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기부자가 전달한 성금과 편지 (사진=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성금이 1천억원을 돌파한 가운데 일각에서 성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여론이 벌써 형성되고 있다.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코로나19, 대구에 기부된 기부금 사용 내역 진상 규명 바랍니다'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기업이든 개인이든 대구∙경북으로 보내는 기부 행렬이 줄을 지었고, 지금껏 기사로 알려진 것만 해도 거의 1천억원에 가까운 기부금이 들어온 것을 알 수 있다"며 "그러나 그 많은 기부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국민들은 전혀 알 수 없고, 대구에 거주 중인 국민들 역시 기부금액에 비해 제대로 된 해결책을 받지 못한 상황"이라고 성토했다. 해당 청원에 동의한 사람은 9일 오후 3시 기준 1만2755명을 돌파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코로나 기부금 어디에다 쓰였는지 확인할 곳 없나. 주변에 마스크나 지원금 받았다는 사람 한 명도 못 봤다", "기부금 들어온 것 체감하는 사람 있나. 그 많은 기부금 도대체 누구 주머니로 들어갔을까"와 같은 비판적인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기부금 사용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깊어지고 있지만, 기부금 집행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에 기부금을 배분할 법적 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감염병은 자연재난이 아닌 사회재난으로 분류돼 정부가 기부금을 배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행안부에 따르면 재난이 일어났을 때 모인 성금은 '의연금'과 '기부금'으로 나뉜다. 의연금은 태풍, 홍수 등 자연재난이 났을 경우다. 의연금은 재해구호법에 따라 행안부가 지정한 기관인 재해구호협회에서 일괄적으로 기금을 모아 배분할 수 있다.
반면 코로나19 등 감염병은 사회재난에 속한다. 사회재난으로 모인 성금은 기부금으로 분류된다. 기부금은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모금을 한 단체에서 배분한다. 투명성 확보를 위해 10억원이 초과할 경우 행안부에, 10억원 이하일 경우엔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도록 돼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기관별로 기부금을 배분하다 보면 명확한 기준이 없어 중복 지원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행안부가 각 모금기관, 지자체를 모아 협의체를 구성해 중재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취약계층 위한 구호품 (사진=연합뉴스)
다만 각 기관들과 지자체를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1천억원에 달하는 기부금을 즉각적으로 배분하기는 힘들다는 게 행안부 측의 입장이다. 자연재난의 경우 피해액이나 복구 예산이 비교적 명확해 배분하기 쉽지만 감염병 등 사회재난은 피해액을 산출하고 지원 대상자를 분류하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실제로 지난해 4월 발생한 동해안 산불도 사회재난으로 분류돼 정부가 아닌 강원도가 중재에 나서야 했다. 강원도는 각 모금기관들과 협의체를 구성해 지급기준, 배분방식 등을 상호 협의를 통해 배분했다.
당시 국민 성금 470억원은 전액 피해 주민을 위해 사용됐으며 전국재해구호협회,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적십자사 등 모집기관과 강원도가 배분항목 지급기준을 통일해 이재민들에게 성금이 중복 지급되거나 누락되지 않도록 조정했다.
특히 주택, 세입자, 소상공인 등 주거와 생업 관련 피해가 상당해 국민성금 모집기관인 전국재해구호협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긴급 성금 배분을 요청했고 지난해 4월 30일 1차로 173억원을 우선 지원했다. 긴급 지원된 성금은 주택 전파 3천만원, 반파 1500만원, 세입자 1천만원, 그밖에 주택 피해자에게 500만원씩 각각 배분됐다.
또 2차 지원금은 인명 피해자, 소상공인 피해자 등을 위해 집행했다. 사망자 2명에게는 각 1억원, 부상자 1명에게는 2천만원을 지원했고,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는 피해를 빠르게 수습하고 사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각 2천만원을 배분했다.
강원도가 피해상황 집계 및 배분 기준 조율을 거쳐 성금 전달까지 걸린 시간은 20주. 행안부 관계자는 "동해안 산불 때처럼 기부금을 제대로 배분하기 위해선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 수밖에 없다"며 "국민들의 요구대로 최대한 신속하게 기부금을 활용할 수 있도록 협의체를 잘 조율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다"며 "추후 기부금 사용 내역에 대해 공개하라는 정도의 요구는 있을 수 있지만 벌써부터 '기부금으로 도대체 뭘 하는 거냐'는 식의 비판은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에 대해선 "사람들이 정보 과잉의 시대에 살다 보니 정보 중독에 걸려있다. 조금이라도 투명하지 않으면 못 견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불안한 시기에는 이런 경향이 더 짙어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와 언론 등 공신력 있는 곳에서는 검증된 정보를 확실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