어떤 경로와 통로를 통해서 이런 짓을 했으며, 그 사건 이후로 받은 농공행상은 뭐였으며, 어떤 이익을 받았으며, 이런 얘기들이 밝혀져야 되는데 거기까지를 어떻게 재판에서 밝히겠습니까?

    다만 이 사람들이 책임이 있다. 그래서 처벌을 해야 된다. 처벌을 한다. 이런 것 정도는 해 줘야 그래도 재판이 됐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제가 그다음을 하죠.

    ◇ 김현정>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하셨어요. 그랬더니 1심에서는 국가 손해 배상 책임 인정한다. 하지만 그 당시 검사 강신욱, 신상규 그 당시 검사에 대한 책임은 없다. 그리고 국과수 필적 감정인 책임은 있다. 이렇게 나왔어요. 그런데 2심에서는 국가는 인정. 하지만 당시 검사도 국과수 책임자도 책임 없다. 이렇게 지금 나온 상태로 대법을 기다리고 계시죠.

    ◆ 강기훈> 네, 도저히 상고를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 김현정> 국가는 잘못했지만 그 일을 수행한 당사자들은 그 사람들도 국가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아니냐라는 게 지금 법원 판단입니다.

    ◆ 강기훈> 최종적 국가가 가해자들에게 명령을 해서 이런 짓을 하게 한 거죠. 그래서 사건의 실체는 하나도 없어진 거고요. 책임자도 없어진 거고 따라서 가해자도 없는 거고 오롯이 피해자인 저만 남아서 진상을 제대로 밝히라고 십몇 년째 지금 재판을 하고 있는 거죠.

    91년부터 시작을 하면 28년째가 되는 거고요. 과거사진상위원회에서 재심을 열어라라고 얘기했던 2009년부터 따지면 10년째 하고 있는 겁니다. 재판이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으면 하지 말걸 그랬어요.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이 시간이 정말 지옥 같아요.

    ◇ 김현정> 재심 나오기 훨씬 전부터 시작된 게 지금까지죠?

    ◆ 강기훈> 그렇죠.

    ◇ 김현정> 지금까지도 대법원 판결까지 안 나오고.

    ◆ 강기훈> 2005년부터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재판 다시 해 달라고 시작을 한 거거든요. 사실은 그 과정에서 제 생계도 포기를 해야 했고 뭘 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없으면 안 되니까. 그렇게까지 따지면 인생의 대부분을 재판과 함께, 재판 송사와 함께 보낸 흔하지 않은 인생이라고 보시면 되겠네요.

     



    ◇ 김현정> 이런 말씀도 하셨더라고요. “돈은 필요 없다. 만약 돈이냐 때려줄 거냐 선택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피해자는 십중팔구 돈은 필요 없고 무조건 맞은 만큼 때려줄 거다라고 말할 거다.”

    ◆ 강기훈> 사실은 상상을 하면 그 이상인 거고요. 대부분의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이 갖는 심정이 그럴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재심을 통해서 무죄가 나오더라도 책임자들은 다 빠지거든요. 처벌받은 예가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이근안 경감이죠. 김근태 민총련 전 의장을 고문했던. 재정 신청해서 처벌받은 사건 이외에는 없고요. 검사는 아예 없고요. 이러니까 하죠. 앞으로도 또 할 거예요. 91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강기훈을 밟고 그 디딤돌을 삼아서 출세가도를 달려오고 여전히 공직에서 일을 하고 있고.

    ◇ 김현정> 누구입니까?

    ◆ 강기훈> 많이 있죠. 다들 보면 변호사시고 아니면 학교 학원장이시기도 하고 국회의원도 있고요.

    ◇ 김현정> 국회의원 누구죠?

    ◆ 강기훈> 곽상도 의원인데 곽상도 의원이야 그때 저를 잠 안 재우기 담당을 했던 정도라서 깃털급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 김현정> 꼭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실 것 같습니다. 하시죠.

    ◆ 강기훈> 반복되는 얘기일 수도 있겠는데요. 지금 검찰의 모습이 이렇게 된 데는 사실 저는 책임감을 느껴요. 제가 제대로 잘 싸워서 이겨서 검사들을 처벌할 수 있는 케이스를 만들었다면 이런 괴물 같은 모습으로 지금 나타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자괴감도 있고요. 이 사람들의 출세나 현재의 모습은 수많은 피해자의 죽음과 피눈물을 딛고 일어선 것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김현정> 잊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어려운 상황에서 이렇게 여기까지 와주시고 용기내 주시고 좋은 말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강기훈> 감사합니다.

    ◇ 김현정> 강기훈 씨였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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